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종교와 종교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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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종교와 종교 갈등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4.03.16 0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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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제32강_ 김회권 숭실대 교수의 「21세기 종교와 종교 갈등」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열 번째 시리즈 ‘오늘의 세계’ 강연이 매주 토요일 네이버 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여섯 섹션 총 54강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인류 공동체에서부터 개인의 실존에 이르기까지 지금 여기의 어젠다를 새로운 시선으로 담론의 장을 펼친다. 오늘의 사회와 문화 영역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추이를 점검해보는 네 번째 섹션 ‘오늘의 사회와 문화’ 제32강 김회권 교수(숭실대 기독교학과)의 강연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21세기 종교와 종교 갈등


김회권 교수는 “서구 문명(기독교 문명권 국가들)과 이슬람 문명을 대표하는 세력(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갈등을 다루되, 그것이 어느 정도로 종교적인 동기에 의해 추동되는지” 살펴본다. 이때의 “종교 갈등”이라 함은 “종교가 주도적으로 촉발시킨 갈등이거나 다른 복합적인 요인들이 한데 합해서 벌어진 갈등일지라도 종교가 의미 깊게 이용되는 갈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와 관련하여 세 가지 주장을 펼친다. 먼저 “종교는 어느 세기이건 민족적, 국가적, 부족 간의 갈등을 대변하기도 하고 그 갈등에 동원되기도” 해왔으며 “21세기만이 유독 종교적 이유 때문에 문명 충돌이 일어나는 세기는 아니다”라는 것, “둘째, 거시적으로 보면 미국과 서방 대(對) 이슬람 문명 국가들, 혹은 테러 단체의 갈등은 문명 충돌로 볼 수” 있으나 “깊이 들여다보면 종교 갈등 이상의 차원이 개재되어” 있는바 “21세기 종교 갈등은 19-20세기 서구 문명이 이슬람 문명권에 가한 공격에 대한 늦게 착수된 이슬람 문명의 도전이자 반격이라는 점에서 그렇다”라고 이야기한다. 셋째로는 “미국과 서구 대(對) 이슬람 문명권과의 종교 갈등의 구체적 사례로 간주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에 대해 천착하면서 그 갈등의 형세로 보아 “쌍방이 거의 같은 크기의 세력, 명분, 확신을 갖고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보금자리를 공격하는 자로부터 보금자리를 빼앗긴 자가 보금자리를 되찾으려는 싸움”임을 지적한다. 그리하여 “미국-서구 대(對) 이슬람 문명 대결, 이스라엘 대(對) 하마스의 대결”을 바라볼 때 “‘종교’만 주목하지 말고 그 종교적 언어나 수사가 가리키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을 주시하자”라고 주문한다. 

 

지난 2월 17일, 김회권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오늘의 세계>의 32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1. 들어가는 말 - 21세기, 종교 갈등의 세기인가?

이 강연은 서구 문명(기독교 문명권 국가들)과 이슬람 문명을 대표하는 세력(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갈등을 다루되, 그것이 어느 정도로 종교적인 동기에 의해 추동되는지를 다룬다. 여기서 “종교 갈등”이라고 함은 “종교가 주도적으로 촉발시킨 갈등이거나 다른 복합적인 요인들이 한데 합해서 벌어진 갈등일지라도 종교가 의미 깊게 이용되는 갈등”이다. 종교 갈등은 종교 자체의 내재적 지향과 가치 때문에 초래되는 갈등이기도 하고 종교에 호소해야만 타자 배척의 동력을 결집시키기에 유리한 갈등이기도 하다.

이 강연에서는 세 가지를 주장한다. 첫째, 종교는 어느 세기이건 간에 민족적, 국가적, 부족 간의 갈등을 대변하기도 하고 그 갈등에 동원되기도 했다. 21세기만이 유독 종교적 이유 때문에 문명 충돌이 일어나는 세기는 아니다. 특정 종교가 민족 정체성을 구성하는 경우에는 종교의 이름으로 외부 문명을 배척하는 현상은 이전 세기들에서도 나타났다. 종교 자체가 타자 배척적인 정신성을 보양하기 때문이다.

