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실둥실 ‘배바우’ 마을 … 금강이 빚어낸 둔주봉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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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실둥실 ‘배바우’ 마을 … 금강이 빚어낸 둔주봉 한반도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 승인 2024.04.06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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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혜숙의 〈여행이야기〉_ 충북 옥천 안남면 연주마을

 

안남면사무소 앞 잔디광장에 커다란 배 한척이 덩실하다. 하나 되어 함께 나아간다는 안남면 사람들의 화합을 상징한다.

보드라운 벚꽃비를 맞으며 달렸다. 옥천의 옛 37번 길. 쌩쌩한 새 길이 있지만 옛길을 택한 것은 이 봄의 화양연화를 예감했기 때문이었다. 선택은 옳았지만, 어제 비가 왔기에, 오늘 나는 조금 미안하다. 그러나 봄비는 부드러웠으니, 어쩌면 내일도 그 길은 아름다울지 모른다. 숨이 턱턱 막히는 작은 마을들을 지나고 금강을 건너 굼실굼실 깊어지는 골짜기로 들어서면 옥천의 9개 읍면 가운데 가장 작다는 안남면이다. 고만고만한 높이의 산들이 둘러서있고 그 가운데로 금강수계인 안남천이 흘러 소규모의 산간 분지를 이루는 땅이다. 면사무소 앞 호수처럼 너른 잔디광장에 커다란 배 한척이 덩실하다. 뱃머리에는 장대를 쥔 소녀가 서 있다. 소녀의 시선을 따라가면 마을 뒷산의 능선에 닿는다. 저기엔 무엇이 있나.

 

옥천의 옛 37번 길. 쌩쌩한 새 길이 있지만 옛길을 택한다면 봄날의 벚꽃비를 만날 수 있다.  

안남면은 옥천군의 중부에 위치해 있다. 연주리, 종미리, 화학리, 도덕리 등 7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으며 12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면 소재지는 연주리(蓮舟里)다. 연주리는 연지동(蓮池洞), 주암(舟岩), 고성리(古城里)가 합해진 마을이다. 주암은 한글로 배바우다. 연주1리의 중심마을이고 안남면 전체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옛날 이곳에 배 모양의 바위가 있었다고 한다. 일제 때 깨뜨려 배의 형태는 사라졌는데, 그 바위가 도덕리 서당골 마을 입구에 있다. 지금 그 바위는 배를 매기에 딱 좋은 입석의 모습이다. 

 

광장 한 켠에 팽나무 한 그루와 돌탑이 우뚝하다. 안남면 12개 마을의 흙을 가져다 나무를 심었고 각 마을에서 주춧돌을 하나씩 가져와 탑을 세웠다. 

아주 오래된 전설이 있다. ‘배바우는 물속에 잠기게 될 것이며, 그 앞의 넓은 들은 호수가 되어 배를 띄우게 된다.’ 수백 년 동안 이 전설은 끈질기게 전해져 왔지만 그것이 실현되리라 믿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대청댐이 건설되고 담수가 시작되자 수몰선(水沒線)이 꼭 이 배바위에 이르렀다고 한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옛말 그른 거 없다.”고 입을 모았다. 광장에 덩실 놓인 배에 ‘둥실둥실 배바우’라 적혀 있다. 이는 전설 속 배바우의 현재이자 미래며 하나 되어 함께 나아간다는 안남면 사람들의 화합을 상징한다. 광장 한켠에 팽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안남면 12개 마을의 흙을 가져다 심은 것이다. 그 옆에는 금줄을 두른 돌탑이 우뚝하다. 안남면 12개 마을에서 주춧돌을 하나씩 가져와 세운 것이다. 팽나무 뒤 게이트볼 장에 사람들이 왁자하다.  

 

둔주봉 가는 길. 안내판을 따르면 왼쪽의 가느다란 길을 따르게 되고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의 굽은 길이다. 두 길은 만난다.  

거리는 조용하다. 정미소 지붕 너머로 산 벚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른다. 몇몇 사내들이 보리밥집에서 이를 쑤시며 나온다. 우체국은 옛 건물만 남긴 채 면사무소로 이사를 했다. 철물점과 슈퍼, 중국집, 파출소와 농협은 인기척이 없다. 이름난 손두부 식당은 월요일과 화요일 휴무다. 버스정류장 앞에는 빵집이 있다. 예전 버스표를 팔던 가게라 한다. 들고나는 사람들이 꽤 많고 진열대는 절반 이상이 비었다. 화요일 쉰다는 찻집 앞에서 망연자실 서 있으니 문이 활짝 열린다. 차가운 생강 라떼 한잔을 들고 싱글벙글한다.   

 

고갯마루에 둔주봉 등산로 입구가 있다. 산 벚꽃 하늘을 이고 계단을 오른다. 꽃잎 뒹구는 계단은 가파르다. 솔숲이 시작되면서 계단은 매트 길로 이어진다.
둔주봉 가는 길. 계단과 매트 길을 지나면 쭉쭉 뻗은 소나무 숲길이다. 산 벚과 참꽃이 불쑥불쑥 걸음을 붙잡고 그 너머로 안남의 마을과 들이 조용히 내다보인다. 

