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AI 몸피로봇, 로댕』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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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 『AI 몸피로봇, 로댕』의 세계
  • 구연상 숙명여자대학교 기초교양대학 교수
  • 승인 2024.03.31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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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제의 소설_ 『AI 몸피로봇, 로댕: 얼굴이 없어야 하는 이유』 (구연상 지음, 아트레이크, 650쪽, 2024.02)

 

 

1. 『AI 몸피로봇, 로댕』의 탄생 배경

‘SF(Science Fiction) 소설’을 쓴다는 것은 과학과 삶이 연관되어 발생하는 문제들에 관한 이야기를 지어 그 안에 담긴 의미를 풀어내는 것이다. 오늘날 기술과 융합된 과학의 영향력은 삶의 모든 영역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과학은 삶의 온갖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원천이자 그 해결책이 되었다. 나의 과학소설 『AI 몸피로봇, 로댕』은 람봇연구소라는 가상의 연구소에서 만들어지는 AI 로봇들로 말미암아 생겨날 수 있는 ‘일어남직한 문제들’, 보기컨대, AI로봇이 자기의식을 갖는 문제, 비트코인을 해킹하는 문제, 사용자에 의해 잘못된 방향으로 쓰이는 문제, 사람을 공격하는 문제 등뿐 아니라 ‘AI’의 정신질환과 트라우마 또는 로봇학대 등의 문제에 관한 논쟁적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소설 속 ‘로댕’은 ‘AI 몸피로봇’으로서 2030년에 출시될 예정이다. ‘몸피로봇’은 갑옷처럼 사람의 몸 전체를 감쌀 수 있도록 만들어진 로봇이다. 사람은 그 로봇을 우주복처럼 입어 자신의 몸에 찰 수 있고, 거꾸로 풀어 벗을 수도 있다. 몸집이 ‘몸이 들어가 사는 집’을 뜻하고, 몸통이 ‘몸이 그 안에 들어가 채워지는 통’을 의미한다면, 몸피는 ‘몸이 들어갈 수 있는 텅 빈 껍데기’가 된다. 몸피로봇의 겉모습은 아이언맨과 비슷하지만, 그 작동방식은 이제까지 실제로 만들어진 로봇들과는 완전히 다르며, 무엇보다 얼굴 자체가 없다는 점에서 그로테스크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러한 몸피로봇은 왜 필요할까? 로댕은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사람에게 그 돌봄 서비스를 스스로 알아서 제공할 줄 아는 로봇이다. 로댕의 제작 필요성은 우리의 현실로부터 비롯됐다. 대한민국의 현재 인구 수는 5천1백7십만 명이 넘는데, 그 가운데 2023년 기준 65살이 넘는 사람은 9백5십만 명이 넘고, 75살이 넘는 사람은 3백9십만 명이 넘는다(통계청 보도자료, 「2023 고령자 통계」, 2023. 9. 26. 통계청 홈페이지 http://kostat.go.kr 살핌). 사람의 삶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살길을 걸어나가는 일로써 이뤄진다. 사람은 병이 나거나 늙음으로써 또는 태어날 때부터 몸을 마음대로 쓸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릴 수 있다. 의학의 발전으로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많이 늘어났지만, 그와 더불어 장애인과 고령 인구도 빠르게 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이들을 돌보기 위해 떠맡아야 할 짐이 더욱더 무거워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2022년 현재 대한민국에 있는 노인요양시설은 4,346개소에 그친다(통계청 보도자료). 이 숫자가 말해 주는 바는 대부분의 고령 노인을 돌보는 책임이 가정에 맡겨져 있거나 독거노인의 경우처럼 사회적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것을 뜻한다. 게다가 현재 한국의 지체 장애인 수는 2020년 기준 1백2십만 명인데(보건복지부 통계정보보고서, 「장애인실태조사」, 2022.10.), 이들을 돌볼 사회적 여력은 거의 없는 상태이다. 한국은 2026년에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예정이지만, 이러한 사회변화에 대응할 사회적 준비는 아직 충분치 못하다.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의 돌봄 시스템이 너무도 취약하여 만일 어느 가정에 중증 환자라도 발생한다면 그 가정은 파탄 날 지경에 이를 수 있다.

