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감성이 어우러진 부산 기장 일광해수욕장 … 그리움, 낭만, 치유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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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감성이 어우러진 부산 기장 일광해수욕장 … 그리움, 낭만, 치유의 거리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 승인 2024.03.02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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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혜숙의 〈여행이야기〉_ 부산 기장 일광면 일광해수욕장


 

예부터 기장 8경중 하나였던 일광해수욕장. 오영수의 단편 ‘갯마을’의 배경이 된 곳이며 1965년 김수용 감독의 영화 ’갯마을‘도 이곳에서 찍었다. 

바람이 분다. 억 소리가 날 만큼 차고 많다. 황금빛 햇살에 눈을 가늘게 뜨고 바람을 밀쳐내며 바닷가 모래밭을 걷는다. 모래는 희고 단단하지만 금세 발목을 접질린다. 또박또박 걸으라고 깔아둔 인도에 오르다 벤치에 앉아 고개를 숙인 여자의 맨다리에 선명하게 돋아난 퍼렇고 붉은 핏줄을 본다. 흠칫 먼 데로 고개를 쳐들고서는 이곳에서 보는 만은 소금항아리처럼 생겼다고 생각한다. 북쪽의 곶은 일광면 이천리, 남쪽의 곶은 학리, 여기 항아리의 깊은 바닥은 삼성리 일광해수욕장이다. 벤치의 여자 옆에 팔을 치켜든 사람들의 조형물이 있다. 거기에는 ‘돌아온 해순을 반기는 사람들’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해순이 돌아왔을 때, 이 바닷가에는 해송이 무성했고 초가집이 즐비했으며 방문을 열면 사립문 너머 바다가 환했다. 그때도 저 바다는 지금처럼 소금항아리 모양이었다.

 

데크 길 중간 즈음에서 알게 모르게 학리에 들어선다. 저 멀리 정면으로 이천리와 일광 해변이 맵시를 자랑하고 있다. 

해순은 1953년 ‘문예’지에 발표된 오영수의 단편 ‘갯마을’의 주인공이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서(西)로 멀리 기차 소리를 바람결로 들으며, 어쩌면 동해 파도가 돌각담 밑을 찰싹대는 H라는 조그만 갯마을이 있다.’ 그 기차가 닿고 떠나는 곳이 일광역이고 조그만 갯마을이 바로 일광해수욕장 일대다. 이곳을 처음 본 것은 지난겨울, 1982년 작품인 TV문학관 ‘갯마을과 1965년 김수용 감독의 영화 ’갯마을‘을 통해서다. 두 영상에서 이곳은 해송의 숲이 짙었고 모래사장이 넓었다. 이제 파도가 찰싹대는 돌각담은 없지만 바닷가 좁은 도로를 따라 아기자기하거나 멋있거나 푸근한 가겟집들이 늘어서 있고 그 뒤로 고층 아파트들이 은빛으로 쑥쑥 솟아있다.

 

바다를 바라보며 우두커니 앉은 해순의 동상. 일광해수욕장에서 이천리로 이어지는 길을 ‘그리움의 거리’라 부른다. 
‘돌아온 해순을 반기는 사람들’ 조형물. 왼쪽의 곶이 이천리, 오른쪽이 학리다. 이곳에서 보는 만은 소금항아리처럼 생겼다. 

모래밭에 바다를 바라보며 우두커니 앉은 해순의 동상이 있다. 해순은 해녀의 딸이었고 물일에 능했다. 무엇보다 바다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여인이었다. 바다를 떠나야했던 그녀가 다시 돌아왔을 때, 갯마을 사람들은 저기 팔을 치켜들어 환영하는 사람들처럼 반갑게 맞아주었다. 담담히 읽을 수만은 없는 작품이지만 해피엔딩이다. 해수욕장의 북쪽 끝에는 일광천이 바다로 든다. 천을 가로지르는 강송교 너머는 이천리다. 다리 앞 작은 공원에 ‘오영수 문학비’가 있다. 이천항 근처에도 작품을 알리는 비석이 있다. 천 너머 노송이 울창한 강송정공원 일대도 소설의 배경이고 공원 뒤편 골목길에서는 소설의 순정한 문장들을 만날 수 있다. 삼성리 일광해수욕장에서 이천리 항구로 이어지는 길을 이곳에서는 ‘그리움의 거리’라 부른다. 일광해수욕장 그리움의 거리에서는 매년 소설 제목을 딴 ‘기장 갯마을 마당극 축제’가 열린다.

 

강송교에서 천의 서안을 따라 이천교 지나 이천가화교까지 이어지는 길을 ‘낭만의 거리’라 부른다. 이 거리의 옛 다방에서 최백호의 노래 ‘낭만에 대하여’가 탄생했다. 

일광천 상류에 빤히 보이는 다리는 이천교다. 강송교에서 천의 서안을 따라 이천교 지나 이천가화교까지 이어지는 길을 이곳에서는 ‘낭만의 거리’라 부른다. 낭만의 거리에 한 그루 수양버들이 연둣빛 가지를 천에 드리우고 있다. 나무아래 벤치에는 선글라스를 쓴 할아버지와 핑크빛 모자를 쓴 할머니가 앉아 계신다. 거리를 따라 커다란 굴뚝이 있는 여관과 모텔과 수제 강정 가게와 찻집 등이 늘어서 있다. 이천교 앞에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역전 낚시 할인마트’가 눈에 들어온다. 몇 년 전 이곳은 ‘소라다방’이었다. 가수 최백호가 ‘궂은 비 내리는 날 도라지 위스키 한 잔’을 앞에 놓고 낭만을 노래하던 그 다방이다. 기장에서 태어난 ‘최백호’는 일광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와 함께 일광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중년이 되어 고향 부산을 찾은 그는 이곳 다방에서 지나간 시간을 생각했다.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그렇게 그의 히트곡 ‘낭만에 대하여’가 탄생했다.

