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은 언어적·예술적 행위일 뿐 아니라 윤리적·사회적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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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언어적·예술적 행위일 뿐 아니라 윤리적·사회적 행위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4.03.30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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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과 중국의 근대성 | 뤄쉬안민 지음 | 왕옌리·최정섭·남해선 옮김 | 역락 | 436쪽

 

번역은 언어적 행위와 예술적 행위일 뿐만 아니라 윤리적 행위, 사회적 행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번역은 그 목적에 의해 좌우되며 번역 과정에서 이데올로기가 지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역할은 역사학자나 문화 연구자들도 부득불 승인 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다. 번역의 역할은 한 민족의 문화적 전환기에 특히 중요한 기능을 하는데 국가의 근대성, 민족의 진흥과 밀접히 연관되어 기타 학문들이 대체할 수 없다.

앨런 스윈지우드(Alan Swingewood)는 “근대성은 전반 사회와 이데올로기, 문화적 개조에 관한 전체적인 개념으로서 과학과 이성을 전제로 하며 비이성의 가면에 대한 폭로를 통해 필요한 사회변혁의 길을 가리켜 준다. 그러므로 근대성이란 역사의 각성을 의미하고 역사의 점진적인 자각을 의미하고 과거에 대한 끊임없는 개조를 의미한다.”고 했다.

이는 중국 근대의 번역 실천과도 부합하는 부분이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엄복(嚴復), 임서(林紓), 양계초(梁啓超), 노신(魯迅) 등 우수한 지식인들이 악폐의 정치를 개혁하고 낡은 것을 버려서 새로운 것을 세우기 위해 번역을 무기로 삼아 당시 중국의 사회와 문화에 대한 전면적인 개조를 시도한 바 있다. 아영(阿英)의 통계에 따르면, 청말 민초에 출간된 모든 출판물들 중에는 번역 글이 창작 글보다 많았고 번역가의 지위가 작가보다 높았으며 번역 활동은 바로 이후의 신문화운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세기 전환의 시기에 활약했던 사상가와 번역가들은 모두 선명한 시대적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19세기, 20세기 교체시기에 낙후하면 침략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에 대한 각성과 더 강해지기 위해 분발하려는 분위기 속에서 번역의 태도는 새로운 모습을 띠게 되었으며 심지어는 번역에 대한 근본적인 전복을 통해 중국 문화 발전의 길을 도모하고자 했다.

새로운 번역 태도는 우환의식(憂患意識)과 계몽의식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대표적인 예로 노신(魯迅)을 들 수 있다. 노신(魯迅)은 환자를 구하는 의사의 꿈을 안고 일본 유학의 길을 선택했지만 중국인들의 ‘병’이 몸이 아닌 정신에 있음을 인지하고는 의학 대신 문학으로 전향하였다. 그의 문학의 길에서 번역은 창작과 병행되었으며 심지어는 창작을 이끌기도 하였다. 노신(魯迅)의 번역은 문화적 개조의 행위로, 번역을 통해 서양의 문화를 수입하고 중국문학을 변혁하며 나아가서는 중국 사회와 낙후한 국민성을 개조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중국문학에 대한 변혁은 반드시 언어에 대한 변혁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언어에 대한 변혁은 번역을 그 돌파구로 삼아야 하였다.

그렇게 “경역(硬譯: 딱딱한 번역)”은 언어를 변혁하는 폭력적 수단으로 간주되어 그 시기 주류적 위치에 있던 문언문(文言文)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금도 노신(魯迅)의 딱딱한 번역을 문제 삼는 글들이 꽤 있지만 당시의 역사적 경위를 놓고 본다면 노신(魯迅)시대에는 사실 ‘의역(意譯)’파가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의역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낡은 관습을 고수하였는데 중국 문화가 서양에 비해 훨씬 우월하다고 여겨 중국의 언어와 중국의 사례(事例)로써 서양의 작품을 번역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의역에는 오독(誤讀)과 오해(誤解)가 가득했기에 중국의 진보와 민족의 진흥에는 전혀 무익하였다. 노신(魯迅)은 바로 이러한 환경 속에서 직역 내지는 “경역(硬譯:딱딱한 번역)”을 주장했던 것이다. 그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만 서양의 문화를 제대로 중국에 수입할 수 있으며, 경역(硬譯:딱딱한 번역) 과정에 불가피하게 정수(精髓)와 찌꺼기를 모두 생산하게 되지만 정수는 기나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레 중국 문화의 바탕에 깊이 침전되고 찌꺼기는 버려질 것이라 믿었다. 근 한 세기 동안 노신(魯迅)의 번역 사상은 강대한 생명력을 과시했으며 서방의 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콜로니얼리즘 학자들은 지금도 그가 주창했던 “경역(硬譯: 딱딱한 번역)”을 추앙하고 있으니 노신(魯迅)의 번역 사상이 보편적 가치를 지닌 것이라 볼 수 있다.

중국 대학교들의 초기 번역 활동도 중국의 근대성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었다. 청화대학의 경우, 그 시기의 4대 국학 스승들 가운데서 양계초(梁啓超)는 정치소설을 통해 ‘신민(新民)’, ‘신학(新學)’, ‘신정(新政)’을 추진하려는 목적으로 정치소설 번역을 주장했고, 왕국유(王國維)가 서양의 철학서를 번역한 목적은 형이상학을 통해 중국의 학술을 풍부히 하고 인식론적 높이에서 중국 문화를 고양하고자 함이었다. 왕국유(王國維)가 철학적 시각으로 고홍명(辜鴻銘)의 『중용(中庸)』 영역본을 평론한 것이 바로 그 예이다.

진인각(陳寅恪)은 번역을 통해 중국과 외국의 문화 교류 상황을 고증하고 그것으로 역사를 증명하고자 함으로써 학술의 새로운 방식을 개척하였다. 그리고 조원임(趙元任)이 『아려사만유기경기(阿麗思漫遊奇境記)』를 번역한 목적은 중국인들에게 서양의 작품을 소개하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산뜻하고 생동하는 한어(漢語) 구어체를 새로 만드는 데 있었으며 특히 결핍으로 남아 있던 중국 아동문학을 개척하는 데 있었다. 그 이후에도 청화대학의 홍심(洪深), 문일다(聞一多), 이건오(李健吾), 조우(曹禺) 등이 번역과 개작, 창작에 종사하면서 무대 예술을 통해 사회를 개조하고 중국의 근대성 구축에 기여했다.

세계적인 경제 통합의 시대에 일방주의는 이미 그 지대를 잃었으며 현재 서양과 동양 모두 문화적 전환과 문화적 조정의 시기에 들어섰다. 그리고 문화 구축과 문화적 정체성이 필연적으로 번역과 연관을 맺게 되면서 번역은 새로운 발전의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예컨대 철학서 번역의 경우, 전문용어의 오역은 이데올로기의 오도(誤導)로 이어지고 심지어는 문화적 정체성의 왜곡을 초래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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