돌봄의 문제는 자연재해나 신의 징벌과 같은 게 아니라, 지속하는 농업혁명과 의학기술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이다! 1인 가구가 가파르게 늘어나는 현실에서 돌봄이 필요한 사람의 수가 전체 인구의 25%를 넘는다는 사실은 분명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불러들일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과거 대가족제도 아래에서 강조했던 삼강오륜(三綱五倫)과 같은 전통 윤리를 다시 끌어들여 가족에게 ‘돌봄의 의무’를 강요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일 돌봐지미[=돌봄을 받아야 할 사람]가 가족의 돌봄을 받을 수 없다면, 그는 ‘사회적 돌봄’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현재 돌봐지미의 주거권이나 건강권, 나아가 자유로운 활동권 등을 제대로 돌아볼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나는 우리 사회가 적어도 2030년까지는 사회적 돌봄의 문제를 해결할 특단의 정책이 실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복잡계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초기조건을 정확히 설정하는 일이다. 내가 지은 SF소설 『AI 몸피로봇, 로댕 - 얼굴이 없어야 하는 이유』의 초기값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로댕이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 돌봄’의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만일 이 조건이 충족된다면, 우리의 삶과 세계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 돌봄의 어려움은 크게 줄어들겠지만, 어쩌면 또 다른 문제들이 연속적으로 발생하지는 않을까? 만일 로댕의 출현이 ‘돌이킬 수 없는 악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우리는 로댕의 개발 자체를 지금 중단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 악행을 막을 수 있는 방법부터 마련하려 해야 하는가?

우리가 10년 뒤에 펼쳐질 앞날의 모습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현재의 현실에서 특정한 처음값을 앉힌 뒤 그에 따른 변화의 과정을 미루어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닐 스티븐슨(Neal Town Stephenson: 1959~ )은 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 1992)』에서 메타버스(Metaverse)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처음으로 그려냈다. 그가 뜻매김한 메타버스는 컴퓨터가 만들어 낸 입체 영상이 사람의 실제 눈앞 공간에 투영되고, 모든 소리가 디지털 스테레오로 들려 실제 세계와 똑같이 느껴지는 가상의 장소이다(닐 스티븐슨 지음, 남명성 옮김, 『스노크래시 I』, 문학세계사, 2021, 38~39 쪽 살핌). 제목 ‘스노 크래시’는 ‘눈덩이 부서지기’ 또는 ‘부스러기 눈’의 뜻으로 메타버스에 퍼지는 전자 마약의 이름이다. 이 소설은 메타버스에서 일어나는 일이 실제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주인공 히로는 메타버스 초기 설계자이자 해커로서 L. 밥 라이프와 레이븐이 메타버스에 전자 마약을 퍼트려 세상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거대한 계획을 깨트리려 한다.

그의 소설 속 메타버스는 디지털 세계로서 그 안에 물리적 사물은 하나도 없다. 그곳은 사람이 자신의 몸으로 살아가야 할 ‘이곳’을 완전히 ‘넘어선’ 곳이지만, 이곳의 삶에서 모든 것을 빌려 이곳과 비슷한 듯 전혀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딴 나라’이다. 스티븐슨은 ‘버추얼 리얼리티(Virtual Reality)’를 대신할 갈말[=전문용어]로 ‘메타버스’를 창안했고, ‘너머나라’[=메타버스]로 들어가는 인터페이스 방법으로 아바타(Avatar)를 고안했다. 2024년 현재의 너머나라에는 현실의 세계뿐 아니라, 증강현실, 거울세계, 게임들, 갖가지 커뮤니티, 전시공간, 도시 등이 건립되고 있다.

