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힝야 이슈는 봄의 혁명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
상태바
로힝야 이슈는 봄의 혁명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4.03.09 22: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로힝야 제노사이드: 지구상에서 가장 박해받는 민족, 미얀마 로힝야의 눈물 | 이유경 지음 | 정한책방 | 380쪽

 

미얀마는 지난 2021년 쿠데타 이후 3년째 내전 중이다. 과거 미얀마 민주화운동은 미얀마의 다수 민족인 버마족 내에서 군사정권에 대한 투쟁이었다. 2021년 쿠데타 이후 그런 구도는 깨졌다. 미얀마의 민주화는 이제 진정한 연방민주주의, 즉 로힝야를 포함한 수많은 소수민족과의 연대에 기초해야만 가능하다. 미얀마에 대의민주주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군사독재가 지속된 이유도 소수민족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로힝야 사태로 전하려는 사실은 간단하다. 보편적 인권과 소수자 권리를 우리가 편의적으로 적용하거나 내팽겨친다면 결국 다수 모두가 같은 불행으로 달려간다는 것이다.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결국 다수자 내에서도 또 다른 혐오와 차별을 부르고 극소수 지배층의 분할통치만을 강화한다.

미얀마의 로힝야 사태는 정체성 정치에 대한 환기를 준다. 인종, 젠더, 종교, 민족은 당장은 대중 동원에 편리한 도구이다. 독재를 하려는 쪽에서나 독재에 반대하는 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진보 운동에 나선 쪽들이 소수자들을 옹호하고 연대하면서도 이 정체성 정치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은 향후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열쇠이다.

이 책은 가장 최근의 대학살로 간주되는 2016~2017년 사례를 뛰어넘어 보다 길고 깊은 호흡으로 로힝야 제노사이드를 담고 있다. 제노사이드는 단시간의 이벤트가 아니다. 2017년 발생한 학살은 제노사이드 마지막 단계 즉, ‘대량 절멸’의 사건으로 진단되었다. 그 ‘마지막’ 단계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에 걸쳐 ‘제노사이드 인프라’가 구축됐고, 진화했다. 로힝야들에게 가해진 박해의 무게는 수십 년 동안 로힝야들을 짓눌렀다. 우리가 몰랐을 뿐이다. 저자는 로힝야 제노사이드가 2017년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와 2017년 이후의 상황을 모두 살펴보는 게 이 끔찍한 범죄 사례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 1부는 ‘증오의 시대’로 열었다. 여기서 ‘증오의 시대’란 우선 2010년대를 특정한다. 2010년대는 미얀마가 소위 ‘민주화 이행기’를 지나며 “개혁”과 “개방” 두 단어가 ‘미얀마’라는 국가명의 수식어로 따라다니던 시기다. 2010년대는 또한 ‘민주화’ 바람을 타고 스며든 ‘표현의 자유’가 매우 악랄하게 남용된 시대이기도 하다. 로힝야를 향한, 그리고 미얀마의 무슬림 커뮤니티를 향한 혐오가 전방위적으로 확산됐고 폭력적으로 분출됐다. ‘로힝야 제노사이드’ 프레임으로 보자면 그 시대는 증오의 시대였다. ‘민주화’ ‘개혁’이 지배 담론이었을지는 몰라도 그 ‘민주화’는 군부가 ‘기획’한 것이었고 ‘개혁’은 ‘위로부터의 개혁’이었다는 점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제 2부에서는 로힝야 박해의 확장 버전으로 2013년 미얀마 중북부 소도시 멕띨라에서 벌어졌던 ‘멕띨라 학살’을 집중적으로 담았다. 제 3부는 로힝야 제노사이드의 제도적, 상징적, 실질적 대표성을 지닌 이슈 바로 시민권 이슈를 본격적으로 다뤘다. 제 4부는 제노사이드 범죄에 대한 설명과 제노사이드 방지 협약의 내용과 배경 등 이론과 정보를 우선 담았다. 이어 로힝야들이 반세기동안 직면해온 박해 상황들을 시기별로 상세하였다. 제 5부에서는 방글라데시 동남부 콕스바자르에 펼쳐진 로힝야 난민들의 삶을 담았다. 마지막으로 6부 ‘국경의 위험한 신호’는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하나는 로힝야 보트난민 스토리이고 또 다른 하나는 로힝야와 가장 가까운 이웃 라까인족 이야기다. 

오랜 시간 로힝야 말살 정책을 펴 온 핵심 주체는 당연하게도 역대 미얀마 군부 지배자들이다. 그러나 로힝야들의 본향인 라까인 주의 주류종족인 라까인 커뮤니티도 이 범죄에 직간접적으로 동참해온 가해집단이라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두 커뮤니티 갈등은 흔히 1948년 버마가 독립하기 이전 영국 식민지 시대, 특히 2차 대전 말미에 해당하는 1940년대 영국과 일본이라는 두 제국이 ‘아라칸’Arakan(현 라까인주)을 포함하여 버마 영토에서 충돌하던 시기로 거슬러 간다. 그런데 그 시점에서 좀 더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해보면 두 커뮤니티가 아라칸 땅(라까인 주)에서 평화롭게 공존했던 시대를 만날 수 있다. 그러하기에 더더욱 라까인 민족주의자들, 인종주의자들, 극단주의 세력이 로힝야를 타깃삼은 국가 폭력에 동참해온 근현대사는 매우 슬프고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두 커뮤니티간 반목의 역사를 잘 알고 있을 군부에게 분열정책은 ‘로힝야 제노사이드’의 효율적인 수단이 됐다.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현재 라까인주 또 다른 통치 세력으로 부상 중인 ‘아라칸 군’Arakan Army(AA)는 로힝야는 물론 미얀마 이슈를 추적하는 연구자, 언론인이라면 눈여겨봐야 할 조직이다. 2017년 대학살을 기준으로 ‘전과 후’ AA가 어떤 스탠스를 보였는지, 그리고 영토 장악력을 키워가는 AA통치하에서 라까인 커뮤니티는 로힝야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이웃이 될 수 있을 지, 아니면 AA자체가 또 하나의 억압 세력으로 ‘군림’할 것인지 등 중요한 물음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