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알고 있거나 잘못 읽고 있는 한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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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알고 있거나 잘못 읽고 있는 한자어
  • 윤인현 인하대·한문학
  • 승인 2024.03.09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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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비평]

 

물질문명에 찌들어 심신이 피로해진 현대인들은 대리 만족으로 모 방송 프로그램인 ‘나는 자연인이다’를 선호한다. 방송은 잠시 방향성을 잃은 사람들이 자연에서 삶의 생기를 되찾는다는 내용인데, 바쁜 일상과 코로나19로 인해 이런 자연 속의 삶은 현대인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자연에 대한 동경으로, 흔히 알고 있는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靑山兮要我以無語청산혜요아이무어, 蒼空兮要我以無垢창공혜요아이무구).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聊無愛而無憎兮요무애이무증혜, 如水如風而終我여수여풍이종아).”라는 한시 형식의 글귀가 있다. 이 노랫말은 고려 말 나옹화상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나옹화상의 문집은 물론 한시 어디에서도 이 구절을 찾을 수 없다. 이처럼 우리가 당연시하고 있는 것 중에 잘못된 정보들이 있다.

고려 후기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선생의 『륵옹패설(櫟翁稗說)』도 살펴보자. ‘륵(櫟)’ 자는, 『시경(詩經)』, 「국풍(國風)」 중 ‘진풍(秦風)’의 「신풍(晨風)」에 쓰인 글자로 ‘상수리나무 륵’자이다. “산에 상수리나무 꽃피고 펄에 육박나무 빽빽한데.(山有苞櫟산유포륵, 隰有六駁습유육박).”는, 산의 상수리나무와 습지의 육박나무가 모두 그 마땅히 있을 곳에 있다는 뜻이다. 이는 어진 신하가 또한 나라와 집안에 마땅히 있어야 할 바임을 말한 것이다. 따라서 익재 선생은 『시경』에 나오는 ‘상수리나무 륵’자를 사용하여, 자신을 겸사로 드러내었다. 산에 있는 재목감은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베어지지만, 산등성이에 있는 굽은 상수리나무는 재목감이 되지 못해, 타고난 제 수명을 다 누리는 기쁨이 있다는 것이다. 천수를 누리는 상수리나무처럼 익재 선생도 타고난 재주는 없지만, 하늘이 주신 명(命)을 누리는 기쁨을 맛보는 늙은이라는 의미로 ‘륵옹(櫟翁)’이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패설(稗說)의 패(稗)는 ‘피 패’자이다. 『륵옹패설』에 실린 책의 내용이 벼의 이삭처럼 알차지 못해, 논에 나는 잡초인 피처럼 잡다해 별로 쓸모가 없다는 뜻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 또한 겸사이다.

독음이 『륵옹패설』이 아니라, 『역옹패설』 또는 『낙옹비설』 등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왜 음을 ‘역(櫟)’이나 ‘낙(櫟)’으로 읽게 되었는가? 이는 『춘추좌전(春秋左傳)』과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나오는 중국 지명을 읽던 습관이 있고, 또 한편으로는 익재가 「륵옹패설서(櫟翁稗說序)」에서 밝힌 것을 후대 독자들이 잘못 이해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륵옹패설서」 중, 익재(益齋)의 말씀에 “櫟之從樂(륵지종락), 聲也(성야).” 곧 “‘櫟(륵)’이 ‘樂(락)’을 따르는 것은 소리이다.”라고 하였고, “稗之從卑(패지종비), 亦聲也(역성야).” 곧 “‘稗(패)’가 ‘卑(비)’를 따르는 것 또한 소리이다.”라고 한 것을 두고, 같은 음(音)으로 읽으라는 뜻으로 오해한 경우이다.

한자의 구성원리인 육서(六書) 중에 형성(形聲)이 있다. 형성은 뜻을 나타내는 의부(義符)와 소리를 나타내는 성부(聲符)로 이루어졌다. 「륵옹패설서(櫟翁稗說序)」에서 익재가 밝힌 것은 성부이다. 성부를 음가로 여기면 ‘낙옹비설’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게 된다. 『설문(說文)』에 ‘江(강)’자의 성부는 ‘工(공)’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 강(江)을 ‘공’으로 읽지 않는다. 륵(櫟)과 패(稗)자도 마찬가지이다. 성부가 ‘樂(락)’이고 ‘卑(비)’라는 것이지 음가를 ‘락’과 ‘비’로 읽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륵옹패설』의 ‘륵옹’은 익재 자신을 겸손하게 표현한 경우이기에, 재목감은 못되지만 그래도 타고난 제 수명을 다 누리고 사는 굽은 상수리나무 같이, 천명을 누리는 늙은이이고, ‘패설’은 잡다한 글을 모아놓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겸사로 표현된 ‘륵옹패설’로 음을 읽어야 한다.

조선 중기를 살았던 유학자 송순(宋純, 1493~1582)이 지은 가사 「부앙정가(俛仰亭歌)」도 요즘 사람들은 「면앙정가(俛仰亭歌)」로 알고 있다. 부앙정(俛仰亭)은 전라도 담양군에 있는 정자로, 송순이 지은 「부앙정가(俛仰亭歌)」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면앙정가(俛仰亭歌)」로 읽는 것도 부족하여, 학교 문학 시간에도 이 「부앙정가(俛仰亭歌)」를 「면앙정가(俛仰亭歌)」로 가르친다.

그러면 왜 「부앙정가(俛仰亭歌)」로 읽어야 하는가? ‘면(俛)’ 자(字)에는 ‘힘쓰다’의 훈만 있는 것이 아니고 ‘구부리다(구푸리다)’는 뜻도 있다. 「부앙정가(俛仰亭歌)」의 ‘부(俛)’자 뒤에 나오는 ‘앙(仰)’자는 ‘우러르다’의 뜻이다. 그래서 ‘부앙(俛仰)’은 ‘땅을 굽어보고 하늘을 우러러보다’는 의미이다. 담양 부앙정(俛仰亭)에 걸린 「삼언가(三言歌)」에도 “굽어보면 땅이요(俛有地부유지), 우러르면 하늘이라(仰有天앙유천). 그 사이에 정자 있으니(亭其中정기중), 호연지기의 흥취 일어나네(興浩然흥호연).”라고 되어 있다. 이 「삼언가(三言歌)」의 의미대로 ‘부앙(俛仰)’으로 읽을 때 송순이 의도했던 의미로, ‘하늘과 땅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자 했’던 그의 삶을 기릴 수 있다. 이처럼 한자어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잘못된 정보뿐만 아니라, 엉뚱한 의미와 해석을 낳는다. 이제는 선학들이 놓친 부분을 후학들이 자세히 살피는 시대이다.

 

윤인현 인하대·한문학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문학박사. 한국한문학회 총무이사와 감사를 역임했다. 현재 인천 아카데미 회원, 기호일보 <등대> 집필진, 근역한문학회 지역이사, 다산문화교육원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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