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의학교육의 탄생, 역사를 통해 배우는 의학교육의 방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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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의학교육의 탄생, 역사를 통해 배우는 의학교육의 방향성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4.03.30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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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 만들기: 근대 의학교육의 탄생 | 토마스 네빌 보너 지음 | 권복규·최은경·윤현배·정한나 옮김 | 청년의사 | 660쪽

 

이 책은 18세기부터 20세기 초반에 이르는, 즉 근대 서양의학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중요한 시기의 서양 의학교육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의 의학교육을 다룬 책으로, 계몽주의와 나치 독일 사이에 유럽과 북미에서 일어난 사회적, 정치적, 지적 변혁의 맥락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저자는 18세기 후반을 의학교육 발전의 분수령으로 보고 1800년대에 임상 실습이 도입되면서 초기 실습은 어떻게 발전했는지 설명하는 것을 시작으로, 19세기 실험실 교육의 성장과 20세기의 대학에서 의학교육의 표준을 정립하는 데 몰두한 과정을 추적한다. 네 나라에서 의학 지식이 전파된 방식과 이러한 접근 방식이 각 문화에 어떻게 반영되고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비교하여 유사점과 차이점을 모두 보여준다. 전반적으로 저자는 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변화하는 모습을 묘사할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특별히 주목하며 그들의 일상을 기록하고 그들이 직면한 종교, 성별, 계급, 인종적 제한에 대해 논의한다. 

오늘날 한국 의료가 중증질환을 앓고 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이른바 필수의료의 붕괴, 의료전달체계의 왜곡, 의료에 대한 불신 심화 등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증상에 대한 처방은 대개 단편적이고 말초적이며, 공교롭게도 상당 부분이 의학교육을 향한다. 즉, 많은 이들이 의대 정원을 늘리고 지방에 의과대학을 지으면 우리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현대 의학과 의학교육이 어떤 경로를 통해 발전해왔으며, 이와 같은 현실에서 단지 의대생의 숫자만 늘리는 것이 어떤 후과를 초래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문제의 해결이 그리 쉽다면 왜 우리가 알고 있는 선진국들은 그런 쉬운 처방을 채택하지 않는 것일까? 의사의 대도시 편중과 지역사회의 의사 부족, 지역 의료의 질 저하 등은 단지 우리만 안고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해결책으로 의대 정원의 확충이나 의대 설립, 의대 6년제 전환, 의사과학자 제도의 도입 등 수많은 제안이 우리에게 제시되고 있다. 일부는 그것이 당장 시급한 문제의 해결책으로 보이기 때문에 일부는 어떤 선진국이 그러한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고 해서 무슨 만병통치약이나 되는 듯 주장하고 있지만, 현명한 의사라면 그러한 만병통치약은 존재하지 않으며, 좋은 약도 환자의 상태에 따라서는 독이 될 수도 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환자에 대한 정확한 병력(medical history)인데, 왜 이를 잘 아는 의사들이 ‘의학교육’ 혹은 ‘의료제도’에 대한 병력 청취 없이 어떤 만능 처방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일까. 그러한 측면에서 이 책은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근대 서양의학교육의 훌륭한 병력을 제공한다. 

이 책은 18세기부터 20세기 초반에 이르는 서양, 즉 유럽과 북미의 의학교육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근대 과학의 발전과 산업화,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의 변화와 전통적인 공동체의 와해, 신분질서의 철폐와 교육받은 중산층의 등장 등이 이 시기의 특징이고 이는 고스란히 근대 의학의 성격에 반영된다. 근대 의학이 태어났기 때문에 이를 가르치는 일, 즉 근대 의학교육 역시 새롭게 태어날 수밖에 없었으며 그 과정에서 이는 온갖 진통을 수반하기 마련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근대 의학과 근대 의학교육의 탄생의 모습을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을 배경으로 하여 추적해 들어간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로부터 어떠한 의학교육도 당대의 사회와 문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깨닫는다. 

의학교육은 여러 전문직 중에서도 유독 장기간에 걸쳐 이론 교육과 환자를 관찰, 관리, 치료하는 고도의 실무 경험을 결합하게 되었다. 학문적 교육과 임상교육, 이론과 실제, 기예로서의 의학과 과학으로서의 의학 사이의 긴장과 변화하는 균형은 계몽주의 이후 의학교육의 변하지 않는 상태였다. 각기 다른 사회적, 정치적 환경으로 인해 국가마다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균형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이 책의 기본 주제다. 금세기 전반에는 과학에 대한 무한한 믿음과 의학의 궁극적인 합리성이 거의 모든 곳에서 지배적이었다면, 우리 시대에는 인류의 진보와 과학의 설명력에 대한 포스트 모던적 의심이 이러한 믿음을 압도하고 있다. 그러나 추는 의심할 여지없이 다시 흔들릴 것이다. 어쨌든 대부분의 교육자와 학생들에게 이 책에서 다루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근본적인 질병 과정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보유하고, 배운 것을 실제 상황에 적용하는 데 능숙한 의사를 양성하기 위한 체계적인 학문적 교육과 특히 과학에서의 실습 경험을 통합하는 것이 이상으로 남아 있다.

점점 더 기술화되는 시대에 의사들에게 ‘인간성’을 부여해야 할 필요성, 학생들이 외래 환경에서 일반 환자를 다루는 경험이 부족한 것, 병원과 의과대학의 괴리, 의학교육이 지나치게 전문화되었다는 우려, 학생들이 의과학보다 기술적인 측면을 너무 적게 배운다는 불만 등 의학교육의 방향에 대한 우리 시대의 고민은 이 책에서 다룬 역사적 긴장을 되풀이하는 것일 뿐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의학교육은 변화하는 사회환경에 불가피하게 내제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고민에 대한 최종적인 해답은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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