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에 담긴 15세기 조선 사람들의 생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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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에 담긴 15세기 조선 사람들의 생활상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7.17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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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세기 조선 사람과 만나다: 미아보호소부터 코끼리 유배까지 | 신동훈 지음 | 푸른역사 | 164쪽

 

단성현(현 경상도 산청군 단성면)에 공노비 천년이 살고 있었다. 천년은 물가에 살고 있었는데, 6월 홍수로 물이 넘쳤다. 집이 물에 모두 잠길 위험에 처하자, 천년은 처자를 두고 어머니를 업고 탈출했다. 예조는 경상도 관찰사의 보고에 의거해 천년의 효심을 포상하자고 했고, 성종은 이를 수락했다. 성종은 천년의 포상을 수락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통 사람의 인정은 처가 먼저이고 어미가 나중인데, 천년의 일은 진실로 가상하다. 이 상은 너무 박하지 않은가?”(《성종실록》(권285, 성종 24년 12월 21일(신사))

성종의 이 발언은 두 가지를 알려준다. 하나는 조선 사람들이 생각한, 어머니와 처자식이 물에 빠졌을 때의 이상적인 행동은 어머니를 구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조선에서 효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다른 하나는 일반적으로는 처자식을 구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처자식을 구하는 것이 인정, 곧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는 것을 성종이 분명히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조선 사람들은 위기에 처했을 때 처자식을 구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었지만, 더 높은 가치인 효를 우선에 두고 효를 행하는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위의 『실록』 기사처럼 학술서적에서 다루지 않는, 15세기 한반도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흥미진진한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조선 사회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과 꿈을 좇아온 저자는 15세기 『조선왕조실록』 가운데 『태조실록』부터 『성종실록』까지에 담겨 있는 재미있는 일화를 골라 그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명나라와 일본이 아닌 유구琉球·섬라暹羅·조와국爪蛙國(각각 현재 일본 오키나와현, 태국, 인도네시아 자바 지역) 등 다소 낯선 나라 사신들의 조선 방문기를 알려주기도 하고, 조선판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실태를 술에 얽힌 이야기로 펼쳐 보이기도 한다. 심각한 주택난과 높은 물가로 신음하던 신생 수도 한성살이의 고달픔을 풀어주기도 하고, 국가 공휴일이 단 이틀밖에 없던 관료들의 일상으로 안내해주기도 한다. 유배형 받은 코끼리, 사신 접대용으로 귀한 몸 대접을 받았던 닭과 돼지 등 말 많고 탈 많던 조선의 동물들도 소개해준다.

저자가 펼쳐 보이는 15세기 조선 사람들의 모습은 흥미진진하다. 1장 〈어서 와~ 조선은 처음이지?_조선을 찾은 외국 친구들〉에서는 외교관계를 위해 조선을 찾은 사람들 중 유구, 섬라, 조와국 등 익숙하지 않은 나라의 사절이 등장한다. 섬라곡국에서 태조에게 토인 2명을 바쳤고 태조는 이들에게 대궐 문을 지키게 했다는 기록, 조선 방문길에 나섰다가 왜구에게 습격당한 조와국 사신 진언상의 일화는 접해본 적 없는 이야기라 그런지 무척이나 흥미롭다.

 

2장 〈조선판 ‘유전무죄 무전유죄’_술에 얽힌 이야기〉에서는 중국에도 알려진 한민족의 음주문화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오늘날 과음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술로 인한 폐단을 상세하게 언급한 세종의 절주 교지를 들여다보며 저자는 ‘술 권하는 사회’에서 조금씩 벗어나고는 있지만 여전히 음주 관련 사고가 끊이지 않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고개 끄덕여지는 지적이다.

3장 〈신생 수도 한성살이의 고달픔_심각한 주택난에 뛰는 물가〉에서는 주택용지가 모자라 성저십리까지 편입시켰던 조선 초기 수도 한성의 문제점을 자세히 살핀다. 주민이 급증하여 ‘미아보호소’까지 등장했던, 길을 침범해 지은 집이 무려 1만여 호나 되었던, 우물물을 사 먹어야 했을 정도로 생활 여건이 악화되었던 한성살이의 고달픔은 현 시점의 서울살이와 겹쳐 보인다.

4장 〈관료들의 일상_〈용하다 용해 무대리〉부터 〈미생〉까지〉에서는 15세기 조선 관료들의 이모저모를 상세하게 보여준다. 국가 공휴일이 1년에 딱 이틀밖에 없어 피곤에 시달리던 관료들의 모습, 엄격했던 연공서열제 때문에 벌어진 사건사고들은 ‘그때나 지금이나’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공무 중 안전사고의 책임을 물어 담당자에게 사형까지 언도한 세종의 조치는 작금의 현실과 여러모로 대비된다.

5장 〈유배형 받은 코끼리_말 많고 탈 많은 조선의 동물들〉에서는 코끼리, 원숭이 등 우리나라에 자생하지 않는 동물부터 닭, 돼지, 호랑이 등 우리에게 익숙한 동물까지 조선의 동물들을 둘러싼 재미난 일화로 우리를 안내해준다. 사람에게 해를 입혀 전라도 섬으로 유배까지 가야 했던 코끼리, 외교 선물로 조선 땅을 밟은 원숭이, 역시 외교 선물로 들어왔다가 유용한 가축이던 닭만 축내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이리, 사신 접대용으로 귀한 몸 대접을 받았던 닭과 돼지, 경복궁까지 내려왔다가 어느새 사라져버린 호랑이 등 저자가 보여주는 말 많고 탈 많은 조선의 동물들 모습은 말 그대로 ‘흥미진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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