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앙숙인가? … 미국과 러시아 관계의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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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앙숙인가? … 미국과 러시아 관계의 재조명
  • 정헌주 고려대·사회학
  • 승인 2024.03.1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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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에게 듣는다_ 『미국과 러시아: 전쟁의 원인과 평화의 조건』 (피티림 A. 소로킨 지음, 정헌주 옮김, 간디서원, 312쪽, 2024.02)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와 서방국가(특히 미국) 간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국제사회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은 물론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우리에게 새로운 사실이 아니어서 마치 당연한 일처럼 여기기도 한다. 그 결과 갈등의 해소를 위한 노력보다는 갈등의 양상을 부각하는 데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과 러시아 간 갈등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미국과 러시아(옛 소련) 간의 갈등이 본격화한 시기는 줄잡아 2차 대전 직후인 1945년부터 지금까지 약 80년이다. 그 사이에 1970년대 데탕트 시대와 1985년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시기를 제외하면 50년도 채 되지 않는다. 러시아제국이 탄생한 1721년 이래 미국이 독립한 1776년부터 근 200년 가까이 두 나라는 우호적인 관계 때로는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던 두 나라가 어째서 2차 대전 직후부터 돌연 갈등관계로 돌아섰을까? 두 나라가 다시 갈등을 해소하고 우호적이고 협력적인 관계로 되돌아갈 수 없을까?

미국과 러시아 간의 갈등은 비단 두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평화에 막중한 영향을 미치므로 두 나라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대해 속 시원한 해결책을 내놓은 책들을 찾기는 어렵지만 피티림 A, 소로킨의 『미국과 러시아』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가 있다.

러시아(옛 소련 포함)와 미국에 관해서는 많은 것이 책, 저널, 뉴스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접하고 있는 러시아와 미국에 관한 내용이나 정보는 대부분 서구 학자나 서구 언론인을 통해 전달된 것들이다. 따라서 러시아와 미국에 관한 내용이나 정보는 대개 서구적인 시각에서 심지어 서구 중심주의 관점에서 기술된 것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현재 유포되고 있는 저작들과 정보 중 다수는 냉전시대에 기술된 것이어서 러시아(옛 소련)와 미국을 주로 적대적 관계로 묘사하고 있으며, 심지어 미국은 긍정적으로 러시아는 부정적으로 규정하는 이분법적 논리로 단정하는 경향이 있다.

소로킨은 러시아에서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 최고의 대학 페테르부르크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했고, 미국에서도 최고의 대학 하버드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했다. 그런 면에서 소로킨은 서구 편향에서 다소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사회 최하층에서 사회 최상층까지 온갖 사회계층 사다리를 거쳐서 계급편향에서도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피티림 소로킨(Pitirim Alexandrovich Sorokin: 1889.1.21 ~ 1968.2.10)<br>
피티림 소로킨(Pitirim Alexandrovich Sorokin: 1889.1.21 ~ 1968.2.10)

피트림 A, 소로킨은 러시아제국 말기인 1898년에 태어났다. 빈농 가정에서 태어난 소로킨은 순회노동자에서 시작하여 직공생활을 하다가 페테르부르크대학에 입학했다. 졸업 후에는 동 대학 교수가 되어 철학, 심리학, 윤리학, 역사학, 법학을 연구하고, 최종적으로 사회학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1917년 페테르부르크대학 최초의 사회학 교수가 되었다.

소로킨은 신문 편집주간, 전(全) 러시아 농민 소비에트 창립 멤버로 활동하다가 1917년 수립된 임시정부의 케렌스키 내각에 각료로 참여했고, 러시아 공화국회의 및 헌법회의 위원을 지냈다. 1917년 10월 혁명 후에 소로킨은 케렌스키 내각에 참여한 이유로 볼세비키 정부에 의해 투옥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각계의 구명운동으로 볼셰비키 정부는 국외 추방 명령을 내렸다.

1923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네소타대학을 거쳐 1930년 하버드대학으로 옮겨 사회학과를 창설했다. 미국에서 교수생활을 하면서 소로킨은 『사회이동』(Social Mobility, 1927), 『사회·문화 동학』(Social and Cultural Dynamics, 4권, 1937∼1941), 『혁명의 사회학』(Sociology of Revolution, 1925), 『사회·문화 및 퍼스낼리티』(Society, Culture and Personality. 1947) 등 당시 급변하는 사회의 변동에 관한 많은 대작을 저술하여 미국 사회학의 발달에 지대한 기여를 했다.
 
