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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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고성빈 논설위원/제주대학교·정치학
  • 승인 2024.03.02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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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빈 교수의 〈동아시아 담론〉

 

서세동점, 동아시아 착각의 시간

동아시아의 역사는 주체의 자각을 향한 의식성장의 서사이다. 동아가 서세동점으로 주체적 자의식의 각성을 맞게 되었다는 것은 서구중심주의가 조성한 역사적인 착각의 논리다. 서세동점의 폭력적 내습으로 인한 동아의 근대화는 외양적인 변화에 불과한 것이고, 더 내면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는 서양에 대한 ‘저항의식’으로부터 동아인의 주체의식이 각성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즉, 서세동점이 아니라 그에 대한 ‘동아인의 내발적 저항의식’이 곧 동아인의 주체적 자의식을 각성으로 이끌었다. 

서양은 동아와 신대륙을 향한 폭력적 자본주의와 근대화가 ‘자의식의 폭주’로 이어져 두 번에 걸친 자기 파괴의 대전쟁을 겪은 후에야 ‘주체적 자의식’이 성숙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부정하면 안 된다. 대전쟁 이후에야 대중과 시민이 국가와 왕가를 선택하게 되었고, 그동안 산발적이었던 국제적 평화주의가 본격화하고 이론화하게 되었다. 

따라서 서세동점 이래 자의식 성장을 논하는 것은 동서이원론적 사유의 길에서 서로를 비추어 보면서 자신의 위치를 모색하는 동서양의 공통적 작업이었다. 즉, 동아를 하나의 의식 주체로 상정한다는 것은 타자로서의 서양을 의식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다. 자의식의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인문학적인 내적인 성찰의 전통이 짙은 동아는 점수점오(漸修漸悟), 외향적 팽창 욕망이 컸던 서양은 점수돈오(漸修頓悟)의 방식으로 변화가 전개되어왔다고 추론할 수 있다. 

서양의 근대사는 외부세계로의 진출로 인한 폭력과 건설로써 변화하고 전개되었다. 동아는 그러한 서양에서의 외발성 자극과 본래 가지고 있는 내발성 자원이 서로 충돌하거나 견제하면서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즉, 외발성에 의한 한 방향의 “충격-반응”(John K. Fairbank)의 노선이 아닌 내발성과 외발성의 상호작용과 견제가 오늘날까지 전개되면서 “동서양 상호학습효과에 의한 혼성 근대화”(필자)의 길을 걷고 있다. 이렇게 동아의 근대화가 내-외발성의 상호작용으로 진행하는 끝없는 ‘생성’의 과정으로 정의한다면, 서구 중심주의적인 단선론적인 근대화 발전론은 해체해야 한다.

서양에서는 내발성의 자각과 외부로의 진출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외부로의 침략과 식민주의 시대에도 내부에서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전개되면서 계몽과 주체, 자유와 평등을 자각하는 사유가 생성되었다. 동아의 성장 드라마는 이와는 다르다. 일찍이 고대 중국은 육지를 통하여 서양까지 이어지는 비단길을 개척하였으며, 송대 내발적 근대화, 명대의 해상원정은 세계를 향한 바닷길도 열어젖혔으나 외부세계와 자신을 동등한 상대로 인정하는 상호관계성 의식을 갖추고 동시에 주체적 자아를 파악하는 자의식 각성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신화의 시대 오디세우스는 신의 주술로부터 해방을 얻기 위해서 갖은 위험을 헤쳐 나가 마침내 페네로페와 재회함으로써 인간적인 행복을 되찾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의 탐험은 귀향길을 방해하는 신의 주술을 푸는 데는 성공했으나 인간인 자신의 내부로 들어가 숨겨진 주체적 자아를 결박한 주술을 풀지는 못하였다. 시간은 흘러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1770년대, 괴테)는 연극과 실제에서 수많은 실패를 겪으며 당당한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세 단계의 과정을 밟는다. 이른바, 방황의 단계, 내면화를 향한 성숙의 단계, 현세적 낙원의 단계를 차례로 겪으면서 미성숙한 시절의 방황을 뒤로하고 《데미안》(1919, 헤르만 헤세)처럼 주체적 자의식의 진정한 성장에 도달한다. 

