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년 전 조선인들이 치러낸 ‘남의 나라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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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년 전 조선인들이 치러낸 ‘남의 나라 전쟁’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4.03.09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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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인들의 청일전쟁 - 전쟁과 휴머니즘 | 조재곤 지음 | 푸른역사 | 728쪽

 

지금으로부터 꼭 130년 전인 1894년 7월 시작된 청일전쟁은 한중일 동북아 3국의 운명을 가른 세계사적 사건이었다. 청나라는 서양 열강이 아닌 ‘섬나라’에 참패한 것을 계기로 온갖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패망이 가속화되었다. 일본은 ‘늙은 대국’에 압승을 거두며 근대화의 선도국임을 입증하며 이후 러일전쟁을 거쳐 태평양전쟁까지 군사적 제국주의의 길을 달려나갔다.

조선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기까지 하지만 타력에 의한 자주독립국의 한계에 부딪쳐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미국과 중국의 대결 구도, 러시아와 북한의 제휴, 중국과 대만의 갈등 등 최근 한반도 주변 정세가 심상치 않은 만큼 청일 양국의 틈바구니에서 원치 않는 전장戰場이 되어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를 입은 것은 물론 국가 운명도 비틀린 당시 조선의 역사를 들춰내는 것이 반면교사로서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 역사적 의미에 비해 청일전쟁에 관해 다소 무관심한 편이다. 역사 교과서에서 청일전쟁을 다룬 글은 길어야 한 쪽을 넘지 못한다. 조선 정부가 동학농민군 토벌을 요청하자 청나라 군이 진주했고, 일본군이 톈진조약에 따라 거류민 보호를 빌미로 출병했다가 전투가 벌어졌으며 그 결과 조선의 ‘보호국화’가 가속화되었다는 설명에 그치는 정도다. 게다가 관련서도 많지 않을 뿐더러 그나마 일본과 중국 번역서가 주류이며, 진지한 연구서로는 하라 아키라나 하라다 게이이치 등 일본 학자들의 저술이 나왔지만 어디까지나 일본의 시각에서 다뤘다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다. 당시 조선인들은 이 전쟁을 어떻게 바라봤고, 어떤 피해를 겪었으며, 정부는 어떻게 대응했는지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의 나라끼리의 전쟁이되 조선인들이 치러야 했던” 청일전쟁을 꼼꼼하고도 치밀하게 짚은 이번 책은 그 이유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이 책은 청일전쟁의 역사를 온전히 담아낸 것은 아니다. 역사교과서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1894년 7월 23일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사건을 청일전쟁의 단초로 해서 압록강 전투까지만 다루고, 중국 본토에서의 전투와 전쟁에 마침표를 찍은 시모노세키조약까지는 소략하게 다뤘기 때문이다. 그나마 ‘황해해전’은 언급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꼼꼼하고 치밀한 사료 수집과 중국·일본의 연구성과를 섭렵해 청일전쟁을 온전히 그려낸 점은 놓칠 수 없는 미덕이다. 이를테면 청나라 제당파帝黨派와 후당파后黨派 간의 갈등, 평양전투의 전과를 허위보고한 예지차오의 말로 등이 중국 측 자료 덕분이라면 경복궁을 점령했던 일본이 민심을 달래기 위해 실시한 빈민구호사업의 선정기준과 지원금액이나 일본군의 북상경로를 상세히 전하면서 동원했던 조선인 인부의 임금까지 적시한 것 등은 일본 자료에 힘입은 것이다. 공문서는 물론 사적인 일기, 참전병 기록, 당시 신문기사 등 다양한 자료를 인용하고 있다.

흥미로운 읽을거리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일본 군국주의의 민낯을 보여주는 ‘전쟁영웅’을 둘러싼 가짜 신화 만들기가 그렇다. 성환 전투에서 총탄을 맞아 죽어가면서도 부대 선두에 서서 진군나팔을 입에서 떼어놓지 않았다는 ‘안성 진격의 나팔 병졸’ 시라카미 겐지로가 실은 안성천을 건너다 익사했을 가능성이 크며 게다가 실제 나팔 병졸은 기구치 고헤이였음에도 국정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신화화됐단다. 

평양 전투 시 평양성의 현무문을 열었다는 일등졸 하라다 주키치는 그에 관한 군가가 여러 나올 정도로 ‘군신軍神’으로 대우받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가서는 술에 빠져 큰 빚을 지는 바람에 훈장도 박탈당하고 ‘비국민’으로 잊혀졌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지역할당제에 따른 징집 명령서를 받은 홀아비가 마을대표의 입영 독촉을 견디다 못해 아들을 죽이고 종군했다는 기사도 미쳐 돌아가는 일본 군국주의의 민낯을 보여준다.

이 책은 한마디로, 한국 사학자가 한중일의 다양한 사료를 바탕으로 그려낸 청일전쟁 조감도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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