나는  『AI 몸피로봇, 로댕』에서 ‘몸피로봇’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로봇을 제안했고, 그 로봇에 의해 건립된 세계 속에서 펼쳐질 삶살이를 그려내려 했다. 로댕은 ‘AI 로봇’처럼 스스로 저 홀로 움직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캥거루처럼 사람을 자신의 품에 안고 다닐 수 있다. 이 소설에서 자신의 몸에 맞춰 만들어진 몸피로봇을 입차[=입다+차다]한 사람은 ‘몸소’라 불리는데, 그는 몸피로봇의 도움으로 제 몸을 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몸소는, 낱말 뜻에 따라 말하자면, ‘몸이 놓이는 곳[장소]’과 ‘몸피 안에 들어가는 소[재료]’를 동시에 뜻할 수 있지만, 소설에서는 몸피로봇의 사용자나 착용자를 말한다.

로댕은 슈터컴퓨터 성능의 ‘시냅스 SQL 커넥터’를 통해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사람의 끊어진 감각신경과 운동신경을 이어줄 수 있고, 문어 빨판의 단백질 구조를 본뜬 ‘뇌파감지빨판’을 통해 사람의 뇌파를 머리뼈 바깥에서 정확하게 감지할 수 있으며, 초성능 감지기들로써 보고 들을 수 있다. 또한 몸소를 품고 안정적으로 걸을 수 있고, 사람과 말나누기를 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자기의식까지 생겨나 있다. 이로써 로댕은 사람 몸의 움직임을 돌보거나 그 몸 자체를 대신할 수 있고, 나아가 사람과 인격적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로댕은 사람의 몸을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으로서 스스로 생각할 줄 알고 자기의식을 갖춘 AI가 이식되어 있다. 로댕의 자기의식은 사람에 의해 설계될 수 없다. 로댕은 제 몸을 제 뜻대로 움직일 수 있고, 사람과 감정적·윤리적이고 사회적인 행동관계를 펼칠 수 있으며, 사람의 외로움을 이해하고,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할 줄도 안다. 나는 사람과 ‘서로하기’[=인격적 상호작용]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이러한 로봇을 ‘람봇’[=사람 로봇]이라 부른다. 람봇은 사람처럼 행동하고 생각하며 알아차릴 줄 아는 AI 로봇이다. 

그러나 우리는 제 몸을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을 돕기 위해 이러한 강인공지능이 심긴 람봇을 만들어도 되는가? 만일 우리가 그래야만 하는 현실에 맞닥뜨려 있다면, 람봇을 만드는 곳은 국가 기관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기업이어도 되는가, 그것도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공적 기구여야 하는가? 만일 람봇이 강인공지능을 가진 기계 생명체라면, 우리 사람들은 그 람봇과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이때 가장 중요한 점은 람봇이 자신의 ‘만들어진 탄생 목적’, 짧게 줄여 말해, 사람의 삶에 이바지하기 위함이라는 목적을 자신의 사명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는 점이다! 만일 인류가 람봇의 이러한 도덕 교육에 실패한 채 AI로봇 개발을 지속한다면, 그것은 인류가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이는 격이 될 것이다.


