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과 양자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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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과 양자 기술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4.04.06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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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제34강_ 정현석 서울대 교수의 「양자역학과 양자 기술」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열 번째 시리즈 ‘오늘의 세계’ 강연이 매주 토요일 네이버 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여섯 섹션 총 54강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인류 공동체에서부터 개인의 실존에 이르기까지 지금 여기의 어젠다를 새로운 시선으로 담론의 장을 펼친다. 오늘날 과학과 기술의 영역에서 관찰되는 새로운 흐름을 정리해 보는 다섯 번째 섹션 ‘오늘의 과학 기술’ 제34강 정현석 교수(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강연의 서론과 결론부를 그대로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양자역학과 양자 기술


정현석 교수는 먼저 “고전적 세계관과의 충돌을 극복하고 인류에게 자연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펼쳐준 양자역학에 대해서 고전역학과 비교하며 그 “비결정론적인 본질과 양자 중첩의 문제”를,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갖고 있던 실재론(realism)적 세계관과 대비하여 비국소성(nonlocality)을 설명한다. 이어서 ‘과학의 가장 심오한 발견’이라고도 칭해지는 존 벨(John Bell)의 부등식을 다루는데 그 “부등식의 위배의 의미와 실험적 검증을 위한 도전”에 관해 살펴본 다음, 벨의 부등식 “위배에 따른 양자 비국소성은 실험적으로 입증되었으며 일부 남아 있는 허점은 아마도 해석의 문제로 계속 남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한편 “양자 중첩과 얽힘은 양자 기술이라는 새로운 응용의 영역”을 열어준 바, “이를 만들어내고 조작하는 실험 기술의 발전은 양자 정보과학의 부흥”을 가져왔으며 “현대의 양자 기술은 초기 양자역학의 개척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양자 중첩과 얽힘을 만들어내는 데” 이르렀을 뿐 아니라 “양자 오류 제어와 응용 연구를 통해 양자 컴퓨터와 양자 암호 등 실용적 가치의 양자 기술에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 지금도 진행 중이라고 말한다. 

 

지난 3월 16일, 정현석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오늘의 세계>의 34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1. 양자역학과 고전역학의 차이

양자역학이 고전역학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고전역학은 어떤 실험을 했을 때 초기 조건이 정확하게 같다면 실험의 결과도 정확히 같다고 말해준다. 이는 초기 조건을 정확하게 알면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임의의 정확도로 결과값을 예측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양자역학에 따르면 최대한 같은 초기 조건을 만들어놓고 실험을 해도 재현된 실험은 일반적으로 이전의 실험과 다른 결과를 준다. 즉, 단순히 정보의 부족 때문에 생기는 확률이 아닌 아닌 근본적인 임의성 혹은 확률의 요소가 개입되는 것이 양자역학이 고전역학과 다른 점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임의성은 양자 중첩이라는 존재 혹은 기술(記述)의 형태를 강요한다. A라는 ‘상태’(입자의 위치나 속도 등을 예로 들 수 있음)로도 존재할 수 있고 B라는 ‘상태’로도 존재할 수 있는 물리계를 생각해보자. 양자역학에 따르면 이 물리계의 상태는 A인지 B인지 측정하기 전에는 A도 아니고 B도 아닌 그 두 상태가 ‘겹쳐 있는 상태’, 즉 중첩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 여기서 ‘두 상태가 겹쳐 있는 중첩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고 지나치게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은 다소 위험할 수 있다. 또한 중첩 상태로 존재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해서 섣부른 해석을 내리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많은 학자들이 오랫동안 고민해왔고, 지금도 고민하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은 물리계의 상태를 파동 함수로 나타낸다. 양자 중첩 또한 파동 함수들의 중첩으로 표현된다. 상태 A와 상태 B가 중첩되어 있는 상태는 파동 함수 A와 파동 함수 B가 중첩된 제3의 파동 함수로 기술되는 것이다. 그리고 측정 전에는 제3의 파동 함수로 표현되는 상태로 존재하다가 A인지 B인지 알아보려고 측정하는 순간 A 혹은 B로 갑작스럽게 바뀌어버린다. 이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현상 혹은 가정으로 물리학자들을 괴롭혀왔다. 측정이라는 것을 측정자의 주관적인 인식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측정 장치와 대상이라는 두 물리계의 상호작용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 측정을 이해하든 측정으로 인해 파동 함수의 갑작스러운 변화, 혹은 상태의 갑작스러운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며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답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양자역학의 비결정론적인 본질과 양자 중첩의 문제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이 두 문제를 하나로 묶어서 고려해볼 수 있다. 양자역학이 보여주는 세계는 비결정론적이며, 심지어 중첩 상태라는, 고전적인 관점으로 볼 때 매우 생소한 상태의 존재를 가능하게 한다. 이것이 아인슈타인이 생각했던 대로 이론의 불완전함 때문인지 아니면 자연이 원래 그러한 것인지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이들의 논의를 조금 더 들여다봐야 하겠지만, 양자역학이 고전역학의 영역 안에 포함되지 않는 다른 이론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러한 비결정론적인 성질, 혹은 양자 중첩의 존재가 거시적 영역에 적용될 때 우리는 더욱 낯선 세계관과 마주하게 된다. 이것이 슈뢰딩거가 지적한 고양이의 역설이다. 죽어 있는 고양이와 살아 있는 고양이의 양자 중첩 상태. 상자에 갇혀 있는 고양이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측정을 하기 전에는 죽어 있는 상태와 살아 있는 상태의 중첩 상태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슈뢰딩거는 이러한 낯선 세계관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과연 양자역학의 법칙들은 거시적 세계에도 적용이 가능한 것인가? 아니면 양자역학은 무슨 이유에선지 미시적 세계에만 적용되는 이론인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이러한 역설의 존재 자체가 양자역학이 가지고 있는 한계나 결함을 암시하는 것인가?