『미국과 러시아』는 소로킨이 하버드대학에 있던 1949년에 저술한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냉전이 본격화하기 시작될 무렵에 쓴 탓도 있지만 러시아와 미국을 대립적 또는 적대적 관계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두 나라 사이의 관계를 우호적 협력적 관계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냉전시대 관점에서 보면 틀릴 수도 있지만 사실 미국은 1776년 독립한 이래로 오랫동안 러시아와 교류하며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왔다.

미국이 독립할 당시 영국과 대립하고 있던 러시아는 미국의 독립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그 후로 러시아와 미국은 서로 충돌하기는커녕 사회, 문화, 예술, 문학 등 여러 분야에서 상호교류하며 우호적 관계에 있었다. 19세기 제국주의시대에도 미국과 러시아는 심각한 충돌이 없었으며, 특히 러시아가 알래스카를 양도했을 때 미국에서 러시아 인기는 절정에 달했다.

1917년 혁명이 일어나면서 두 나라 사이의 관계가 일시적으로 소원해지기도 했지만 잠시뿐이었다. 미국은 혁명을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혁명을 저지하려는 백군에의 참여는 소극적이었으며, 러시아가 대기근에 직면한 1920년대 초에 미국은 구호단을 파견해 러시아를 도왔다. 20세기 들어 두 차례에 걸친 전쟁에서도 두 나라는 오히려 동맹을 맺고 전우애를 발휘하며 서로 협력했다.

 

냉전시대에 접어들면서 두 나라는 적대적 관계로 변했지만 1970년대 들어 양국 정상이 방문하는 등 두 나라 사이에 화해 무드가 조성되었고, 1985년 페레스트로이카, 1990년대 동구권 개방시대에 이르면서 두 나라 사이의 경제협력이 왕성해졌다. 21세기 들어 9.11사태와 함께 세계 곳곳에서 분쟁이 심화됨에 따라 양국 간에 대리전 형태로 많은 충돌이 일어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두 나라가 적대적 관계로 충돌한 시기는 그리 길지 않고 오히려 서로 우호적으로 교류한 시기가 더 많았다.

『미국과 러시아』는 냉전이 본격화하기 전에 쓴 것이지만 그간 두 나라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한 근거를 두 나라 사이의 기원부터 냉전 이전까지 두 나라 사이의 친화성에서 찾는다. 이 점에서 두 나라 사이의 관계를 거의 모든 점에서 상반된 관점에서 바라본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에서 두 나라 사이의 관계를 보는 신선함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미국에 대해서는 역사와 영웅 등에 대해 많이 알고 있지만 러시아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알고 있거나 부정확하게 때로는 부정적으로 알고 있다. 『러시아와 미국』은 러시아와 관련한 사항을 러시아가 탄생하여 제국으로 성장하기까지, 그리고 혁명 후 러시아 사회, 정치, 경제 상황에 대해 간단하게 요점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게다가 러시아와 미국이 사회, 문화, 예술, 문학에서 서로 어떻게 상호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서도 간락하게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와 미국』은 러시아와 미국 간의 관계 그리고 러시아 자체에 대해 그간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때로는 왜곡된 내용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할 수 있는 신선한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

소로킨이 이 책을 쓴 의도는 단지 러시아와 미국 그리고 두 나라의 관계를 설명 소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던 두 나라가 적대적 관계로 돌변하면서 인간의 욕망과 열정으로 파괴된 세계를 재건하려는 희망이 사라져가는 데 대한 우려에서 비롯되었다. 역으로 평화로운 세계를 바라는 열망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덤으로 이 책은 러시아가 작은 공국에서 대제국으로 형성되는 과정, 러시아정교의 탄생에서 혁명기 박해까지의 과정, 러시아의 교육, 결혼 및 그 외 사회제도의 변천 과정, 러시아의 과학 기술, 문학, 예술과 미국과의 교류 등 평소에 러시아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 잘 알지 못했거나 접하기 어려웠던 내용을 간략하지만 명료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21세기 중반에 접어들고 있는 이 시점 그리고 소로킨이 이 글을 쓴 지 70년 넘게 지난 지금까지 세계의 평화는 잠깐이고 전쟁과 분열, 적대로 얼룩져왔다. 소로킨의 바람대로 ‘항구적인 평화의 전당’을 세우려면 러시아와 미국 두 나라 사이의 적대적 관계를 불식하고 냉전시대 이전의 우호적 협력적 관계로 되돌아가야 할 것이다. 소로킨의 희망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정헌주 고려대·사회학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을 역임하고 현재 동 연구소 연구교수로 있다.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계급이론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 『정보사회의 빛과 그늘』(공저), 『현대사회와 소비문화』(공저) 등이 있고, 『짐멜의 갈등론: 갈등에 대한 사회학 논쟁』, 『지구시대』, 『사회조직론』, 『갈등론』, 『엘리트 순환론』, 『진보의 환상』, 『소유의 기원』 등 다수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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