둘째, 거시적으로 보면 미국과 서방 대(對) 이슬람 문명 국가들, 혹은 테러 단체의 갈등은 문명 충돌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면 종교 갈등 이상의 차원이 개재되어 있다. 21세기 종교 갈등은 19-20세기 서구 문명이 이슬람 문명권에 가한 공격에 대한 늦게 착수된 이슬람 문명의 도전이자 반격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서구와 이슬람 문명의 갈등은 시차가 있는 갈등이며, 전자의 도전과 후자의 응전으로 진행되고 있다. 서구와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 단체들의 갈등은 층위가 다른 당사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비대칭적인 갈등이다.

셋째, 미국과 서구 대(對) 이슬람 문명권과의 종교 갈등의 구체적 사례로 간주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을 천착할 것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은 “종교 갈등”이라는 중립 용어, 혹은 “문명 충돌”이라는 서구 중심적 개념으로 파악될 수 없다. “충돌” 혹은 “갈등”은 쌍방이 거의 같은 크기의 세력, 명분, 확신을 갖고 대결하는 형세를 묘사할 때 동원되는 단어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은 이런 의미의 갈등이나 충돌이 아니다. 보금자리를 공격하는 자로부터 보금자리를 빼앗긴 자가 보금자리를 되찾으려는 싸움이다. 이런 점에서 헌팅턴의 문명 충돌 가설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이해하는 데는 지나치게 우활(迂闊)한 담론이다.

이 강연의 결론은, 미국-서구 대(對) 이슬람 문명 대결, 이스라엘 대(對) 하마스의 대결에서 “종교”만 주목하지 말고 그 종교적 언어나 수사가 가리키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을 주시하자는 것이다. 종교의 차이는 쉽게 해결할 수 없을지 몰라도 존엄이 파괴된 인간들이 내지르는 아우성은 종교의 차이를 넘어 인간의 자연법적 이성과 양심에 호소하는 보편 언어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삶의 실재, 특히 인간 존엄이 파괴된 인간의 참상을 더 진정성 있게 공감하고 그것의 해결에 이바지하도록 우리 양심을 경각시킬 때 그 빛을 발한다.

 

2. 특정 민족의 문화 자산이 된 고등 종교 안에 내장된 폭력성

이 단원의 요지는 “21세기에 비로소 종교가 문명 충돌을 추동하는 요인으로 부상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분포된 대다수 고등 종교들은 오래 전부터 인류를 나누고 대립시키는 분열의 역학을 통해 자기 세력을 구축한 적이 많다. 종교는 선악 판단, 구원과 비(非)구원, 선민과 비(非)선민, 궁극적 충성과 잠정적 충성, 내세 영생과 영벌 처분권을 보유했다고 주장하는 “말과 신념, 교리와 행동, 보상과 처벌”로 사람들을 통치하는 지배 체제이다. 종교는 “선악으로 구성된 이원적 갈등 세계”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현실에서 실연하려는 열정을 방출하거나 그 방출을 조장한다. 특히 특정 민족의 정체성 형성에 기여함으로써 문화 자산으로 토착화된 종교는 개인과 국가 공동체 전체에게 궁극적 충성 대상을 제시하고 교도력을 행사한다. 

종교는 동일한 신을 동일한 방식으로 숭배하는 사람들 사이에 연대를 창조하고 강화한다. 이 신봉자들 사이의 연대는 다른 신들 혹은 같은 신을 다른 방식으로 섬기는 자들에 대한 적개심으로 전환될 수 있는 부족주의적 결속으로 드러날 때가 많다. 종교적 경계선들은 순결하고 덕스러운 ‘우리’와 ‘불결하고 악한 그들’을 분리한다. 다른 신들을 섬기는 타자, 그리고 같은 신을 다르게 섬기는 자들은 충분히 인간답지 못하며 죽여도 되는 존재들이다. 가장 성스러운 경전에서 발견되는 타자에 대한 적대감은 자주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아무리 거룩한 경전들일지라도 역사적 상황이 변하면 부단히 재해석된다. 이런 점에서 고등 종교의 경전도 왜곡과 과잉 해석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떤 갈등들은 실제로는 세속적인 동기들과 이유들, 대의명분들을 보유하고 있는 갈등인데 겉으로는 거룩한 종교 경전을 동원해서 그것들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세속적 현실 정치적 좌절감, 분노, 그리고 생존 위기감을 표출하고자 하면서도, 사람들은 같은 종교의 신도들로부터 더 넓은 지지를 받기 위해 얼마든지 종교적인 대의명분을 주창할 수 있다.