양자역학이 고전물리학과 구별되는 또 다른 부분은 고전적인 상관관계를 뛰어넘는 비국소성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양자 얽힘의 존재 때문이다. 양자 얽힘 또한 양자 중첩이 가능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두 입자의 상태들이 AB라는 형태로 주어질 수도 있고 혹은 BA라는 형태로 주어질 수도 있다. 여기서 첫 번째 알파벳이 첫 번째 입자의 상태를 대표하고 두 번째 알파벳이 두 번째 입자의 상태를 대표한다. 두 입자의 상태들이 AB라면 첫 번째 입자가 A라는 상태로 존재하고 두 번째 입자가 B라는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며, BA라면 그 반대이다. 이제 이 두 입자가 AB와 BA의 양자 중첩으로 존재한다고 하자. 이 경우 첫 번째 입자의 상태를 알면 두 번째 입자의 상태가 A인지 B인지를 즉시 알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중첩이 깨어지면서 첫 번째 입자의 상태를 측정하는 그 순간에 두 번째 입자의 상태가 결정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한다. 만일 양자 중첩이 측정 이전에는 AB인지 BA인지 결정되지 않은 상태라는 해석을 받아들인다면, 필연적으로 첫 번째 입자를 측정하는 순간에 두 번째 입자의 상태가 결정되게 된다. 두 입자는 불가사의하게 비국소적인 연결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과연 양자 얽힘이 우리가 비국소적인 우주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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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양자 기술과 미래

양자 중첩과 얽힘은 양자 기술이라는 새로운 응용의 영역을 열어주었다. 양자 중첩과 얽힘을 만들어내고 조작하는 실험 기술의 발전은 양자 정보과학의 부흥을 가져왔다. 양자 얽힘을 이용하여 벨의 부등식을 깨뜨리는 양자역학의 근본적 검증을 수행하는 것을 넘어서, 이를 제어하고 이용하는 기술들이 특히 지난 세기 말부터 많은 과학자들의 실험실에서 발전해왔다.

1983년 리처드 파인만은 양자 모형을 효율적으로 시뮬레이션하기 위해서는 양자 장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후 양자역학의 중첩과 얽힘을 이용한 양자 컴퓨팅으로 효율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계산 문제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양자 컴퓨터는 학계와 대중의 큰 관심을 모았다. 1994년 피터 쇼어가 발전시킨 소인수분해 알고리듬이 대표적이다. 이는 특히 실제 개발될 경우 현재 사용되고 있는 소인수분해 기반 암호 체계를 무력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1980년대부터 발전된 양자 암호 프로토콜은 양자 얽힘을 이용하여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사람이 안전하게 비밀 키를 공유할 수 있게 한다.

