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이슬람의 만남에 대한 이해와 오해
상태바
불교와 이슬람의 만남에 대한 이해와 오해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4.04.06 12: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불교와 이슬람, 실크로드에서 만나다 | 요한 엘버스커그 지음 | 김인성 옮김 | 한울아카데미 | 480쪽

 

2001년 탈레반이 바미안 석불을 폭파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석불을 사겠다는 제안도 했고, 구미 각국에서 석불 보존 운동을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천 년 이상 보존되어 있던 거대한 석불이 순식간에 파괴되고 말았다. 세계 각국이 이슬람 권역의 저급한 문명 파괴 행위에 분노를 터트렸고, 다시 한 번 이슬람의 배타성과 그 문화의 무지몽매함이 성토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석불은 바로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무슬림 국가에서 천 년 이상 유지되어왔던 유물이라는 사실이다. 탈레반의 파괴가 있기 전까지 서방 국가들이 그 석불에 유별난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동안 그곳의 무슬림들은 종교를 빌미로 불상을 파손하지도 않았고, 그 존립을 거래의 대상으로 사용하지도 않았다. 바미안 석불은 이런 점에서 무슬림과 불교도의 접촉의 역사를 증거하면서 동시에 우리 시대의 정치화된 문명 충돌 현장을 상징한다.

저자 엘버스커그 교수의 이 책은 불교와 이슬람이 완전히 별개의 현상으로서 아무런 접점도 없다고 막연하게 단정하는 우리의 상식에 재고를 권한다. 이를 위해 그는 주요한 사례를 들어 불교와 이슬람의 만남이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역사적 변모를 보여준다. 물론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불교와 이슬람은 교리, 이념, 이상이 아니라 그러한 종교적 표현이 현실에 적용되었을 경우를 가리킨다. 불교나 이슬람뿐 아니라 기독교나 유대교, 힌두교 등 어떤 종교라도 이 세상에서 번성하려면 신자들의 기도와 경건한 헌신 이상이 필요하다. ‘구원의 경제(economy of salvation)’라는 용어가 말해주듯 종교는 평화와 위로, 죽음 너머의 안식을 보장하는 대가로 신도들의 경제적 기여를 요구하고, 신도들은 현실적으로 강력한 세력을 구축한 종교 집단에 소속됨으로써 자신의 영달을 도모하는 ‘영적 자본(spiritual capital)’을 획득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거듭 불교와 이슬람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강조하는 것은 이러한 현 실태로서의 종교 양상을 말한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저자는 불교-이슬람 교류사를 조명하는 공간으로 인도나 아라비아 반도에서 시작하지 않고, ‘실크로드’로 알려져 있는 교역 지역, 즉 아프가니스탄에서 몽골리아까지 뻗어 있는 드넓은 내륙아시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이 책에서 말하는 ‘불교’, 혹은 ‘대승불교’는 동아시아의 선불교가 아니라 내륙아시아 교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거란, 몽골, 만주족 등 북방 유목민족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맡았던 티베트의 불교, 즉 ‘밀교’ 혹은 ‘탄트라 불교’를 지칭한다. 

시간적 구성 역시 불교나 이슬람이 형성되는 초기 과정이라든가 자체 내 교리 논쟁부터 종말론까지 이어지는 가상적인 체계가 아니라 7세기 중엽부터 19세기까지 기간 동안 이 두 전통의 상호작용을 다룬다. 각 장은 연대순으로 배열되는데, 7세기 중반 이슬람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교역로를 지배하던 불교 세력과 어떤 식으로 조우했는지,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오해하면서 갈등과 적대로 이어지고 그 와중에도 화해를 모색하려고 시도했는지, 내륙아시아도 그 강역(疆域)에 두었던 청나라 말기까지의 사례를 다룬다.

제1장에서는 약 700년부터1000년경에 이르는 시기, 무역이라는 관점과 종교적 사상 및 경제 체제 간의 연관성을 통해 불교도와 무슬림 간의 초기 접촉의 양상을 탐색한다. 제2장 역시 같은 기간을 다루지만 ‘구원의 경제’를 넘어서 이 두 전통이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는지 사례를 통해 그 방법을 알아본다. 제3장에서는 제1장과 제2장에서 다루었던 시대를 넘어 소위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라고 알려진 1100년부터 1400년경까지의 몽골 제국기를 배경으로 한다. 무슬림을 통해 헬레니즘의 기술적, 의학적 지식이 티베트를 중심으로 내륙아시아까지 전파되었는데, 이보다 훨씬 중요한 불교-무슬림 상호작용의 사례는 우상 숭배라고 지탄받았던 불교문화의 “지극히 시각적인 전통”이 무슬림의 예술 생산에 영향을 남겼던 것이다. 

이에 비해 제4장에서는 몽골 제국이 사라진 이후, 1400년경부터 1650년경에 이르는 시기에 이 두 전통에 점점 더 거리가 생기면서, 불교 세계와 무슬림 세계 사이에 갈등이 야기된 경위를 알아보고, 급기야 ‘지하드’라는 개념의 충돌이 등장하는 정치적, 경제적 배경을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제5장에서는 불교도와 무슬림이 하나의 왕조 아래 모였던 청나라(1644~1911년)에서 ‘먹는다’는 지극히 일상적인 활동이 어떻게 종교 논쟁으로 비화되고 정치 쟁점화되었는지 살펴본다. 사실 ‘할랄’의 문제는 청나라에만 해당되지 않고 기독교와 이슬람이 크게 충돌했던 이베리아 반도나 이탈리아에서도 발견되는데, 지금까지 중국의 무슬림이 겪고 있는 문제의 근간을 이루기 때문에 청나라 사례가 유독 중요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