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교수 경고 "2천명 증원, 의학 교육 역행 초래…2025학년도 개강까지 역량 갖추기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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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교수 경고 "2천명 증원, 의학 교육 역행 초래…2025학년도 개강까지 역량 갖추기 어려워"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4.03.30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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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공의, 일정기간 지역 공공의료 수련 보내 경험치 높여야"
- 의대 교육, 단순 지식 강의서 환자중심교육으로 전환
- "의대생 교육·전문의 수련·교원 모집 등 정부 재정지원 필요하다“

 

의대정원 2000명 확대는 의학교육의 역행을 초래해 ‘사회가 요구하는 의사’ 양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재차 나왔다. 심지어 의대 교육이 “100년 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전공의가 수련 기관으로 대도시 대형병원을 주로 택하는 가운데, 이들을 지역 공공의료 기관에 일정 기간 수련 보내 지역 사회에 대한 경험치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 12일에 이어 27일 국회 도서관에서 의대 증원 관련 2번째 간담회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 관련 쟁점과 해결과제 II’를 개최했다. 

이날 간담회의 주제는 ‘의과대학생 교육과 전공의 수련 개선과제’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이종태 정책연구소장과 고려의대 의학교육학교실 이영미 교수가 발제자로 나섰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교수들은 각 의대가 2025학년부터 신입생을 받기까지 증원된 규모의 학생을 교육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 27일 국회 도서관에서 의대 증원 관련 2번째 간담회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 관련 쟁점과 해결과제 II’를 개최했다. 

개인 맞춤형 교육, 전공의 수련 비용이 최대 과제 

□ 이영미 교수는 현재 의대 및 전공의 교육이 획일화돼 사회의 요구를 충족하기 어렵다는 비판과 함께 사회가 요구하는 '환자 중심 의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의대생과 전공의에 대한 '개인 맞춤형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소집단·팀바탕 학습과 함께 시뮬레이션 등을 통한 환자와 현장의 조기 노출, 임상 현장실습에서 환자와 사회와의 지속적인 관계 형성을 통한 의학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한 이 교수는 전공의 교육 시스템에 대해 ▲ 값싼 노동력 ▲ 평가 부재 ▲지도 전문의에 대한 교육 인센티브 지급 불명확 ▲ 환자 쏠림 부담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는 지적도 내놓았다.

이 교수는 “그동안 역량 바탕 교육과정을 마련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의사를 양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난해 의예과(예과)와 의학과(본과)를 통합하는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도 예고되며 학제 개편을 의학 교육 혁신의 계기로 만들고자 했다”며 “그런데 의대 증원으로 다 무너지게 됐다”고 토로했다.

이 교수는 최근 사회가 의사에게 ‘환자 중심 의료’를 기대하는 만큼 대형 강의 위주의 획일화된 교육으로는 사회가 요구하는 의사 양성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환자 중심의료를 위한 필수 역량을 기르기 위해선 ‘임상의학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사회와 환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의사는 환자의 병을 고치는 것뿐 아니라 의료비 절감에도 기여하고 환자에 공감해야 한다”며 “그러나 대부분 환자들은 병원에 의대생이 오는 것과 의대생 실습에 참여하는 것을 싫어한다. 병원 입장에서 환자는 고객이기에 많은 의대생이 실제 환자를 거의 못 만나고 졸업한다”고 말했다.

이에 임상의학교육을 통해 환자가 외국 사람일 경우, 사회적 지원이 필요할 경우 등 다양한 사례에 대한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이에 대한 토론과 발표 수업, 표준화 환자를 이용한 시뮬레이션 수업 등을 시행하고 있다고 했다.

이를 시행하려면 교수와 학생이 일대일 혹은 교수 1명에 학생 5~6명 수준으로 배치돼야 하며 그 외에 시뮬레이션센터, 세미나실 등 시설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경우에는 한 사례에만 교수 10명 정도를 섭외해야 할 때도 있다. 이런 내용을 단순 강의식으로 가르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며 “그러나 현재 이조차도 자원이 한정돼 있어 모든 학년에서 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결국 정부가 의사에게 공익을 요구하려면 의대생·전공의 교육에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가 공익을 위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임상교수의 교육 제공 시간 확보, 전공의 급여와 교육 등을 위한 재정 투입이 필수라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의료에는 사익도 있지만 공익을 추구하는 부분도 있다. 그런데 정부는 전공의 사직도 금지하고 있다. 공공재가 어떻게 사표를 내느냐는 것”이라며 “의사의 공익을 강조하려면 이제 국가가 의사 양성에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이제까지는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다. 공공성을 확장하고 싶다면 다른 액션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전공의들이 수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과중한 진료 부담은 줄이고, 수련 프로그램의 질은 높여야 한다"며 "의과대학과 병원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정부의 재정과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또 필수역량을 배양하기 위한 최소한의 교육자원 지원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의학 교육이 100년 전으로 후진하는 게 아니라 세계 의학과 의료를 선도하는 인재를 키울 수 있도록 도와 달라”며 “밥그릇 싸움이 절대 아니다. 의대 증원으로 미칠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다. 이에 교수들 모두 걱정하고 있다. 이 사태가 빨리 마무리되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고려의대 이영미 교수와 인제의대 이종태 명예 교수

□ 이종태 소장은 "미국과 일본 등 다른 나라는 전공의 양성 시스템을 빠르게 바꾸고 있는데, 우리나라 의학 교육은 오래된 틀을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는 임상의사 양성은 잘하고 있지만, 사회에서 요구해오던 지역사회 의료 강화는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다"며 "사회적 책무성을 강화할 수 있게 국내 의료교육 시스템 전반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등 외국의 경우 지역사회 의료기관에 의대생을 보내 임상실습을 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활성화돼 있지만, 우리나라는 거의 없다는 얘기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지난해부터 이런 취지의 '전공의 공동수련 시범사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전체 의대를 대상으로 하거나 필수로 운영되지는 않는다.