면사무소 옆에 알록달록 옷을 입은 건물은 안남초등학교다. 학교 옆길을 따라 마을 뒷산을 오른다. 뱃머리의 소녀가 바라보던 그 봉우리다. 길가 안남식당에 사람들이 와글와글하다. 자연산 올갱이국이 주 메뉴다. 포장을 부탁하고 다시 골짜기를 따라 오른다. 골을 가운데에 두고 양쪽으로 길이 나 있다. 직진하라는 안내판이 있지만 왼쪽으로 향한다. 몇몇 집들의 대문 앞을 지나 길이 가팔라진다. 골짜기 너머의 길을 흘깃 본다. 후회하지는 않지만 구지 안내판을 걸어둔 뜻을 알겠다. 고갯마루에 개나리와 산 벚이 휘황하다. 이곳에 둔주봉(屯駐峰) 등산로 입구가 있다. 둔주봉은 연주리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높이가 384m 정도 된다. 명칭의 유래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옛날 산봉우리에 봉수대가 있었고 연주리 일대의 풍수가 장군대좌형이라 생긴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둔주봉 275m 지점. 아래로 금강이 굽이쳐 흐르고 물줄기가 만들어 낸 한반도 모양의 땅이 펼쳐진다. 동서가 바뀐 형세지만 실제 한반도를 1/980로 축소한 모습이라 한다. 

산 벚꽃 하늘을 이고 계단을 오른다. 꽃잎 뒹구는 계단은 가파르다. 솔숲이 시작되면서 계단은 매트 길로 이어진다. 솔잎 뒤덮인 매트 길 역시 가파르다. 누가 쉬운 등산로라 했나. 쭉쭉 뻗은 소나무 줄기 사이로 산 벚과 참꽃이 불쑥불쑥 나타나 걸음을 붙잡고 그 너머로 연주, 덕실, 종배 등 안남의 마을과 들이 조용히 내다보인다. 둔주봉 275m 지점, 소나무 숲길이 활짝 열리면서 전망대가 나타난다. 아래로 금강이 굽이쳐 흐르고 물줄기가 만들어 낸 한반도 모양의 땅이 펼쳐진다. 저 땅은 동이면 청마리 임야다. 동서가 바뀐 형세지만 실제 한반도를 1/980로 축소한 모습이라 한다. 동서가 뒤바뀌었지만 척 보기에 그저 한반도다. 한반도 곳곳에 산 벚꽃이 피었다. 동해안과 남해안을 따라 모래밭이 은성하고 아스라한 오솔길 끝에 작은 밭이 너무 애틋해 고른 숨소리를 내지 못한다.

 

독락정 앞 금강 너머로 청마리 한반도 모양의 땅을 마주본다. 마을 사람들은 군데군데 배를 대고 강 건너 논밭을 오간다. 

산을 내려와 안남천을 따라 내려간다. 연주2리 중촌경로당을 지나면 왼편으로 밭이 펼쳐진다. 연주리의 5월은 청보리밭으로 유명한데 저 어리고 푸른 것들이 청보리인 듯싶다. 조금 더 가면 둔주봉 아래 연주2리 ‘독락정 마을’이 나타난다. 마을은 초계주씨(草溪周氏) 집성촌이다. 영모사 현판이 걸린 건물 옆에 송덕비 몇 기가 줄지어 서 있다. 그 옆에는 영모각과 초계주씨 시조인 주황(周璜)의 위령비와 세거지를 알리는 비석, 그리고 절충장군 중추부사를 지낸 주몽득(周夢得)의 송덕비가 자리한다. 그리고 1630년 주몽득이 지었다는 독락정(獨樂亭)이 있다. 안남천이 금강과 만나는 지점이다.

  

                  둔주봉 아랫자락을 타고 강과 함께 흐르는 길. 큰 비가 오면 사라진다는 길이다.

마을이름 독락정은 이 정자에서 왔다. 주몽득은 임진왜란 때 추령에서 나무로 만든 활로 왜적을 대파하는 공을 세웠고 1607년에는 일본에 건너가 포로 1000명을 소환해 왔다고 한다. 인조 2년인 1624년 이괄(李适)의 난 때는 반란을 진압하는 데 참여하기도 했다. 독락정은 홀로 즐기는 정자지만 자주 많은 선비들이 모여 풍월을 읊었고 후에는 서당으로 쓰였다. 정자에 오르면 안남천 합수부의 야생적인 평화와 180도로 굽이치는 금강 물줄기가 보인다. 둔주봉 아랫자락을 타고 강과 함께 흐르는 길도 보인다. 큰 비가 오면 사라진다는 길이다. 강 건너 마주보는 섬 같은 임야가 바로 둔주봉에서 보았던 청마리 한반도 모양의 땅이다. 독락정 앞 강변에 농어촌공사 시설건물이 들어서 있어 정자에서의 옛 정취는 눈을 감아야 보인다.  강변으로 내려가 고운 모래땅을 밟는다. 몇 척의 배가 띄엄띄엄 강기슭에 누워있다. 저 배를 타고 오가며 밭을 갈겠지. 세상이 아름다워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대학에서 불문학을,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대학시절 무가지 음악잡지 ‘Hole’을 만들었고 이후 무가지 잡지 ‘문화신문 안’ 편집장을 잠시 지냈다. 한겨레신문, 주간동아, 평화뉴스, 대한주택공사 사보, 대구은행 사보, 현대건설매거진 등에 건축, 여행, 문화를 주제로 글을 썼으며 현재 영남일보 여행칼럼니스트 겸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내 마음의 쉼표 경주 힐링여행』, 『청송의 혼 누정』, 『물의 도시 대구』(공저)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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