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왜 혐오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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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왜 혐오하는가?
  • 강미영 숙명여대·영문학 
  • 승인 2024.03.31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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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자 후기_ 『혐오의 의미』 (콜린 맥긴 지음, 강미영 옮김, 한울아카데미, 264쪽, 2024.02)

 

무엇인가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감정을 혐오라고 정의할 때 우리는 혐오의 근원이 외부에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더럽거나 흉측하거나 해악적이거나 혐오의 이유는 다양하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정치적 현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한 혐오는 더 이상 개인적인 차원의 감정이 아니라, 자본주의와 같은 경제구조, 법과 제도와 같은 사회구조, 나아가 개인주의나 능력주의가 배태시키는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시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혐오에 대한 그러한 외부적 접근은 어떻게 우리가 서로 다른 사회적, 경제적 맥락 속에도 동일한 대상에 대해 혐오의 감정을 느끼는지에 관한 보다 근원적인 해답을 주지는 못한다. 

『혐오의 의미』의 저자 콜린 맥긴은 인간의 근원적 감정으로서의 혐오에 천착하기 위해, 철학, 역사학, 심리학, 미학 등의 관점에서 혐오의 감정을 조망한다. 그 과정에서 혐오는 인간이 진화과정에서 체득한 본능에 가까운 감정으로서, 문명화를 거쳐온 인간이 이성적 존재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파생된 산물임을 보여준다. 맥긴은 시체, 타액, 생리혈, 배설물과 같이 우리가 거의 반사적으로 역겨움을 느끼는 것들을 관습적으로 바라보던 시선에서 벗어나 우리 스스로가 이성적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 억압되어야 했던 우리의 일부로 받아들일 것을 권유한다. 

이성적 인간이 되기 위한 인간은 육체의 나약함으로부터 벗어나야 했으며, 정신에 반하는 육체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키워나가기 시작한다. 데카르트 이후 인간은 합리적인 이성과 초월적 정신의 소유자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육체는 인간의 나약함과 열등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치부해야 했다. 그 결과 우리는 초월적인 신을 닮아가는 존재이자, 동시에 더럽고 저속한 육체에 예속되어있는 역설적 존재가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인간에 관한 두 가지 시선, 즉 숭고한 정신의 인간과 더러운 육체의 인간이라는 구분은 인간 의식에 깊은 분열감을 안겼고, 우리는 스스로와 타인을 혐오하는 존재가 되었다. 철학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영역에서도 인간의 분열은 조장되었는데, 때로는 금욕주의를 통해 인간 육체와 욕망을 죄악시하거나 때로는 신에 대한 거역의 대가로 육체를 향한 수치심을 가지게 되는 형태로 종교는 인간에게 육체를 향한 혐오를 이식시켜 왔다. 

이러한 육체를 향한 혐오는 오늘날 다양한 형태의 문화적 양식을 통해 설명된다. 우리는 다양한 언어적 표현과 수단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성기, 배설물, 항문과 관련한 표현들을 삼가하는 것을 예의로 생각하며, 문화적이거나 기후적인 환경에 상관없이 모두 자신이 배설하는 모습이나 성기와 항문을 가려야 한다고 믿는다. 나아가 각종 장식품과 보석들로 육체적 역겨움을 은폐하고 보상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기도 하는데, 이때 소비주의는 인간의 혐오감을 억누르는 억압 기제로 작동한다. 따라서, 육체의 역겨움을 가리는 의복이나 신체의 취약성을 보상해주는 보석 등에 대한 욕망은 인간 육체에 대한 혐오감에서 비롯된다. 마찬가지로,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인간의 숭배도 유기체적 존재의 유한성과 취약성으로부터의 도피이다. 종교와 예술의 영역에서 빈번하게 소재화되는 천사, 신, 요정, 영혼 등도 혐오감 없는 존재를 꿈꾸는 인간 상상력의 산물인 것이다. 

인간 육체에 대한 혐오는 초월적이고 이상적인 존재에 대한 갈구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불완전함을 상기시키는 존재들을 향해서도 확대되어 간다. 인간의 이성이 아닌 육체성을 닮은 동물, 인간 육체의 유한성과 죽음을 상기시키는 노인, 육체적 취약성을 상기시키는 여성과 장애인 등은 혐오의 대상이 된다. 이렇듯, 혐오의 감정은 원초적 혐오에서 투사적 혐오로 확장되고, 생리적, 심리적 혐오에서 사회적, 도덕적 가치판단으로 확장됨으로써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 결국 자신과 타자에 대한 부정적 감정은 모두 인간의 예속성을 강화한다. 자신의 육체가 지닌 유한성과 취약성에 눈을 돌리면 자기 자신에 대한 수치심과 죄책감을 느끼지만, 종교와 윤리적 가치들이 힘을 잃어가고 쾌락주의적 세계관이 퍼져나가면서 사람들은 수치심과 죄의식 대신에 쾌와 불쾌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안정과 자존감을 수호하기 위해 타인을 악이나 추로 본질화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것이 아닌 감정의 노예가 되어 살아간다. 나약하고 추한 육체를 가진 자신에 대한 수치심과 죄의식뿐만 아니라, 타인을 폄하하는 데서 오는 자존감과 우월감 역시 외부 감정에 자신을 예속시키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초월적 존재로서의 이성적 인간이 아닌 유약성과 취약성을 지닌 육체적 인간임을 인지하고, 자신과 타자를 본질화하는 것으로부터 거리를 둘 때만이 비로소 주체적 감정과 사고를 하는 인간이 된다.

결국, 혐오는 단순한 편견과 일탈이 아니라, 원초적이면서 사회적인, 역사적이면서 미학적인, 심리적이면서 육체적인 감정이기에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인간의 존재론적 분열과 자아와 타자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정신과 육체의 합일, 자기혐오의 인정, 타자 혐오에 대한 이해로 극복할 때만이 우리는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구세주가 재림하시는 날, 우리는 몸이 없는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는 혐오주의자의 믿음이 아닌, 나와 타인의 혐오스러운 육체를 언급하거나 생각하지 않으려는 회피주의자의 태도가 아닌, 정신과 육체가 합일된 분열되지 않은 본성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인정과 배려가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강미영 숙명여대·영문학 

숙명여자대학교 인문학연구소 HK교수.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영문학 전공으로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 캔사스 대학(The University of Kansas)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 인종, 노화, 장애와 관련한 혐오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으며, 소수자 문학과 문화현상 등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혐오이론』(공저)과 『노년, 질병, 장애: 보편과 특수 사이』(공저)가 있으며, 논문으로는 <노인혐오의 인문학적 분석과 대응>(2022), <전염병 서사에 나타난 혐오의 변증법>(2022), <혐오와 문학>(2022), <한국사회 장애혐오 담론연구>(202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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