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철학은 몰역사적이라는 통념에 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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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철학은 몰역사적이라는 통념에 도전하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4.03.30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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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 분석철학 | 이승종 지음 | 서강대학교출판부 | 364쪽

 

현대 분석철학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콰인은 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는 두 부류가 있는데 그중 한 부류는 철학에, 다른 한 부류는 철학사에 관심이 있다는 뼈있는 농담을 던진 바 있다. 그가 말하는 철학은 문제풀이로서의 분석철학으로, 철학사는 고전연구로 대별되고 전자가 주도권을 잡아온 게 현대영미철학의 지형도이다. 

이 책은 분석철학이 종래의 통념과는 달리 탈전통적인 철학이 아니라 서양철학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온 사유의 방법임을 보임으로써 콰인의 이분법과 위계를 해체하고 있다. 저자 이승종 교수에 따르면 분석철학을 서양철학사의 전통으로부터 단절시켜 파악하는 기존의 견해는 바람직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분석철학의 계보와 방향성에 대한 바른 이해에 장애가 된다. 역사적 분석철학은 콰인이 분리했던 철학사와 (분석)철학을 한데 아우르는 것이다.

분석철학은 흔히들 프레게, 러셀로부터 연원하는 현대철학사조로 이해되곤 한다. 그러나 분석철학의 분석정신은 서양철학의 시작과 함께 생겨났고, 분석철학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는 것이 이 책의 가설이다. 그리고 서양철학사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 가설을 입증하는 것이 이 책의 첫 번째 목적이다. 분석철학의 논제, 이론, 혹은 도그마가 서양철학사에서 이미 발견됨을 보이려는 것이 아니라, 분석철학과 닮은 방식으로 철학적 문제를 분석하는 자세나 태도가 서양철학사와 함께 해왔음을 보이려는 것이다. 분석철학의 분석정신은 논증으로 요약된다. 관념적 직관이나 형이상학적 사변을 지양하고 문제의 논리적 얼개와 알고리듬을 파헤치는 것이 분석철학의 분석정신이며 그 귀결이 논증이다.

이 책의 두 번째 목적은 철학사 연구를 통해 분석철학을 발전적으로 보강하는 것이다. 분석철학은 수학, 논리학, 과학 등 대상을 객관적 3인칭의 관점에서 논구하는 학문들과 친족관계를 이루는 탓에 3인칭적 철학에 치우쳐 왔다. 그러나 서양철학사에는 관념론이나 현상학과 같이 주관적 1인칭의 관점에서 세계를 파악하는 철학도 있고,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우하는 칸트의 인간성 정식으로 요약되는 2인칭 철학도 있다. 2인칭 철학은 근대성의 표현인 과학기술에 의해 탈마법화된 3인칭 세계를 의미와 가치로 재활성화하려는 주목할 만한 시도로서 이 책은 이를 심화하고 확충해 분석철학에 창의적으로 접목시킨다.

책의 구성은 「책머리에」와 「들어가는 말」에 이어 4부 13개 장을 중심으로 하고, 이에 포함되지 않는 3개의 보론과 에필로그로 이루어져 있다. 1장 「태초에 정보가 있었다」는 책의 전체적 방향성을 제시하는 발제문의 역할을 한다. 정보의 원어인 information에 각인된 form의 연원은 플라톤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장의 전반부에서는 정보의 철학사를 짚어본다(1절). 그 귀착점은 컴퓨터중심주의이며(2절) 이는 인공지능이라는 화두를 창출하게 된다(3절). 이어서 개별과학기술의 약진과 이에 대한 철학적 성찰의 필요성을 바름과 진리라는 상이한 척도하에 살핀다(4절). 이를 바탕으로 디자인(Design)과 다자인(Dasein)이라는 두 유형의 존재범주를 설정하고(5절), 정보통신기술의 정점에 놓이게 될 로보 다자인의 출현을 스케치해본다(6절). 맺는말에서는 로보 다자인과의 소통에 요청되는 2인칭적 태도의 단초를 칸트에게서 찾아본다(7절).

