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암과 탄허…역사적 사실의 중시와 비판적 접근으로 학술성 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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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암과 탄허…역사적 사실의 중시와 비판적 접근으로 학술성 제고
  • 이원석 동국대·중국사상사
  • 승인 2024.03.23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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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근현대 오대산의 고승 한암과 탄허』 (이원석 지음, 민족사, 440쪽, 2024.02)

 

본서는 필자가 지난 10년 동안 근현대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오대산의 고승 한암 스님(1876-1951)과 탄허 스님(1913-1983)을 연구하여 발표한 10편의 논문을 수정하고 보완하여 묶은 것이다. 근현대사 한국 불교계에서 한암 스님과 탄허 스님은 빠뜨릴 수 없는 고승이다. 두 스님의 일반적 약력은 생략하고 1999년 11월 30일자 《불교신문》은 11면에서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고승〉 20명을 선정하여 발표한 내용으로 대치한다. 여기에는 스승과 제자인 한암 스님과 탄허 스님이 나란히 열거되었다. 탄허 스님은 유불선 삼교와 동양학의 대도를 관통한 당대의 석학으로 통현 장자의 『화엄론』을 중심으로 삼고 청량 징관의 『화엄경소초』를 보조로 『신화엄경합론』을 현토하여 역해譯解한 것이 평가되었다. 한암 스님은 돈오점수의 참선 중시와 선교 합일이 거론되었고, 1926-1951년까지 오대산을 나가지 않았으며 몸을 던져 한국전쟁기 국군의 상원사 소각을 막은 승행이 보다 높이 고려되었다. 한암 스님의 학문 세계도 언급되었다. 탄허 스님이 도가를 섭렵하며 훌륭한 스승을 찾아 입산 출가한 곳이 바로 오대산 상원사의 한암 스님 회상이었다.

불교사를 중심으로 삼고 사상적 측면을 보조로 삼은 본서는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한암의 출가와 통도사〉는 한암의 출가와 구도적 출가관을 살펴본 다음 법사 경허 스님과 만남을 배경으로 통도사 내원암에서 석담 스님을 법사로 맞이하는 과정을 고찰하며 한암 스님의 역할과 교학관을 추적하였고, 근현대 영축산과 오대산을 대표하는 구하 스님과 한암 스님의 인연과 관계 및 그 주변을 검토하였다. 〈제2부 한암과 오대산 상원사〉는 한암이 오대산 상원사로 이거한 연유를 확대하고 그 시기를 1926년 봄으로 규정한 다음 26년 동안 ‘불출동구’한 실상을 추적하는 한편 현실사회를 중시한 내용을 아울렀고, 1936년 상원사에 설립되어 운영된 강원도삼본사연합 승려수련소에 대해 거시적으로 접근하면서 한암 스님의 ‘승가오칙’을 추적하였다. 〈제3부 탄허의 출가와 학술 사상〉은 탄허 스님이 출가 이전에 수학한 전통 학술과 오대산 상원사의 한암 스님에게 출가하는 과정을 살폈고, 근세 동아시아의 유학적 관점에서 본 탄허 스님의 학술 및 회통론과 삼교합일론을 논의하였으며, 탄허 스님의 유가적 경세 사상을 고찰하며 의의와 한계를 음미한 것이다.

우선 본서의 특징은 역사적 사실이 매우 중시된 점이다. 각종 회고 자료나 사료는 엄격한 검토와 비판을 거쳐 역사적 사실로 체계화되었고, 반면에 근거가 빈약하거나 부족한 것은 가능하면 피하거나 공백으로 남겨두었다. 또한, 고승 연구나 불교학에 수반되는 종교적 신앙적 기능은 주목되지 않았다. 따라서 엄격한 사료의 검토와 논거를 기반으로 논증하거나 해석하는 역사학적 측면이 부각되었다. 이는 근세⋅근대 중국의 사상사를 연구하는 방법론이 한국 근현대 불교사에 적용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예리한 문제의식이나 비판적 접근과 결합되어 오대산문이나 학계의 기존 정설을 다시 음미하고 새로운 학설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본서는 오대산문이나 학계의 한암상을 상당 부분 재검토하거나 비판하며 부정하였다. 필자는 ‘반고 이전 면목’의 문제의식이나 ‘금강산 감흥’이라는 한암 스님의 출가의 동기를 비판하였고, 학계에서 처음으로 ‘22세출가설’을 부정하며 ‘19세출가설’을 체계적으로 논증하였다. 한암 스님의 생애에서 공백으로 남아 있던 통도사 내원암 시절을 복원하고, 법사 석담과 도반의 승행과 수행을 추적하였다. 당시 한암은 호명이 ‘조실’이고 실상이 ‘강사’였지만 참선에도 몰두한 실상을 밝히며 승가오칙의 근원을 추적하였다. 오대산문에서 신성시한 1925년 상원사로의 이거와 27년간 불출동구도 부정하고, 1926년 봄에 상원사로 옮겨 26년간 오대산에서 불출동구하면서도 현실사회를 함께 중시한 점도 밝혔다. 강원도삼본사연합 승려수려소의 설립과 운영을 규명하며 그 주체는 일제 총독부의 지시를 받은 강원도였고, 그 소장은 강원도 내무부장이었다. 이상에 따라 한암 스님의 생애 연구는 대체로 매듭지어졌다.