이 소장은 "지역사회에서 의료 경험을 하면 소외 계층에 대한 관심이 늘고 향후 졸업생이 (자연스럽게) 지역사회에 정착하게 할 수도 있다"며 "지역 필수의사 부족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 소장에 따르면 미국과 일본 정부는 다양하게 의학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은 1개 대학 평균 4800만달러, 공립대학 평균 6900만달러, 사립대학 평균 1500만달러를 교육 프로그램 등에 지원하고 있다. 연방정부 지원의 연구기금·계약금액은 1개 공립대학 평균 1억2900만달러, 사립대학 평균 2억6400만달러다. 일본은 2022년 기준 1개 사립의대가 약 19억5000만엔의 정부 보조금을 받았다.

미국은 전공의 교육의 직접비용(DME) 지원도 확대하고 있다. 1997년 이후 연간 33억달러 규모로 묶여 있던 예산은 2015년부터 증액했다. 이와 함께 의료취약지역에서 근무하는 의료인에 대한 지원도 확대했다.

지난해에는 '전공의 부족 감축법'을 제정해 메디케어 자금 지원을 받는 전공의를 향후 7년간 1만4000명으로 늘려 의사 수 부족 문제를 극복하기도 했다. 즉, 미국은 의사인력 부족 해결 방법으로 필수·지역 의료를 담당할 전공의 교육 지원을 선택한 것이다.


의대증원 추진, 의학교육 역행 초래

□ 이영미 교수는 정부가 추진 중인 2000명 의대증원은 의학교육의 역행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2,000명을 늘렸을 때 어떤 점이 나빠지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야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고는 생각한다”며 “그러나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질병만 보던 의사에서 환자를 치료하고 돌볼 줄 아는 의사까지는 양성하고 있었는데 2,000명을 늘리면 다시 질병만 보는 의사를 양성하는 것으로 후퇴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사람에게 맡겨도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직접 교육한 전문가의 경험이라는 게 그런 것이다. 양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보여주지 않아도 암묵적인 지식과 경험을 근거로 (전문가의 의견을) 인정하는 것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의대증원을 추진하고 교수를 늘리면 일방적 지식을 전달하는 대규모 '강의' 형식의 교육만 늘어날 것이다. 그간 좋은 의사를 만들기 위해 학생 교육 체계를 개선했는데, 의대증원으로 교육방식이 100년 전으로 돌아가게 생겼다. 이는 의학교육을 후진하게 만드는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의대생 교육과 전문의 수련 내실화 방안에 대한 질의에 의료전달체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대학병원 쏠림으로 인해 교육 여건이 갖춰지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이어 진료는 10%만 맡고 교육만 전담하는 교수 선발을 제안했다.

본과 1학년 시작 전, 의예과 2년간 의과대학이 의학교육 시설과 인력 확보 등 역량을 갖출 수 있을지에 대한 질의에는 "100% 갖출 수 없다"고 확신했다.

이 교수는 “현재 정원 40명인 충북의대의 교수가 120명이다. 이들이 내년부턴 200명을 가르쳐야 한다. 교수를 400~500명으로 늘리겠다는 것인가. 교수로 갈 사람이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또 “정부는 신입생들이 예과로 입학하는 만큼 시설·인력 확충을 위한 시간이 있다고 하는데 최근 예과 수업의 3분의 1을 의대에서 하고 있다. 그 학생들은 누가 가르칠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또한 이 교수는 "충북의대는 원래 정원보다 4배 증가했다. 우리가 말하는 교육 시설은 단순히 강의실만 지칭하는 게 아니다. 실험·실습실, 소그룹 룸 등 다양한 시설이 필요하다"며 "최근 고려의대가 증축을 하면서 기자재 제외하고 설비만 약 200억원이 투입됐다. 이런 시설설비를 정부가 지원해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 이종태 소장은 "상대적으로 교육 여건이 잘 갖춰진 곳은 서울권이다. 하지만 서울권은 정원이 한 곳도 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역 의대에서 정원이 많이 늘었는데 사립의대는 정부 지원이 없는 만큼 매우 열악하다. 과거 모 지방의대는 해부학 교수를 채용하지 못해 수의학과 교수, 한의대 출신 교수를 채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 반발로 학생 교육은 못 하고 연구만 했다"며 교원 모집 어려움을 예상했다. 

이 소장은 의대 증원을 놓고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 국면이 끝나지 않는 것을 두고 국내에 의료인력 계획을 전담하는 상설 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거버넌스 구조가 낙후돼 있고 그래서 이번에도 매우 시끄럽게 된 것"이라며 "미국 등은 거버넌스에서 전문가들이 충분히 논의해 (의대 정원을) 늘려왔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현재 우리나라 논의 구조에서는) 의료계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다른 방향으로 결정이 되고 있다"며 "의료계 대표가 과반수로 참여할 수 있는 거버넌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한편, 입법조사처는 의대 증원과 의료 공백 등 현 상황에 대한 뚜렷한 입장을 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회문화조사실 이만우 국장은 “국회의 기능 중 하나는 행정부 정책을 바꾸고 이해관계자들 간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다. 입법조사처는 갈등을 조정하는 주체가 아니라 갈등을 조정하는 입법자가 수행하는 업무에 필요한 정책 조사 등 지원하는 역할”이라며 “이에 직접적인 입장을 표명하기엔 어려운 상태”라고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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