이는 종교의 폭력성이 21세기에 처음 부각된 쟁점이 아님을 보여준다. 21세기가 종교의 갈등 조장적 기능이 더 부각되는 세기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헌팅턴이 그의 문명 충돌 가설에서 종교적 동인을 주요 갈등 요인으로 부각한 이유가 무엇일까? 헌팅턴의 문명 충돌 가설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이해에 어떤 통찰을 줄 수 있을까?

 

3. 헌팅턴 가설과 21세기 종교 갈등의 사례들: 서방 국가들 대(對)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비대칭적 갈등

1) 헌팅턴 문명 충돌 가설의 함의

헌팅턴의 문명 충돌 가설의 논지는 세 가지 명제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냉전 이후 세계에서는 사람들의 문화적, 종교적 정체성이 국가, 문명, 혹은 집단 간 갈등의 주요 원인이 될 것이다. 둘째, 미래의 전쟁은 국가 간이 아니라 문화 간 전쟁이 될 것이다. 경제적 요인보다는 문화적 요인이 갈등의 축을 구성한다. 셋째, 문명 충돌을 일으키는 문화의 정수, 핵은 종교다. 그는 미래의 핵심 갈등이 문명(종교) 충돌이 되는 이유 여섯 가지를 드는데 그중 넷째 이유가 서구와 이슬람의 문명 충돌을 설명하는 데 유익하다. ‘서구 시장자유주의적 문명이 일극 체제를 이루어 비서구에 강요하는 과정에서 비서구 종교성이 강한 진영의 뿌리 복귀 반동을 초래한다. 그러므로 서구의 정치·경제적 지배적 지위가 비서구 문명들로 하여금 전통적인 가치와규범들에 복귀하게 함으로써 그들 자신의 권력 토대(power bases)를 공고화하도록 압박했다.’ 

헌팅턴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지난 세기에는 “군사력, 경제력, 그리고 국제 기구 동원 능력 면에서 힘과 영향력에서의 차이가 서구와 비서구 문명들 사이 갈등의 한 원천이었다.” 어떤 비서구 문명들은 자유주의, 인권, 자유, 평등 그리고 법치 등과 같은 서구 문명의 개념들에 대해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개념들이 서구 문명 국가들에 의해 자신의 나라들에 강요되거나 주입되거나 처방될 때 보통 공격받는다고 느낀다. 자신들의 전통적 문명 가치가 손상당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저항과 갈등 노선을 취하는 비서구 국가들에는 서구 문명이 더 이상 “보편적”인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집단인 알카에다가 2001년 9월 11일 뉴욕과 워싱턴을 공격했을 때 세계는 서구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더 이상 보편적으로 환영받는 가치 체제가 아님을 충격적으로 깨달았다. 이것은 서구 문명이 다극적 문명 공존 시대의 문법을 배워야 한다는 의미이다. 서구는 이제 다양한 문명이 공존하고 결합하여 미래 세계를 형성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역사의 진보가 될 수도 있다.

헌팅턴은 9·11 테러 사태를 「문명들의 충돌?」에서 예견했던 문화적 차이들에 근거해 발생한 갈등 유형의 한 사례라고 식별했다. 그는 서구와 이슬람의 충돌을 야기한 최근의 요인으로 이슬람의 부활과 이슬람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 그리고 모든 문명이 서구의 가치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서구 보편주의의 가치관에 대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격분에 찬 저항을 든다. 헌팅턴은 무슬림 전쟁 시대의 종식이 그것의 원인이 제거되어야 끝난다고 주장한다. ‘서구에 대한 무슬림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전략 중 하나가 미국의 대(對)이스라엘 지지 정책 변화이다.’