동일한 접근은 탄허 스님의 연구에도 적용되었다. 면암⇒간재⇒이극종⇒탄허 스님으로 이어지는 학통은 재검토되었다. 특히 부친 김홍규와 보천교는 주목되었다. 이는 출가 이전 탄허의 전통 학술 수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탄허 스님이 오대산 상원사로 입산 출가한 배경에는 1929년부터 해체되기 시작한 보천교의 영향과 부친의 권유가 있었다. 탄허 스님이 유가에서 도불로 나아가는 전환에서 소옹의 『황극경세서』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이해되었다. 탄허 스님의 학술은 불교적 심성론에 근거하여 주자학을 비판하는 반면에 양지설과 지행합일을 중시하는 양명학적 성향이 강하였는데, 왕기⋅왕간⋅이지와 같은 중국 명대 양명학 좌파의 핵심 사상이 녹아 있다. 탄허 스님의 회통론과 삼교합일론도 보천교의 교리에서 비롯되었다가 불교의 화엄으로 전환되었다. 그 논리는 종지, 뿌리, 근원, 귀일, 무애, 성기설 등이 있지만, 순자의 “천하무이도天下無二道 성인무양심聖人無兩心”이나 소옹의 마음 중시, 명말의 삼교합일 등 중국의 학술 사상도 영향을 미쳤다. 이에 따라 탄허 스님의 학술은 ‘[불]도’로의 지향성이 결정되었다. 본서는 근현대 고승 연구에서 객관성과 합리성을 포함한 학술성의 제고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본서를 벗어나 거시적으로 살펴보면, 원래 오대산 불교문화의 특징은 원융이 거론되곤 한다. 이는 상고의 고산 숭배 신앙, 신라 자장의 오대성산신앙과 불국토사상, 통일신라의 화엄만다라와 그 말기 사굴산파 범일의 불교사상, 고려 말 이래 오대성산신앙, 심지어 현재의 강릉단오제로 이어졌다. 한암 스님의 좌선우교⋅삼학겸수⋅승가오칙⋅이사理事의 합일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는 탄허 스님에게로 이어졌다. 탄허 스님의 삼학겸수⋅경세 사상뿐만 아니라 회통과 삼교합일론도 원융의 한 모습이다. 학술과 사상의 비판은 실로 회통이나 원융을 위한 것이다. 이는 오대산이 한반도의 중심에 가까운 위치에 있으며 오대라는 고산의 형승과 관계가 깊다. 사실, 필자도 오대산문의 정설을 많이 비판하였지만,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은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본서의 출판도 오대산의 원융적 불교사상과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추론을 덧붙인다. 그 밖에 본서는 《법보신문》, 《불교신문》, 《현대불교》 등의 소개를 참조하면 된다. 

 

이원석 동국대·중국사상사

동국대학교 다르마칼리지 교수. 중국 근세⋅근대의 학술사상사를 전공으로 했으며, 동국대 문화학술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전임연구원을 역임했다. 2013년부터 한암 스님과 탄허 스님에 대한 연구 논문을 발표해 2023년 제3회 탄허학술상을 수상했다. 중국 사상사 논저로는 『근대중국의 국학과 혁명사상』(2002), 「19세기 전반 양주학파 왕희손의 경세론」, 「조청의 학술교류와 통학적 학술관: 19세기 전반 양주학파와 추사 김정희」, 「양주학파 완원의 천산학과 서학관」 등이 있다. 번역 역주서로는 『중국의 근대혁명과 전통사상 사이에서: 유사배 평전』(2012), 『중국의 예치시스템』(공역, 2000), 『일지록집석1』(공역, 2020) 등이 있으며, 불교학 저서로는 『강릉포교당 관음사 100년』(2023), 『한국의 사리 신앙 연구』(공저, 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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