본론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1부는 「그리스로부터」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수학에 대한 그리스 철인들의 사유」라는 제목의 2장, 「아리스토텔레스의 보편개념과 램지 문장」이라는 제목의 3장, 「분석과 종합의 논리적 확장」이라는 제목의 4장으로 구성된다. 즉 고대 그리스의 수학철학(2장), 논리학(3장), 방법론(4장)을 집중 조명하고자 함이다.

2장은 고대 그리스철학을 대표하는 아카데미아의 두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의 기초인 수학에 대해 펼친 사유의 얼개를 재구성하며, 그것이 현대 수학철학의 플라톤주의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살핀다.

3장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에서 보편 개념의 문제를 논구한다. 이를 위해 현대논리학과 과학철학의 성과를 원용해 아리스토텔레스의 보편 문장을 양화된 개별자의 문장으로 재서술하는 램지와 카르납의 분석에 주목한다. 그들의 분석에 의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논리적 정합성을 갖추게 됨을 논증한다.

4장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파푸스가 제안한 분석과 종합을 살펴 탐구의 방법론으로 확장시켜본다. 1부의 마지막 장에 파푸스의 분석과 종합에 대한 논구를 배치시키는 이유는 고대 그리스에서 수행된 분석적 탐구를 파푸스가 학문적으로 체계화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본론의 중반부에 해당하는 2부는 「근대성의 해부」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근대성의 빛과 그늘을 과학과 철학을 중심으로 조망하는 세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다. 5장 「명제의 구분과 지식의 근거」는 2부의 발제문 역할을 하는데, 라이프니츠, 흄, 칸트, 논리실증주의자들, 콰인 등 2부의 주연들이 명제의 구분 문제를 놓고 어떤 논쟁을 펼쳤는지를 거론하고, 그에 따라 달라지는 지식의 근거에 대한 상이한 견해들을 추적한다.

 「근대 과학철학을 뒤흔든 흄의 문제」라는 제목의 6장에서는 근대과학에 기초 놓기를 시도한 경험론과 합리론의 공과를 비판적으로 살피면서, 그 기초에 해당하는 인과율의 철학적 토대를 회의하고 해체한 흄의 논의를 중심으로 근대 과학철학의 흐름을 정리해본다. 이어서 「이론의 세계: 라이프니츠와 칸트」라는 제목의 7장에서는 저 두 철학자가 구축한 이론의 세계가 어떻게 상반된 짜임새를 갖고 있는지를 수학의 쌍대성 원리에 의거해 규명한다.

본론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3부는 「칸트의 안과 밖」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칸트의 철학을 집중적으로 조망하는 두 개의 장과 그의 현대적 계승을 논하는 한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다. 칸트에 대한 분석철학적 연구는 그의 도식론에 대한 규칙론적 해석을 구성하고 해체하는 8장 「칸트의 도식론」에서 시도된다.

9장 「칸트와 현대 물리학」에서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준거로 현대 과학의 철학적 근거와 한계를 다루는 순수과학비판을 구상한다. 이 과정에서 양자역학의 철학으로서 측정의 현상학과 모순의 현상학을 제안하고, 이 두 현상학이 일관성이라는 전통적 이념을 어떻게 해체하는지를 살펴본다.

10장 「맥도웰의 칸트적 분석철학」은 현대영미철학계에서 대표적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 활동하고 있는 맥도웰의 철학에 서려있는 칸트의 영향에 초점을 맞춘다.

저자는 책의 초고 중 일부는 그 준비과정에서 학회 발표 등을 통해 학계의 검증과 피드백을 받았으며, 그 과정에서 주고받은 논평과 답론, 토론을 4부에 수록해 학술적 공신력을 높이고자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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