 

2) 미국과 서방 국가들의 헤게모니에 저항하는 이슬람 문명의 도전

21세기 초입에 일어난 9·11 테러는 19-20세기에 서구가 이슬람 문명권에 가한 다차원적인 공격에 대한 일괄 정산식 반격이었지 21세기에 시작된 종교 갈등은 아니다. 그 갈등은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내내 이슬람 문명권에 대한 서구의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침략 확장에 대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대응이었다.

9·11 테러 이후에 전개된 미국과 서방의 공격, 간섭, 그리고 제재와 이슬람의 응전 사례에서 공세를 취한 미국과 서방의 경우에는 종교적 슬로건에 거의 호소하지 않았다. 헌팅턴이 말하는 서로 다른 문명을 대표하는 핵심 국가 간에 벌어진 문명 충돌이나 심지어 종교 갈등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서구 문명 국가들의 대(對)이슬람 문명권 공격과 침투에는 정치적 이념, 민주주의, 자유, 인권, 평화(대량 살상 무기 억제)의 확산 명분이 더 명시적으로 부각된다. 즉 서구 기독교 문명 국가들은 정치적 대의명분을 내세워 도전하고, 이슬람 수세적인 대응자들은 종교적 대의명분을 내세우며 응전한다. 여기서 공세적인 입장을 취하는 미국과 서방은 종교적인 명분보다는 정치적 이념이나 이데올로기(자유주의 시장경제) 확산 명분을 더 앞세운다. 다만 미국과 서방 대(對) 이슬람 문명권 국가들과 테러 단체들의 갈등은 정규군과 민병대 수준의 테러 조직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이라는 점에서 비대칭적인 문명 충돌이다.

우리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이 어떤 점에서 종교 갈등인지, 어떤 점에서 종교 갈등이 아닌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특히 종교 갈등처럼 보이는 갈등 안에 보편적인 인간 존엄 투쟁이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갈등은 힘과 세력, 자기 보호 수단과 능력이 어느 정도 대등한 당사자들의 충돌을 의미하지만 어떤 갈등은 일방과 타방에 대한 침략이요 인간 존엄 파괴일 때가 많다. 외견상으로 종교적 갈등처럼 보이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은 그 본질이 종교 갈등으로 축소될 수 없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갈등은 이질적인 문명권에 속한 국가 대(對) 국가의 대칭적인 갈등이 아니다. 이질적 문명 국가와 이질적 문명권을 대표하는 테러 집단의 비대칭적인 갈등이다. 후자는 전자보다 더 자주 더 적극적으로 종교적인 대의명분을 내세운다. 하마스의 종교적 수사 동원은 더 넓은 범위에서 지지와 연대, 후원과 방조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에 가깝다. 자연스럽게 하마스는 종교적 레토릭을 더 자주 동원하고 그것을 전면에 내세운다. 물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압제하는 공세적 입장에 선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도 팔레스타인 땅에 대한 이스라엘의 역사 영유권과 땅 점유권을 정치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아브라함, 다윗 등 종교적 선조들을 거명한다.

 

4. 헌팅턴 가설로 이해할 수 없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본질과 비대칭적 종교 갈등

“갈등은 힘과 세력이 대등한 당사자들 간의 대립”이라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은 일단 갈등이 아니며, 21세기형 종교 갈등은 더더욱 아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은 침략 전쟁에 대한 방어 전쟁이며, 19-20세기에 자행된 공격에 대한 21세기형 응전이요 반격이다.