                                     민두기 교수 (閔斗基: 1932년 11월 2일 ~ 2000년 5월 7일)

시간과 질주하는 동아시아
 
석학 민두기 교수(1932-2000)의 《시간과의 경쟁: 동아시아 근현대사론집》에는 ‘시간’이 앞에 있고 부제에 ‘동아시아’가 있는 마치 주객이 전도된 서명을 하고 있다. 그런데 나의 의식과 시간이 세상의 중심이라면 동아는 내가 관찰하는 하나의 대상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 서명은 누구도 아닌 나의 의식 안에서 헤엄치고 있는 동아라는 의미를 암시하고 있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나의 인상비평에 의하면, 아마도 서세동점의 급박한 시대적 변화상, 고전 시대의 파탄을 바라보면서 비애에 젖은 채 겪어야 했던 자존감의 파산, 이로 인한 저항과 모방의 양극단 사이에서 발버둥 쳐야 했던 나(동아)의 고통의 시간을 강조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고전시대 동아의 시간은 서세동점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서양이 몰고 온 근대의 새벽 첫 기차 시간에 맞추기 위해 치열하게 질주해야 했던 동아인의 압박감을 묘사한 것일까. 

그런데 이 책은 동아 역사에서 ‘중공’의 존재를 의식적으로 외면하는 듯하다. 현대 중국사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전통의 흔적을 어영부영 많이 보유한 ‘중화민국’이 쇠하고, 전통을 ‘이론적’(맑시즘의 중국화)으로‘만’ 부정한 ‘중공’이 승리한 사상사적 배경을 토론하는 것이다. 중국혁명과 개혁, 중국몽의 연동 작용으로 동아에 일어난 사상적 파동성에 대해서 석학의 ‘때 이른 서거’(premature demise)로 인해 들을 수 없는 게 못내 아쉽다. 

만일에, 서양인이 후진이라 생각하는 동아를 세계사에서 배제하고 싶다면, 같은 맥락에서 고려-조선 유학자들이 야만으로 여기던 같은 계통의 동이족 역사-문화를 ‘대(大)한민국’의 역사-문화영역에서 배제한 후에 동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돌이켜 보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우리의 역사에서 배제하고 싶은가. 고조선과 발해사를 축소 배제한 결과 ‘대(大)한민국’의 역사와 문화가 중국과 일본 앞에 쪼그라들어 ‘소(小)한민국’이 된 신세를 한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역사와 문화는 의식적으로 배제한다고 해서 단절하지 않는다. 그저 과거, 현재, 미래가 상호연동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역사를 ‘생성’할 뿐이다. 그리고 역사를 말하는 순간 그 역사는 과거사가 된다. 일제강점기의 역사도 우리의 역사이다. 모방한 문화도 식민문화도 우리의 문화이다. 희비극을 초래한 역사와 그 이후에 이어진 역사도 다 한 흐름이다. 동서양이 각자 상대를 배제한다고 해서 결코 한쪽이 사라지지 않는다. 시대에 따라 상대방을 더 혹은 덜 참조하는 현상이 순환할 따름이다. 

