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소금·철·구리·석유·리튬…물질은 어떻게 역사를 움직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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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소금·철·구리·석유·리튬…물질은 어떻게 역사를 움직이는가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4.03.30 0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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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질의 세계: 6가지 물질이 그려내는 인류 문명의 대서사시 | 에드 콘웨이 지음 | 이종인 옮김 | 인플루엔셜 | 584쪽

 

모래, 소금, 철, 구리, 석유, 리튬. 이 여섯 가지 물질은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물질로 암흑기에서 현대의 고도로 발달한 사회로 인간의 세계를 확장시켰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전력을 공급하고, 집과 빌딩을 지으며, 생명을 구하는 의약품을 만들지만 우리 대부분은 이 물질이 무엇인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이 책은 세상을 바꾸었고, 미래를 만들어 갈 대체 불가능한 6대 물질(모래, 소금, 철, 구리, 석유, 리튬)을 찾아 지구 곳곳의 현장으로 떠나는 취재기이자 인류의 문명과 역사를 찾아가는 탐험기이다. 칠레의 아타카마 소금사막에서 만들어진 리튬은 미국의 기가팩토리 네바다에서 2차전지가 되어 우리에게 닿는다. 영국 로칼린 광산의 모래는 실리콘이 되어 티끌 하나 없는 대만의 TSMC 반도체 공장에서 최첨단의 미래를 그려낸다.

우리는 지식과 정보 같이 보이지 않는 가치가 우선시되고, 석유나 철, 소금과 모래 등 물질적 가치를 찾는 것은 구시대적이라고 생각하는 비물질의 세계에 살고 있다.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지식 산업과 서비스 중심의 현대 사회와 인공지능과 로봇 등 첨단 기술이 지배할 미래 사회는 물질을 벗어난 탈물질의 세계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미디어와 인터넷은 에너지와 전력망 없이는 존재할 수 없고, 서비스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나 자동차나 비행기 같은 이동 수단 역시 콘크리트와 시멘트, 화석연료와 배터리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비물질의 세계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물질 세계의 지지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물질은 문명을 이루는 뼈대이며, 그 뼈대 없이 인류는 살아갈 수 없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여섯 가지 물질은 현대 사회의 필수 요소들을 구성하며, 대부분의 영역에서 즉각적인 대체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 자리하고, 주위 환경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요소가 물질 세계에 기대고 있다.

「1부 모래」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에서 탄생하는 최첨단의 기술을 담고 있다. 인간이 물질을 중심으로 형성해온 발자취를 따라가다보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제품인 유리, 현재 가장 고도화된 기술의 집약체인 반도체, 도시의 마천루를 형성하는 콘트리트까지 모두 모래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2부 소금」에서는 소금길을 따라 발전해온 역사와 문명, 전쟁을 다룬다. 소금은 생명을 살리기도 하지만 화약을 통해 생명을 앗아가는 데에도 사용된다. 소금이 없다면 식량의 대량생산이 불가능해져 전 세계는 기아에 허덕이고 있을 것이며, 코로나19 백신은 우리에게 접종될 수 없었을 것이다.

「3부 철」은 우리를 협력하는 도구적 인간으로서 살아가게 만드는 철과 강철을 다룬다. 우리는 평생 15톤의 철을 소비하며 살아간다. 에펠탑과 도시의 마천루와 같이 대표적인 건축물부터 산업혁명의 시작이 왜 영국에서 일어났는지까지 암석에서 금속으로 우리 삶을 바꿔온 철의 여정을 만난다.

「4부 구리」는 우리의 삶과 조금 동떨어져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구리가 만들어낸 전력망을 통해 밤에도 안전하게 지낼 수 있고, 지구 곳곳이 연결된 사회를 살아갈 수 있다. 구리는 땅에서만 채굴되지 않는다. 심해 채굴 작업을 통해 새로운 국경이 정의되려 하는 생생한 현장을 만날 수 있다.

「5부 석유」는 화석연료의 아이러니를 다루고 있다. 증기기관에서 내연기관으로 효율성을 이끈 석유는 지구온난화의 시대를 촉발했다. 화석 연료의 사용을 줄이자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석유와 가스는 전체 에너지의 5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으며, 인류는 여전히 화석연료의 시대를 살아가는 중이다.

「6부 리튬」은 새로운 대체 에너지로 주목받고 있는 2차전지의 핵심 물질인 리튬과 미래의 자원을 다룬다. 칠레 아타카마의 소금사막에서 만들어지는 리튬은 미국 네바다주의 테슬라 기가팩토리를 통해 2차전지로 만들어진다. 콩고에서 채굴되는 막대한 양의 코발트는 비극을 낳기도 한다. 자원을 수탈하고 노동력을 착취했던 기업이 현재 재생에너지기업으로 탈바꿈해 순환 경제를 이끄는 물질 세계의 아이러니를 다시 마주하기도 한다.

이러한 여섯 가지 물질의 존재 여부가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물질들이 없었다면 인류는 문명을 이끌고 번영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르네상스와 산업혁명, 1, 2차 세계대전까지 인류사의 중요한 순간에는 물질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앞으로 펼쳐질 미래 역시 물질을 기반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이 책은 역사와 경제, 과학과 전쟁 등 어느 한 분야에 속하지 않고 고른 시선을 바탕으로 전 세계의 현장을 통해 인간이 만들어왔으며 만들어나갈 문명사를 보여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땅을 파내 물질을 만지는 일을 하지 않고도 물질이 주는 결실을 누려왔다. 우리는 더 이상 비물질의 세계에 갇히지 않고 물질 세계와 연결된 삶을 살아야 한다. 물질 세계는 단절된 과거에 머무르는 공간이 아니라 미래로 나아가는 길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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