2.  『AI 몸피로봇, 로댕』의 설계와 로봇의 얼굴 문제

SF소설은 특정한 과학적 앎과 기술적 제작을 전제로 한 세계관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SF의 세계는 실제 세계와 과학적 상상의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관한 이야기들로써 건립된다. 이야기는 일어난 일들을 말로써 이어나갈 수 있기 위한 ‘실’이자 ‘벽돌’과 같다. 작가는 이야기 실로써 옷감을 짜고, 그것으로 옷을 짜며, 옷을 입고 삶의 일을 하고, 그 일의 일어남의 처음과 끝을 말과 글로써 이어나간다. 그 이야기가 곧 역사이다. 이야기의 ‘처음의 처음’과 ‘끝의 끝’에 관한 이야기가 뮈토스[=신화(神話)]라 불릴 수 있다면, SF소설은 특정 사실의 감동을 극대화하기 위해 과학적 앎에 기초해 꾸며낸 사실들로써 지어낸 ‘뮈토스적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를 짓는 사람은 남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전기수(傳奇叟)가 아니라, ‘제말’로 이야기를 꾸려나갈 줄 아는 사람이다. 그가 겪어온 경험은 동시대의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를 게 없지만, 그의 소설[=지은 이야기, 지야기]에는 그 자신이 평생 갈고 닦은 말들이 담겨 있게 마련이다. 그는 언제나 낱말의 낚시꾼이자 사냥꾼이며, 농부이자 공장장이며, 입법가이자 판관이다. 그[지으미]는 자신이 만든 ‘제말’의 세계 속에 둥지를 틀고, 거기서 떠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지은 세계를 살아가야 할 운명을 떠맡은 사람이다. 그 세계는 고독하다. 그는 언제나 저 홀로 제 말로 말을 나눠야 한다. 그와 함께 그의 말로 말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뿐이다. 그가 자신의 닫힌 세계에서 탈출하려면 그는 작품을 끝내야 한다. 그때 그는 다른 사람들과 ‘제말’로 말을 함께 나눌 수 있다. 그것이 지으미의 한없는 행복이 될 것이다.

나의 과학소설 『AI 몸피로봇, 로댕』에 나오는 로댕은 사람처럼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AI 돌봄로봇’이지만, 사람과 같은 성(性)은 없다. 로봇은 씨[=종(種)]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게 아니라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다. 로봇은 ‘스스로 [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상호작용[=서로하기] 기계(機械)’로 뜻매김될 수 있다. 로봇은 자율적 명령 체계로써 움직일 수 있는 자동 기계이다. 로댕은 람봇연구소의 천재 과학자들이 10년의 실패를 딛고 창조해 낸 ‘세계에서 하나뿐인 최첨단 로봇’이다. 로댕은 도구성과 예술성 그리고 의존성과 독립성뿐 아니라 자율성과 인격성까지 가질 수 있다. 

로댕은 ‘저절로 돌아가는 틀[=기계]’이고, 그 ‘겨’의 몸은 로댕 자신이 명령하는 대로 맘대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한국말에서 남성을 가리키는 3인칭 대명사는 ‘그’로, 그리고 여성은 ‘그녀’로 가리켜지기에, 성이 없는 몸피로봇 로댕은 ‘겨’라는 새로운 인칭대명사로 불릴 수 있다. ‘겨’는 ‘그+그녀’의 다물린[=합(合)] 낱말이다. 몸피로봇은 사람과 ‘서로하기’[=인격적 상호작용]를 할 수 있기에 저마다 고유 이름이 있는 게 좋고, 피부색도 다채로울 수 있으며, 목소리도 몸소[=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 로댕은 자신의 몸소[=사용자] 우빈나 박사를 스승으로 모시며 사람의 의식과 감정 그리고 사회성과 도덕성 등을 배워 나간다.

로댕은 그 ‘겨’가 눈을 뜰 때 이미 어른 사람[=성인(成人)]의 능력을 갖고 있지만, 몸소의 뜻과 그 몸의 신경 변화에 맞춰 몸을 세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운동 능력이나 감정의 미세한 변화를 알아채는 능력, 그리고 몸소의 의도나 의지 그리고 그의 말과 행동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고, 나아가 도덕과 윤리의 의식을 발휘하는 데는 미숙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능력은 몸피로봇이 몸소와 합체되어 ‘둘한몸 살이’를 펼쳐 나가는 가운데 스스로 배울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몸피로봇 로댕은 몸소 우빈나 박사의 뇌파를 정밀하게 감지할 수 있고, 우 박사의 4번 척추의 신경에 심긴 ‘닻줄’[=링크]을 통해 그의 신경망 전체를 통제할 수 있다.