동서양 상호학습의 전개와 혼성 근대화
 
동아인에게 서세동점 이전이 잃어버린 시간이었다면, 동아의 역사는 서양의 가르침이 도래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처럼 서양이 주도한다는 역사관(문명관, 문화관, 근대화론)에 회의하면서 “동서양 상호학습효과에 의한 혼성 근대화론”을 제기하고 있다. 동서양 간에, 또한 동아시아의 단위 중에 어느 하나가 우월하고 열등하다는 서열의식은 역사상 특정 시기 특정 상황에서 나타나는 상대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장기역사적으로 서양이나 동양이 배타적으로 상대보다 우세하다는 논리는 세계사를 한 영속적 흐름으로 보지 않고, 수많은 단절된 조각의 조립품으로 보는 것이다. 각 조각은 독립적이고 다른 품질을 갖고 있다고 믿고 있어서 우열론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역사상 한 시기를 배제하거나, 열악한 한 조각을 조립에서 폄하하면 전체가 구성될 수 있을까. 

그도 그럴 것이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이제 서양은 자신의 시계가 점차 느려져 (동)아시아와의 ‘시간 경쟁’에서 뒤처질까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를 감지하고 있다. 그러나, 동서양 각자의 시간 흐름은 영속적으로 상호 연동하며 우열 관계도 서로 교대를 멈추지 않는다. 누가 우세하다는 논리도 상대적으로 특정 시기의 필요성에 따라 누구의 어느 측면이 잘 보이는 것일 뿐이다. 동서양에서 선진과 후진 각자 유무형의 자원들(思想과 事物)은 시대 흐름을 따라서 서로 교호적으로 활용되면서 선-후진이 역전, 재역전하는 사례를 우리는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명대 제수이트의 선교활동은 동서양 사상-문화적 교류를 활성화하였고 서양의 계몽주의 사조에 자극을 주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서세동점 이전에 이미 서양의 종교개혁과 동아의 주자학적 윤리주의 파놉티콘(pan-opticon) 감시체제를 거부하고 혁신을 추구했던 진보사조가 동서양에서 비슷한 시기에 명멸했다. 즉, 기존의 서구중심주의 사조가 논하는 바와는 다르게, 동서양은 이미 상호학습을 전개하고 혼성의 근대화와 혼성의 주체 형성을 개척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동아에서는 주자유교적인 사유체계에 도전했던 양명학자이자 인간 본연의 욕망을 지지했던 사상가 이탁오(1527-1602), 조선시대 내내 유교반도라는 호칭을 부여받았고 역시 본연의 욕망을 숨기지 않았던 보헤미안이자 탈신분주의자 허균(1569-1618), 신분과 계급을 부정하고 모두가 노동해야 한다는 평등론자이자 무신론자, 사회주의자로서 지배계급의 숨겨진 위선을 폭로하던 안도 쇼에키(1703-1762)가 등장했다. 그리고 서양에서는 루터(1483-1546)의 종교개혁, 기독교와 유대교로부터도 파문당한 범신론적 자유주의자인 스피노자(1632-1677) 등이 큰 변화의 획을 그었다. 동아와 서양에서 이들 모두는 동시대 체제의 암흑기에 등장하였다. 이들의 사상적 공통점은 기존의 신념(신앙)체계와 권력체계의 위선을 폭로하고 개인의 자유와 신분의 평등을 옹호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살던 세상의 지식-종교-국가 권력체계로부터 모두 파문당하여 방외자로 살았던 점도 같다. 그러나 이들 동서양인의 우상파괴적인 신사조가 우리에게 주는 공통적인 교훈은 동서양의 문명발전과 지적 수준의 서열의식은 무의미하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후 서양은 가장 신속하게 계몽주의가 창도하는 변혁적 사상의 경로를 개척하고 동아에서는 늦게서야 늦은 만큼의 시간을 급히 따라가야 했다. 그래서 동아인에게는 선발주자인 서양이 빼앗은 근대의 시간을 빨리 되찾아야 하는 조급함이 있었다. 어쨌든 동아인의 조급함은 서양식 근대화에 집착했던 것으로 나타나는데, 그 조급함의 종착점에는 정작 물질적 근대화보다 더 중요한 ‘정신적 근대화인 주체의식’이 있었으며, 그것은 나의 내면에서 성숙하는 것이다. 동서양인 모두에게 주체의 성숙이 없는 근대화는 사상누각이다. 