하마스가 3000여 명의 병사들을 급파해 이스라엘 민간인들을 수천 명 살해하고 240여 명의 인질들을 나포한 2023년 10월 7일 이래 하마스-이스라엘 갈등은 넉 달 넘게 지속되고 있다. 하마스의 기습 공격은 2017년 이후 이스라엘에 취했던 상대적 온건 입장의 공공연한 철회였다. 이스라엘과 국제 사회가 하마스의 온건 노선에 대해 냉담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취해온 대(對)이스라엘 온건 노선을 무시하고 배척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반발이었다. 하마스의 온건 노선에 대해 최소한의 존중도 보이지 않았던 것을 넘어 네타냐후 총리는 2017년 이후에 오히려 더 강경해진 노선을 드러냈다. 온건 노선에 대한 보상적인 지원책의 결여가 하마스로 하여금 대규모 공격을 기획하도록 유혹했다는 것이다.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촉발시킨 원인 중 더 당면한 문제는 종교 문제도 아니고 정치적 노선 문제도 아니다. 가자 지구 거주민들의 열악한 삶의 환경이 하마스로 하여금 이스라엘 기습 공격이라는 단말마적 함성을 내지르게 했다. 시민들에게 기본적인 생필품 제공도 못하는 하마스는 정부 행정 서비스의 개선으로는 민중 지지를 유지할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했다. 이 참혹한 가자의 현실을 제쳐두고 하마스 기습 공격의 원인을 달리(종교적 동인으로) 찾으려는 시도는 설득력이 없다. 갈증과 기근, 의료 서비스 부재로 “살려 달라”고 소리치는 요구가 종교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절망적인 궁지에 내몰려 대중 지지를 획득할 수단이 소진된 상황에서 가자의 통치 세력인 하마스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마스는 이번 기습 공격을 통해 여러 청중에게 다중 음성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다. 첫째, 이스라엘 정부에 주는 메시지이다. ‘당신의 팔레스타인 침략과 압제는 당신의 일상 행복을 파괴하고 위협할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원통한 아우성은 당신들의 평화를 영구적으로 손상시킬 것이다. 정착촌 확장으로 더 이상 우리 땅을 빼앗지 말고 우리를 감금하거나 압제하지 말라.’ 둘째, 가자 주민들과 요르단 서안 지구 동포들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우리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해방과 자유를 쟁취하는 유일하고 합법적인 대표자이자 대변인이다. 우리를 계속 지지해달라.’ 셋째, 국제 사회, 특히 아랍 형제 국가들에 주는 메시지이다. ‘팔레스타인과 가자 봉쇄를 영속화하면서 아랍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이스라엘에 속지 말라. 우리는 이스라엘 뱃속에 삼켜진 희생자들이다. 팔레스타인을 배제한 채 이스라엘이 아랍 국가들과 화약을 체결하는 것은 위선이자 속임수이다.’ 이처럼 하마스의 대(對)이스라엘 투쟁은 종교적 투쟁이 아니라, 인간다운 생존을 보장받기 위한 투쟁이다. 이런 갈등과 투쟁에서 문명의 충돌을 보는 것은 과도한 추상적 사고의 폐해일 것이다.

 

5. 결론

우리가 만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종교적 갈등으로 축소해버린다면 그것은 아직도 치유와 회복 가망이 없이 지옥에서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희생자들에게 2차 가해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고 볼 수 있다.

결론을 내려보자. 첫째, 헌팅턴의 문명 충돌설이 21세기 종교 갈등 가설로 이해된다면 그것은 다소 이념적 과잉 수사법이다. 세기와 상관없이 종교는 항상 폭력과 제휴하기 쉽다. 둘째, 서구 국가의 국제정치적 헤게모니에 대한 이슬람의 반격을 역사의 발전이라고 보는 헌팅턴의 문명 충돌 가설은 진취적이고 진보적이다. 셋째, 이슬람 문명권과 그 가치, 규범에 대한 서구의 침식, 침략, 공세는 정치적 이념의 확산(경제적 이익 담보, 정치적 자유 확산, 여성ㆍ아동 인권 확산, 이란 핵 억제, 이란의 신정 통치 분쇄)을 위한 것이며, 그것에 맞서는 이슬람 국가들과 이슬람 원리주의 집단들의 대응은 종교적인 저항이다. 하지만 이슬람 원리주의 테러 단체의 테러가 이슬람의 본질은 아니다. 넷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과 갈등은 종교적 수사가 동원되고 있다고 할지라도, 1930년대부터 지금까지 그것은 현실 정치적인 갈등이다. 특히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보금자리, 땅, 고향, 인간 존엄을 지키려는 보편적인 자연권적 행복을 되찾으려는 전쟁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 즉 희생자의 입장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바라보는 것이 인간의 이성과 양심에 더 부합하는 시각일 것이다. 헌팅턴의 지적대로 미국의 대(對)이스라엘 정책 변경이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 단체의 활동을 진정시킬 것이다. 

 

☞ 강연 바로보기: [열린연단]_ 21세기 종교와 종교 갈등 (김회권 숭실대 기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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