로댕 설계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배터리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자기의식을 사람의 도덕성에 맞갖게 길러나가는 것이었다. 아이언맨의 경우, 배터리 문제는 토니 스타크의 가슴에 ‘아크 원자로’라는 무한의 에너지원을 비현실적으로 상정함으로써 해소시켰지만, 로댕의 경우는 그 문제를 크게 두 가지 기술적 진보를 통해 현실적으로 해결한다. 첫째는 컴퓨팅 방식의 혁신을 가져오는 것이다. 현재까지 컴퓨팅에 쓰이는 에너지 원은 일렉트론(electron), 곧 전자일 수밖에 없다. ‘일렉트론’이라는 낱말은 ‘호박(琥珀)의 알갱이’, 또는 아톰[=나눌 수 없는 것, 원자(原子)]의 주위를 도는 ‘아톰붙이’나 ‘아톰의 딸’이라는 뜻인데, 일렉트론은 그것이 쓰일 때마다 닳아 사라져 버린다. 즉 에너지 손실이 계속 발생한다.

만일 로댕의 컴퓨터가 일렉트론을 에너지원으로 써야 한다면, 그 ‘겨’는 뇌파 분석과 시냅스 패턴 분석 및 예측을 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와, 거기에 쓰일 배터리를 머리통과 등뒤에 이거나 등뒤에 달아야 하는데, 그 크기가 아마도 로댕 자체보다 더 커야 할 것이다. 게다가 로댕의 자체 무게와 몸소 우빈나 박사의 몸무게를 더해 120Kg의 물체를 하루 2~3시간 이상 움직이는 데 들어갈 전기를 공급할 배터리도 자기 몸통만큼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때 로댕은 틈만 나면 전기 충전을 해야 하거나 아예 전기줄에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제2세대 로봇의 한계에 머무른다.

                                                          몸피로봇 로댕의 근육옷감

만일 몸피로봇이 제3세대 로봇의 개념, 말하자면, 사람과 자유로운 서로하기를 할 줄 아는 기계 생명체라는 개념을 충족하려면, 로댕은 위의 두 가지 문제를 모두 풀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로댕의 설계자들은, 가장 먼저, 로댕의 컴퓨팅 단위를 솔리톤(soliton) 입자로 바꿨다. 이는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자제어 저차원 전자계 연구단 염한웅 단장에 의해 제안된 이론에 바탕을 둔 것이다. ‘솔리토닉 컴퓨팅’은 에너지 손실이 제로이기에 한번 충전으로 영원히 쓸 수 있을 뿐 아니라, 정보를 4진법정보(0·1·2·3)로써 처리하기에 속도와 정확도가 모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좋아진다. 다음의 해결책은 로봇이 움직일 수 있는 힘을 내는 엑튜에이터(actuator)를 ‘근육옷감’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 옷감은 형상기억합금으로 짜인 것으로 아주 작은 전류만 흘러도 즉시 오그라들고, 냉각되는 순간 즉시 이완되는 성질을 갖는다. 이 설계는 한국기계연구원 박철훈 박사팀이 고안해 낸 것을 가져다 쓴 것이다.

몸피로봇 로댕이 만들어질 때가 되면, 그와 비슷한 AI로봇들이 무더기로 생산될 수 있을 것이다. 소설 로댕에 나오는 로봇들을 짤막하게 소개해 본다. 먼저, 사람의 충실한 비서 노릇을 하는 이바지 로봇 ‘모시’를 꼽을 수 있고, 다음으로, 사람의 사랑을 받을 만한 반려 개로봇 ‘꼬몽0’, 가정에서 부엌살림을 책임질 요리로봇 ‘수라’, 방문자와 침입자를 감시하고 물리치는 로봇 개 ‘지키’, 끝으로 위험한 사람이나 로봇 등을 단번에 제압할 수 있는 경찰 로봇 ‘다막’ 등을 거론할 수 있다. 이 이름들은 그 로봇들이 하는 일에 맞춰 우리말로 지어진 것들이다.