그러나 나는 동아인이 조급함의 끝에 도착한 지점에서 다른 차원의 깨달음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그게 꼭 동아인 만의 깨달음인지 아니면 서양인에게도 같은 깨달음인지는 조금 더 시간이 흘러 동아가 서양을 앞지를 때 서양인의 태도를 보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그때가 도래하면, 서양이 “동세서점의 시대”라고 하면서 어떻게 저항과 모방, 편승의 논리를 펼칠지가 궁금하다. 

한중일 주체 형성의 시간: 루쉰, 나쓰메 소세키, 신채호·이광수·이상  

서세동점의 혼란 시대 동아의 주체 각성의 출발을 상기하면 떠오르는 인물들이 있다. 잃어버린 주권에 대한 민족주의적 저항과 서구적 모더니즘의 개인 주체 사이에서 정신적 방황으로 살아가던 루쉰(1881-1936). 메이지 시대 급진적 근대화의 가면 안쪽에 “자기 본위 의식”을 상실한 개인과 사회의 허상을 날카롭게 파악했던 나쓰메 소세키(1867-1916)가 있었다. 

당시 중-일에서는 두 국가적 지성이 제시하는 민족과 사회의 서사가 비교적 명확한 문제의식으로 정리될 수 있었던 데 비해, 대조적으로 한국의 주체형성의 출발점은 3중으로 이루어져 복잡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피하지 말고 직시해야 한다. 

자주와 친일의 대조적인 삶을 살다 간 신채호와 이광수를 동시에 상기하는 이유가 있다. 한국의 근대사에서 단재는 ‘자율이성의 주체’를, 춘원은 ‘타율이성의 식민성 주체’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즉, 춘원이 주장한 한국인의 식민주체도 다른 경로의 주체이다. 우리는 아직도 한국의 정신세계에서 단재가 대표하는 ‘자주적 주체’와 춘원이 대표하는 ‘식민성 주체’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물론 전자로써 후자를 극복하고 주체를 확립해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치욕의 역사를 극복하는 지름길은 그것을 직시하고 뼈 아픈 성찰을 하는 것이다. 친일-반역의 역사에서 유래한 ‘집단트라우마를 숨기지 않고 직시하는 것이 심리 치료의 첩경’이라고 융(Carl Gustav Jung)의 분석심리학은 설파하고 있다.

상기 양인의 문제의식은 당시 식민화한 민족 차원의 ‘문화-논리’ 구조를 대변하고 있어서 비교적 단순했다. 그러나 지성인의 ‘사적인 영역’에서 주체성에 관한 문제의식은 밟고 서야 할 땅이 꺼져버린 허공에서 ‘비애와 체념’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주권을 상실하여 출발선이 사라진 땅에서 이상(1910-1937)은 ‘자기 소외와 상실’의 문학적 정서를 자기 삶과 작품을 통해 체현해낸 작가이다. 그의 ‘자폐적 주체’는 고독과 체념의 최고치를 보여주며 문학적 감성을 자극하지만, 발판을 잃어버려 끝없이 ‘어디론가’ 추락하고 있다. 서세동점의 시대, 중-일과는 달리 식민화한 한국의 시간은 이렇게 다중적 주체가 혼합하여 전개되는 양상을 보였다. 

종합하면, 서세동점과 미세동점 시대를 지내면서 동아시아에서는 침략자에 대한 저항과 순응, 선진문화의 모방과 재해석으로 이루어진 상호학습을 통한 혼성 근대화와 주체의 생성이 전개되고 있다. 이 과정은 ‘완성’(completion)이 아니라 끝없는 ‘생성’(becoming)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동아에서는 내발적인 자의식의 성장을 그려낸 서사가 서세와 미세동점에 대한 저항을 자원으로 삼아 등장하였다. 서세동점의 외발적 자극을 받은 연후에야 자의식의 정체와 분열을 한탄하고 성찰하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와 《아큐정전》(1921), 《조선상고사》(1931), 《날개》(1936)가 출현하였으며, 주체적 자의식의 성장이라는 긍정적인 과정을 그려낸 상징성이 있는 작품은 조금 더 기다려야 했다. 

