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를 긍정하라! 허무는 삶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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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를 긍정하라! 허무는 삶의 출발점이다.
  • 문성훈 서울여대·현대철학
  • 승인 2024.03.16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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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힐리스트로 사는 법: 삶이 무겁고 힘든 사람에게 니체의 니힐리즘이 전하는 지혜 | 문성훈 지음 | 이소노미아 | 332쪽

 

부와 권력, 학벌과 지위, 집안과 외모를 가지고 사람들을 평가하고 등급화하고 서열화한다. 마치 이런 것들이 절대적 가치라도 지닌 양 사람들을 구별하고, 차별한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남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무한경쟁에 뛰어들며, 서로를 적대시한다. 경쟁에서 이긴 사람은 우월감에 빠져 남을 무시하고, 경쟁에서 진 사람은 열등감과 자책감에 시달린다. 

이 책은 니체가 신의 죽음을 선포하듯, 이런 세속적 가치들의 죽음을 선포한다. 이 세상에는 인간이 따라야 할 그 어떤 절대적 가치도 없으며, 인간이 살아야 할 이유나 목적 같은 것도 없다. 인간 삶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존재 자체도 그렇다. 이 세상은 아무런 목적도 이유도 없이 그저 무의미한 생성, 변화, 소멸을 반복할 뿐이다. 이것이 니체가 말한 니힐리즘(허무주의)이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할까? 죽을까? 살 이유도 없지만 죽을 이유는 더더욱 없다. 

니체는 자기 창조적 삶을 말한다. 나 스스로 세상만사의 가치를 정하고, 나 스스로 인생을 만들라는 것이다. 그리고 흡사 절대적 가치라도 되는 양 우리를 짓누르는 모든 세속적 가치에서 해방되어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산하라고 말한다. 이런 자기 창조를 통해 이제 우리는 그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대체불가능 존재가 된다. 이것이 ‘니힐리스트로 사는 법’이다.

이 책은 니체의 니힐리즘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니체의 니힐리즘에서 출발하지만, 동서양을 넘나들며 인류가 남긴 수많은 지적 유산을 ‘니힐리스트로 사는 법’에 엮는다. 파르메니데스, 고르기아스, 디오게네스, 스피노자, 쇼펜하우어, 키르케고르, 사르트르, 프롬, 푸코, 왈쩌, 롤즈, 호네트에 이르기까지 철학자의 목소리를 통해 니힐리즘이 무엇이고, 왜 니힐리스트가 되는지를 말한다. 그리고 도연명, 이백, 스타인벡, 헤밍웨이, 카뮈가 니힐리스트의 삶을 상상하며, 노자, 장자, 공자, 불교, 기독교를 통해 새로운 삶을 말한다.

최근 인간의 삶을 다룬 철학적 수필이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영국의 정치학자 이자야 벌린은 “한 교수의 조용한 연구실에서 배양된 철학적 개념들이 한 문명을 파괴”할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지금 철학은 세상사에 짓눌려 무겁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을 위로하고 어루만져 주는 길을 걷고 있다. 이 책도 그중 하나이다. 삶이 마냥 즐겁고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면, 부, 권력, 학벌, 지위, 집안, 외모 등 세속적 가치의 허무함만이 아니라, 이 때문에 삶이 무겁고 힘든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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