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지성인 대학의 민낯이 아니기만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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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지성인 대학의 민낯이 아니기만을 바란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4.03.30 0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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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는 무엇으로 사는가? | 최병수 지음 | 두남 | 324쪽

 

소설인지 현실인지 혼란스럽다! 누가 이 소설을 완성시켜 주었으며, 무엇이 이 소설을 세상에 나오게 했는가?

대한민국의 교육기관은 사립의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그러다 보니 국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하는 교육을 국가가 기획하고 그 이념에 따라서 현장에서 가르침이 이루어져야 하는데도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사립학교 대부분이 종교 단체나 이익 단체에 의해서 설립된 사학들이어서 학생들이 돈으로만 보이기 때문에 그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런 사학들은 대학에 적립금이 좀 쌓이면 어떻게든 빼내 가려 한다. 교육부가 감사 인력이 적어서 투서나 문제가 발생한 대학에만 감사하는 데에도 수많은 비리를 적발한다. 만약 전수 조사한다면 그 비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나타날 것이다.

1990년도 후반부터는 대학 설립이 준칙주의에 따라서 서류요건만 갖추면 대학설립인가를 해주었다. 정치권에서는 자신이 출마하는 지역구에 전문대학이라도 하나 설립하겠다는 공약을 해야만 당선되었다. 그 결과는 인구 몇만 명도 되지 않은 강원도 산골짜기나 전라도 바닷가 오지에도 대학이 세워졌다. 대학을 세우려는 사람이나 세우도록 인가해 주는 교육부나 양쪽 다 문제가 있었지만, 교육부는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 가서 처리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이상한 집단이었다.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것이 뻔히 보이는 데에도 전국에 대학은 계속 세워졌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나면서 오지의 대학들부터 차례대로 미달 사태가 나오기 시작했다. 미달이 된 학과의 교수들은 학생 모집을 하는 영업 사원으로 전락했다. 주변의 고등학교는 물론 멀리 떨어진 고등학교에까지 다니면서 대학 내에 기숙사가 있으니 학생을 보내달라고 목멘 소리를 해야 했다. 그러나 그 어떤 방법을 써도 백약이 무효였다. 근본적 이유는 세계 최하위의 출산율이 말해 준다.

소설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경기도 남부 평송시에 있는 동서양대학교는 그동안 몇 번의 교명이 바뀌었다가 마침내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좋은 대학이 되라는 뜻으로 동서양대학교로 개명되었다. 이 대학의 설립자는 지역사회에서 알려진 분으로 이미 고등학교를 가지고 있었다. 1990년대만 해도 대학 설립은 대통령의 결재가 필요한 교육부인가 사항이라서 막강한 청와대의 배경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마침 정권이 바뀌면서 설립자의 친척이 청와대의 고위직으로 근무하게 되었기 때문에 설립인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운이 없는지 동서양대학교가 개교한 첫해 IMF 외환위기가 닥쳤다. 당시 외환위기는 너 나 할 것 없이 커다란 충격을 가져왔다. 대한민국의 어느 구석이나 이 외환위기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사방에서 부도가 터졌고 쓸만한 알짜 기업은 외국에 넘어갔으며 거리에는 노숙자가 넘쳐났다. 이런 대환란 속에서 동서양대학교라고 해서 그냥 조용히 넘어갈 리 없었다. 개교하던 해에 입학 정원은 720명이었다. IMF의 외환위기가 올 것을 예상하지 못한 대학 이사장이 청와대의 힘을 활용해서 다음 해 2,160명이라는 엄청난 입학 정원을 받아 놨다. 이 입학 정원의 갑작스러운 증가로 다음 해에 거의 3,000여 명이 강의할 수 있도록 교사와 기자재 등을 갖추어야만 했다.

다음 학기 개강을 몇 달 앞두고 IMF의 외환위기가 터졌기 때문에 자잿값 폭등 등으로 수백억 원의 자금 조달을 해야 하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이사장은 모든 것을 어음으로 처리하다가 결국 1차 부도가 났고 급한 나머지 학교 재벌인 전무식에게 약간의 설립자 위로금과 빚을 떠안는 조건으로 대학을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그후 세월이 흘러 설립자 이후 전무식, 현진택, 김곰자를 거치는 우여곡절 끝에 오만일이란 자가 동서양대학교의 5번째의 실질 이사장이 되었다. 태어나서 세상에 이름 하나 남겨야겠다고 떠들고 다니던 그는 드디어 동서양대학교의 이사장이 되었다. 자꾸 어깨가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재단이 계속 바뀌면서 교수들의 갈등도 크게 증폭되었다. 교육이란 이상향을 염두에 두고 들어온 재단이 아니다 보니 언제나 학생들은 돈으로만 보였다. 그런 재단 아래서 교수들은 옳고 그름을 떠나서 재단에 굴종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극히 일부 교수들은 순응하지 않았다.

마치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서 보듯이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쓰레기통을 뒤지며 살아가는 대다수 갈매기와는 달리 주인공 조나단은 더 높이 더 빠르게 날아가려고 노력했다. 조나단이 그렇게 하면 할수록 무리에서 배척을 당했던 것과 같이 동서양대학교에서도 채서남 교수와 인화평 교수는 다른 교수들로부터 배척을 당했다. 이들 교수는 어떤 불의와 협박과 위협에도 끝까지 굴하지 않고 ‘교수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물음을 항상 가슴에 두고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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