 

강송교에서 천의 서안을 따라 이천교 지나 이천가화교까지 이어지는 길을 ‘낭만의 거리’라 부른다. 이 거리의 옛 다방에서 최백호의 노래 ‘낭만에 대하여’가 탄생했다. 

조금 더 천을 따라가면 하트 장식을 한 벤치가 있다. 한 아저씨와 막걸리가 나란히, 조용히 앉았다. 천 저편으로 찐빵 집 간판이 보인다. 유명한 찐빵 골목이라 한다. 골목 옆 높다랗게 자리한 건물에서 ‘가마골 소극장’이라는 간판을 발견한다. 아! 가마골소극장은 1986년 연희단거리패 창단과 함께 개관했던 극장이다. 한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극의 산실이었지만 연출가의 만행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그 위상은 끝도 없이 추락했다. 그러나 연극이나 소극장은 그 이름만으로도 두근거리는 낭만이지 않나.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깨끗한 모래밭이 펼쳐진 바다로 돌아간다. 지금도 청춘을 갈아 매진하는 배우들에게 건투를!

 

‘세파에 따르지 않으니’라는 제목의 조형물. 바위섬에 앉은 사람은 고산 윤선도다. 고산은 광해군 때 기장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br>
‘세파에 따르지 않으니’라는 제목의 조형물. 바위섬에 앉은 사람은 고산 윤선도다. 고산은 광해군 때 기장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어느새 벤치의 여자는 떠나고 없다. 어쩌면 따뜻한 남쪽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남쪽 해안에 뱃머리 모양의 이벤트 무대 바닥 분수대가 좌초처럼 놓여 있다. 젊은 연인이 뱃머리에 오른다. 저 좌초가 명랑해 보이는 것은 제 할 일이 있어서일 게다. 조금 더 남쪽으로 향하면 카페 투썸 플레이스가 있다. 건축상을 받은 건물이라 한다. 건물 옆에 ‘세파에 따르지 않으니’라는 제목의 조형물이 있다. 바위섬에 앉은 사람의 모습, 그는 고산 윤선도다. 고산은 광해군 때인 1621년 기장 바닷가에서 귀양살이를 했고 삼성대에서 동생을 만나 헤어지며 ‘증별소제(贈別少弟)’라는 시를 지었다고 한다. 카페 뒤편 도로가에 작은 언덕이 보인다. 거기에 삼성대라 새겨진 비석과 고산의 시비가 서 있다. 이곳이 고산이 동생과 이별한 언덕이다. 언덕은 댕강 잘려져 단면이 드러나 있다. 이별은 이리도 아프다.

 

삼성대. 고산이 동생과 헤어지며 시를 지었다는 언덕이다. 바다 쪽 언덕은 댕강 잘려져 단면이 드러나 있다. 
삼성대에서 데크 산책로로 이어지는 길을 ‘치유의 거리’라 부른다. 고산은 유배생활동안 약초를 캐어 백성들을 보살폈고 사람들은 그를 ‘서울에서 내려온 의원님’이라 불렀다. 

삼성리라는 이름이 이곳 삼성대에서 왔다. 삼성(三聖)은 신라의 원효, 의상, 윤필 세 성인이라고도 하고, 고려의 정몽주, 이색, 이숭인 세 성현이라고도 한다. 또한 ‘샘섟대’라는 옛 이름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샘은 남쪽의 약수샘, 섟은 배를 매어두는 곳을 의미한다. 약수샘은 삼성과 학리를 잇는 도로가 확장되면서 사라졌다. 도로 아래 벼랑을 따라 남쪽으로 데크 산책로가 나 있다. 삼성대에서 데크 산책로로 이어지는 길을 ‘치유의 거리’라 부른다. 의학에도 밝았던 고산은 유배생활동안 약초를 캐어 병마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보살폈는데 사람들은 그를 ‘서울에서 내려온 의원님’이라 불렀다고 한다. 발 아래로 물 맑은 암석해안이 반짝이고 머리 위로는 갖가지 수목들이 살랑댄다. 데크 길 중간 즈음에서 알게 모르게 학리에 들어선다. 오른쪽으로 학리의 항구가 가깝게 보이고 저 멀리 정면으로 이천리와 일광 해변이 맵시를 자랑하고 있다. 문득 뒤돌아보니 연분홍 진달래가 맑은 얼굴을 바싹 들이밀고 있다. 그리움도 낭만도, 돌아보면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내 목덜미를 바싹 안고 있다.

 

데크 산책로 치유의 거리. 발 아래로 물 맑은 암석해안이 반짝이고 머리 위로는 갖가지 수목들이 살랑댄다. 햇살이 스며든 벼랑에는 진달래가 피었다.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대학에서 불문학을,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대학시절 무가지 음악잡지 ‘Hole’을 만들었고 이후 무가지 잡지 ‘문화신문 안’ 편집장을 잠시 지냈다. 한겨레신문, 주간동아, 평화뉴스, 대한주택공사 사보, 대구은행 사보, 현대건설매거진 등에 건축, 여행, 문화를 주제로 글을 썼으며 현재 영남일보 여행칼럼니스트 겸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내 마음의 쉼표 경주 힐링여행』, 『청송의 혼 누정』, 『물의 도시 대구』(공저)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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