양자 기술은 인류의 미래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기술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론과 실험 기술의 발전, 상업화를 위한 최근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넘어야 할 장애물들이 존재한다. 근본적인 이유는 양자 상태가 고전 상태보다 환경의 영향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양자 정보 처리의 기본 단위는 큐비트이다. 고전 정보 처리의 최소 단위가 0 혹은 1이라는 값만을 가질 수 있는 비트인 것과 같다. 양자역학은 두 상태의 중첩을 가능하게 하므로, 큐비트는 0과 1의 값을 가질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두 값의 양자 중첩 상태에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여러 개의 큐비트들이 양자 얽힘 상태로 존재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 양자 중첩과 얽힘이 양자 컴퓨팅을 비롯한 여러 양자 응용 기술들을 가능하게 한다. 그런데 이런 양자 중첩 및 얽힘 상태는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쉽게 양자적인 성질을 잃어버린다. 이런 현상을 결잃음(decoherence)이라고 부른다. 양자 상태를 환경으로부터 완벽하게 고립시키는 것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결잃음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결잃음은 큐비트들에 오류를 발생시키고 이 오류들은 성공적인 양자 기술의 수행을 좌절시키는 주된 이유이다. 결잃음은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같은 거시적인 양자 중첩 상태를 만들어내거나 관측하기 어려운 실제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장애물은 극복하기 위한 것이고, 많은 학자들이 양자 오류들을 정정하는 오류 정정 방법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모든 오류 정정 방법들은 어떤 한계를 가진다. 즉, 오류율이 어느 정도 이상이면 오류 정정 방법을 반복적으로 적용해도 오류가 개선되지 않는 것이다. 오류 정정 방법을 적용하여 임의의 정확도까지 오류를 정정해내려면 하나의 큐비트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오류의 확률이 어떤 한계값 아래에 있어야 한다. 이 값을 한계 오류율이라고 부른다.

 

현재까지는 양자 컴퓨팅을 위해 준비된 큐비트에서 일어나는 실제 오류율과 적용 가능한 오류 정정 프로토콜의 한계 오류율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실용적인 양자 컴퓨터의 구현을 위해서는 이 차이를 메워야 한다. 쇼어의 알고리듬과 같이 실제 양자 계산이 필요한 문제들을 의미 있는 수준으로 풀어내기 위해서는 이러한 도전에 성공해야 한다. 이는 장기간의 도전이 필요한 다소 멀리 있는 목표라고 할 수 있다.

큐비트에 일어나는 오류를 충분히 줄이는 것이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과제라면 다른 각도에서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즉, 하드웨어가 아닌 문제를 바꾸는 것이다. 어느 정도 오류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도 작동하는 킬러 애플리케이션을 찾아낼 수 있다면, 또 다른 혁신이 될 것이다. 과학자들은 양자 기계학습이나 양자 시뮬레이션과 같은 분야에서 돌파구가 나올 것을 기대하고 있다.

위와 같은 맥락에서 과학자들은 현재 우리가 NISQ 시대(Noisy Intermediate-Scale Quantum era)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어느 정도의 잡음, 즉 오류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중간 규모의 양자 시스템을 다루며 의미 있는 응용 문제들을 찾아나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인류가 이 NISQ 시대를 지나서 본격적인 양자 기술의 시대에 진입할 수 있을지는 앞서 말한 도전들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

양자 컴퓨터의 기본 요소인 큐비트들은 실제 물리적 시스템이다. 따라서 어떤 물리계를 이용해서 큐비트를 구현할 것인지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현재까지 초전도 회로, 포획된 이온, 반도체 스핀, 광자의 변수들, 중성원자, 다이아몬드 내 결함의 전자 스핀 등을 이용해 큐비트를 구현하는 방법들이 연구되었다. 이러한 방법들은 나름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서 포획된 이온 큐비트의 경우 제어성이 높고 결잃음에 강한 특별한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조작 시간이 느리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으며, 초전도 회로 큐비트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그 반대의 특성을 가진다. 물리계마다 적합한 문제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당분간 학계와 산업계에서 이러한 시스템들이 모두 연구될 것이고, 그중 일부는 살아남아서 양자 기술의 미래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8. 맺음말

양자역학은 고전적 세계관과의 충돌을 극복하고 인류에게 자연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었다. 벨 부등식의 위배에 따른 양자 비국소성은 실험적으로 입증되었으며, 일부 남아 있는 허점은 아마도 해석의 문제로 계속 남을 것이다. 양자 중첩과 얽힘은 양자 기술이라는 새로운 응용의 영역을 열어주었으며, 이를 만들어내고 조작하는 실험 기술의 발전은 양자 정보과학의 부흥을 가져왔다. 이제 현대의 양자 기술은 초기 양자역학의 개척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양자 중첩과 얽힘을 만들어내는 데 이르고 있다. 더 나아가 양자 오류 제어와 응용 연구를 통해 양자 컴퓨터와 양자 암호 등 실용적 가치의 양자 기술에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강연 바로보기: [열린연단]_ 양자역학과 양자 기술 (정현석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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