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뇌는 성인을 기준으로 약 860억 개의 신경세포와 약 10조 개의 교세포로 이루어져있다. 하나의 신경세포는 약 1,000개에서 10,000개 정도의 시냅스(synapse)를 이루고 있다. 하나의 신경세포가 약 5,000개의 시냅스만 가지고 있다고 거칠게 가정해도, 우리 뇌의 신경세포는 약 430조 개의 시냅스로 이뤄진 매우 거대한 연결망이다. 이러한 복잡한 연결망을 통해 우리는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다. 숨을 쉬고, 음식을 섭취하고, 잠을 자는 것과 같은 생존과 연관된 본능적 행동에서부터, 수학, 철학, 과학, 예술 등을 배우고, 연구하고, 즐기는 것과 같은 고도의 지능과 복잡한 정보처리가 필요한 고급 인지 행동, 그리고 상대를 보고, 대화하고, 이해하고,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것과 같은 사회적 행동 등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이러한 복잡하고 다양한 연결망이 어떻게 작동하기에 이 모든 놀라운 일들이 가능할까? 오늘날의 인지 신경과학은 이를 더욱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러한 놀라운 일들은 뇌의 각 영역이 수행하는 고유의 특수 기능에 의해 이뤄지기도 하지만, 많은 고급 인지기능은 여러 영역이 기능적으로 형성한 연결망/네트워크에 의해 이뤄진다. 계(係) 또는 시스템(system)은 체계적으로 통일된 조직을 의미한다. 뇌의 복잡한 연결망을 난삽하고 무작위적인 연결이 아닌 시스템으로 이해하는 이유는 신경세포들의 시냅스가 체계적으로 통일된 조직을 이루고 기능하기 때문이다. 일견 난삽해 보일 정도로 많고 복잡한 시냅스가 체계적이고도 통일된 연결망으로 기능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이마-앞머리 부분에 위치한 전전두 영역(prefrontal area) 덕분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전전두 영역의 역할은 뇌 내의 거대한 연결망을 기능적으로 잘 조직화하여 다양한 고급 인지 기능을 정확히 수행하게 한다. 유전적 돌연변이, 또는 외부충격으로 인한 사고, 또는 술을 포함한 과다한 향정신성 약물 사용에 의해 전전두 영역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 연결망은 시스템으로 기능할 수 없게 된다. 뇌 질환으로 인한 다양한 인지 장애 및 주사(酒邪) 등의 비정상적 행동이 관찰되는 이유는 전전두 영역을 통한 뇌의 각 영역의 기능적 조직화 실패 때문이다. 시스템이 시스템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순간, 복잡하지만 정교하고 섬세한 연결망은 그저 난삽한 연결덩어리가 된다. 난삽한 연결덩어리는 적절히 기능을 수행할 수 없게 되고 그 개체는 혼란에 빠지거나 최악의 경우 생존에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
국가는 많은 수의 개개인이 모여 형성한 집단으로 흔히 시스템에 비유된다. 국가 내의 개개인이, 또는 소집단이, 또는 그것보다는 더 큰 집단이 각자의 이익과 신념에 따라 움직이되, 하나의 규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규칙이 명확하지 않거나 규칙을 따르지 않을 때 이러한 움직임에는 혼란이 발생하며 흔히 말하는 ‘시스템이 무너진’ 상황이 초래된다. 뇌에서 전전두 영역이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할 때 뇌 내 연결망이 난삽한 연결덩어리로 전락하는 것처럼, '국가 내의 구성원들을 규칙에 따라 잘 조직화하고 기능하게 하는 집단'이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할 때 국가는 그저 사람들이 난삽하게 모인 덩어리로 전락하게 된다.
생활물가의 급격한 상승, 무역수지 적자와 국가 부채의 증가, 전쟁위기 고조, 과학 R&D 예산 삭감은 왜 발생했을까? 이러한 현상이 만성적인 것이 아니라 최근의 사건이라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급작스레 변했거나,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개체가 갑작스레 변질되었기 때문이거나, ‘국가 내 구성원들을 규칙에 따라 잘 조직화하고 기능하게 하는 곳’에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처한 환경은 늘 우리에게 불리했다. 강국들에 둘러싸여 있으며 분단은 점점 고착화되고 있다. 늘 좋았던 적이 없는 상수(常數)였지 변인은 아니었다. 그리고 충분한 외부적 압력이 없는 한 개체는 급작스레 변질되지 않는다. 항상성(homeostasis)을 지키는 힘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남은 이유는 하나다. 국가의 전전두 영역에 기능적 장애가 발생했다.
김장진 경북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