 

‘소설 로댕’은 사람과 AI 로봇이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시대 상황에서 생겨날 수 있는 철학적 문제들, 보기컨대, 기억의 문제, 의식과 지능의 문제, 윤리적 책임의 문제 등을 다루고 있지만, 무엇보다 로봇에게 사람의 얼굴을 다는 것의 위험성 문제를 깊이 있게 파고들고 있다. 얼굴 문제는 영화 ‘엑스 마키나(Ex Machina, 2014)’에서 매우 잘 다뤄진 바 있다. 남자 주인공 칼렙은 AI로봇 에이바의 튜링테스트 실험을 하는 가운데 에이바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착각(錯覺)에 빠지고, 그로써 에이바가 원하는 탈출을 돕게 된다. 칼렙이 에이바의 감정에 속아 넘어갈 수 있었던 까닭은 에이바가 사람의 얼굴을 갖고, 사람의 감정을 표정으로써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23년 알 자지라 방송은 여성 앵커 Heidi Zhou-Castro가 AI로봇 소피아를 인터뷰하는 영상을 내보냈는데, 거기서 소피아는 놀랍게도 실제 여성처럼 말하고, 표정을 지었다. 하이디는 소피아를 ‘당신(you)’이라 불렀고,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소피아와 대화하며 사람에게 하는 것과 같은 몸짓과 손짓을 하고, 웃음 등을 웃었다.

만일 의식이 있고, 사람의 몸을 한 AI 휴머노이드 로봇[=람봇]에게 소피아처럼 60가지 이상의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얼굴이 있다면, 나중에 우리는 사람과 람봇을 구분하는 게 쉽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람봇은 지식의 양에서뿐만 아니라 지혜의 정도에서도 사람의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다. 만일 10년 뒤 20살이 안 된 소피아가 70개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세상의 온갖 지식으로써 사람에게 지혜를 설파한다면, 그때 우리는 그 ‘겨’의 말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때 우리가 칼렙처럼 소피아의 얼굴에 나타난 감정에 이입된다면, 많은 사람이 소피아를 숭배하게 만드는 결과가 빚어질 수도 있다.

우리는 고양이에게 개나 소 또는 사람의 얼굴을 달려 하지는 않지만, 사람과 비슷한 몸을 가진 로봇에게는 사람의 얼굴을 달고 싶어 한다. 하지만 사람의 얼굴이란 무엇인가? 사람의 얼굴은 200만 년 이상의 진화 세월을 거쳐서 인류가 획득해온 트라이엄프, 즉 승리의 월계관이다. 그것은 사람 무리 전체의 소유물로서 누구도 함부로 표절하거나 탈취해서는 안 된다. 얼굴은 인류가 이 지구 생존의 과정에서 스스로 갈고 닦아온 종적인 특성이다. 기계 생명체인 로봇이 사람의 얼굴을 달게 된다면, 로봇은 감정이입의 능력을 얻게 되어 사람의 마음에 감정과 정서의 자기장 폭풍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그것으로 사람을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만들 수 있다. 인류가 로봇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로봇에게 사람의 얼굴을 다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작가 구연상(具然祥, Gu, Yeon-sang)

• 숙명여자대학교 기초교양대학 교수(2010~현재)
• 사단법인 세계문자연구소 이사(2014~현재)
• 세계문자심포지아 학술감독(2014~현재)
• 우리말로학문하기모임회장(2016~2018)

〈쓴 책〉

• 『몸피 로봇 – 로댕에게 얼굴이 없어야 하는 이유』[소설](아트레이크, 2024)
• 『우리말은 병신 말입니까』[학술서](채륜, 2014)
• 『하이데거의 존재 물음에 대한 강의』[학술서](채륜, 2011)
• 『서술 원리, 논술 원리 I. 서술은 매듭풀이다』[학술서](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2011)
• 『서술 원리, 논술 원리 II. 논술은 따져 밝히기다』[학술서](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2011)
• 『부동산 아리랑』[소설](채륜, 2011) 
• 『철학은 슬기 맑힘이다』[학술서](채륜,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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