주체적 자의식의 성장과 그것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국가적 주권 부재)과의 불균형이 초래한 상실감에 시달렸던 서세동점과 이어지는 미세동점은 동아시아의 자유로운 사유를 방해하였다. 그러나 그 차단벽을 허물려는 저항에너지는 비판적 지성들을 끊임없는 창작으로 이끌며 권력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의식의 각성을 촉구한다. 

조정래가 열정으로 쏟아 낸 근현대사 3부작(《태백산맥》; 《아리랑》; 《한강》8-90년대)은 제국-국가의 폭력에 시달리던 개인과 사회의 희로애락을 보편윤리와 역사의식의 장으로 가져가 담담하게 고백했다. 오에 겐자부로가 섬세하게 그려낸 인간 실존의 근원적 고민을 성찰적 역사의식과 연관시킨 작품들(《만엔 원년의 풋볼》94; 《오에 겐자부로 사육 외 22편》2014)도 있다. 시대성으로 인해 루쉰마저 떨쳐 내지 못했던 민족과 국가의식을 과감히 뒤로하고 나의 삶에서 사유의 시원을 찾아 방랑의 길을 떠나는 가오싱젠의 《영혼의 산》(1990)에 이르게 되면, 미세동점의 틀 안에서도 쿨하게 성장한 나(동아)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내가 주로 문학적 사유의 전개에서 주체를 확인하려는 이유는 사회과학적 개념과 이론에서 놓칠 수 있는 동아인의 주체적 자의식 성장의 생생한 서사를 소설이 더 잘 표현해내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현장(玄奘)은 불도를 구하기 위해 서역으로 긴 여정을 떠난다. 그러나 고행으로 가득한 먼 길을 갔다 돌아왔지만 정작 부처는 자신이 원래 떠났던 거기에 있었다. 단지 서역에 가기 전에는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주체)이 뜨이지 않았던 것뿐이다. 서구가 근대적 주체와 과학, 기술을 가지고 동아에 침략적으로 도래했을 때, 동아인은 무력한 자신을 원망하면서 저항도 하고 모방도 했으나 서구에도 문제가 없는 게 아니란 것을 간파했다. 이때 서구와 자신을 유비하면서 취사선택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는 한 단계 높은 깨달음에 이른다. 

21세기에는 드디어 자의식의 너머를 사유하기 시작한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 사람은 자신의 의식을 여럿으로 나누고, 나의 한 의식을 나의 다른 의식으로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동서이원론에 갇혀 있는 동아시아를 스스로 바라보고 탈피할 수 있는 게 그 때문이다. 마침내, 동아인은 원효(元曉)처럼 진리를 구하기 위해 외부세계(서구)로 유학의 길을 떠나려는 도중에 자신이 찾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외부가 아닌 바로 자신의 마음 안에 있음을 깨닫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동아인에게 잃어버린 시간이 있었다면, 그것을 찾는 작업은 외부세계인 서구로 진출하여 모방하는 데서 찾을 게 아니다. 외부의 충격에 저항하는 우리 내부의 정신세계에 이미 자의식의 씨앗이 숨을 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그것을 기초로 하여 동아인의 ‘참나’(주체)를 확립하는 것은 바로 동아인인 나에게 달려있다. 

 

고성빈 논설위원/제주대학교·정치학

런던대학(SOAS)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제주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아시아 사상과 역사논쟁에 흥미를 가지고 현재 동아시아의 사상사적 문제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 근현대사 역사의 현장』(공저), 『동아시아 담론의 논리와 지향: 비판이론의 탐색』이 있으며, 그 외 동아시아담론, 중국, 일본, 티베트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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