일본의 젊은 학자가 깊이 들여다본 대한제국 강제 병합의 수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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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젊은 학자가 깊이 들여다본 대한제국 강제 병합의 수난사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4.04.06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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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병합: 논쟁을 넘어, 다시 살핀 대한제국의 궤적 | 모리 마유코 지음 | 최덕수 옮김 | 열린책들 | 392쪽

 

일본의 대한제국 강제 병합, 이른바 『한국 병합』은 한일 양국 사이에서 결코 식지 않는 논쟁의 진원이다. 고종 황제를 중심으로 독자적 근대화를 도모한 대한제국. 그러나 이권을 노리고 한반도를 침략한 제국 일본은 끝내 한국을 강제 병합하여 식민지로 만들었다.

이 책은 한국(조선) 근대사를 연구해 온 젊은 일본 학자의 대한제국 강제 병합 연구서로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로 병합되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차근차근 짚으며 국권 피탈의 수난사를 깊이 들여다본다. 현재 한일 간 논란과 갈등의 진원인 이른바 〈한국 병합〉, 즉 대한제국 강제 병합의 역사적 배경과 진행 과정을 세세하게 살피고, 역사학 대 국제법의 구도로 논쟁해 온 지난 30여 년간의 학술적 공방도 아울러 정리한다.

저자는 그간 한국 병합에 관한 일본의 저작들이 〈일본이 한국을 병합하여 가는 과정〉을 주로 논해 왔다며, 이 책은 그와 달리 〈대한제국이 성립하고 붕괴되어 가는 과정〉에 주목함을 밝힌다. 당대 일본의 정치와 외교가 한국 병합을 향하여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살피는 데에서 더 나아가, 대한제국 황제와 정부를 주인공의 자리에 놓고,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에 저항했거나 동조했던 다양한 인물과 세력의 정체와 역할을 분석한다. 이로써 대한제국이 어떻게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갔는지 총체적으로 조명한다.

책은 우선 조선 왕조와 중국 간의 특수한 관계를 설명하고, 그 정체성이 서구식 조약 체제 유입 이후 어떻게 다루어지고 변모해 갔는지 소개한다. 이어 청일전쟁을 계기로 과거의 중화 질서가 해체되면서 일본과 러시아 세력이 대두하고 그 속에서 조선이 맞이한 위기와 변화를 다룬다. 동학농민운동 진압을 이유로 조선에 출병한 청과 일본은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다투며 끝내 청일전쟁을 벌이고, 승리한 일본은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더욱 키운다. 이 무렵 조선은 갑오개혁을 단행하며 국가의 각종 체제를 대폭 바꾸고 청의 예속에서 벗어났음을 선언한다. 그 사이 일본은 조선 왕실을 견제하며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저지르고, 위기를 느낀 고종은 아관파천을 단행하는 등, 1897년 대한제국 수립에 이르기까지 조선 정부는 많은 위기를 겪는다.

대한제국은 정부 수립 이듬해인 1898년 이후 여러 가지 국가사업을 벌이고, 체제 및 사회 문화의 변화를 이어가며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국가 재정 위기 등을 겪으며 한반도 진출을 노리는 일본의 압박을 받는다. 그리고 1904년 러일전쟁 발발 이후 한일 의정서, 그리고 제1차 한일 협약 등을 체결하며 내정 간섭을 받게 된다. 이어 1905년에는 제2차 한일 협약, 즉 을사보호조약 체결을 강제당하며 외교권과 내정 전반을 일본에 빼앗겨 보호국으로 전락한다. 그 와중에 고종은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보내는 등 저항하지만, 이를 계기로 1907년 양위까지 당한다. 순종으로의 강제 양위 직후에는 제3차 한일 협약이 체결되어 대한제국의 내정은 일본에 완전히 장악되고, 결국 1910년 8월 이른바 〈한국 병합 조약〉을 체결당하며 일본의 식민지가 되기에 이른다.

한편 저자는 책의 종장에서, 1990년대 이후 30여 년에 걸쳐 한일 연구자들이 수행한 〈한국 병합〉 관련 연구성과와 논쟁점을 압축적으로 정리한다. 1980년대 후반 급속한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에 대한 일본의 관심이 늘고, 동시에 한국에서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엔 쉽지 않았던 대일 관계 및 식민지 역사에 대한 비판적 견해 제기가 급격히 는다. 아울러 김학순 할머니의 위안부 관련 증언이 나오면서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 대중의 관심과 발언도 본격화한다.

이 무렵 한국 사학계에서 새로운 사료들을 발굴하면서 한일 간 조약들에 대한 무효론 등 〈한국 병합〉을 둘러싼 문제들이 대두된다. 이를 계기로 한일 연구자들 사이에 공동연구와 학술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고, 주요 쟁점에 대해 양측 사료 연구에 입각한 논쟁이 불붙는다. 1965년 한일 기본조약에서 대한제국과 일본 간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라고 밝힌 것, 그리고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식민지 청구권이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밝힌 것의 해석을 둘러싼 논쟁 등이 그것이다. 주로 역사학 대 국제법의 구도로 펼쳐져 온 이러한 양측의 학술적 공방을 소개하며, 저자는 당시 일본이 한국으로부터 통치에 대한 〈합의〉와 〈정당성〉을 무리하게 얻으려 했음을 확인한다.

2018년 대법원에서 피고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위자료 청구권을 인정한 이후, 현재 한일 국민 간의 감정적 대립은 극에 달한 상태이다. 일본은 국제법적으로 해소된 사안에 대해 한국이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상황. 반면 한국은 강압적이고 불법적인 조약 체결 과정을 뒷받침하는 역사학의 증거들을 제시하며 일본의 근본적인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일본의 대중이 국제법적 논리에 편향해 있음을 지적하며, 갈등과 반목을 넘어 평화와 공존의 길로 나아가려면 당대에 대한 역사학적 인식을 늘려야 함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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