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스트는 ‘권력’을 통해 진실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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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스트는 ‘권력’을 통해 진실을 만든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7.17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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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시스트 거짓말의 역사 | 페데리코 핀첼스타인 지음 | 장현정 옮김 | 호밀밭 | 236쪽

 

파시즘의 역사에서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차별적 거짓말이 극단적인 정치 폭력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이런 거짓말들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이런 험악하고 사나운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감정적인 분노나 짜증을 넘어서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역사에 대한 주목이 필요하다. 파시즘은 단지 지난 과거의 역사 속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파시즘의 패배 이후 포퓰리즘이 민주적 시대에 맞게 파시즘을 변형한 ‘포스트 파시즘’의 한 형태로 등장했다. 쉽게 말해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에 맞게 개조한 파시즘이다.

탈진실의 시대는 파시스트들과 포퓰리스트들에게는 축복의 시대다. 그들은 어떻게 사회 전체를 향한 집단적 가스라이팅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걸까.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작업은 역사의 날조였다. 그래야 자신들 존재의 근거가 마련되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파시스트 지도자들이 어떻게 단순하면서도 혐오로 가득 찬 거짓을 진실로 왜곡하며 대중의 절대적 지지를 끌어냈는지 그 역사에 관해 설명한다.

무솔리니와 히틀러 같은 20세기 파시스트들이 거짓말을 통해 집권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뒤에 언제나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에 표를 던진 대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거짓말과 말장난이 점점 더 진실을 대체하고, 실제 뉴스는 가짜뉴스가 되고 가짜뉴스는 버젓이 정부 정책으로 이어지는 지금의 상황은 어떨까. 이와 유사한 정치적 상황은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길고도 체계적인 나름의 정치적, 지적 혈통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그 역사를 복기하는 작업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말한다.

진실에 대한 혐오는 전통적으로 민주주의의 약한 고리였다. 어떤 발전적인 토론도, 합의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탈진실, 가짜뉴스, 부족주의 등 어떤 단어로 표현하든 이런 현상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며 결국은 파시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저자는 유럽과 미국, 중남미의 역사를 아우르며 외국인과 소수자 혐오를 주도하는 포퓰리스트들을 한낱 미치광이로 치부하는 것만으로는 그들을 이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명을 연장해주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나아가, 많은 전문가가 SNS나 유튜브 등을 통해 퍼지는 이 거짓말의 연쇄 고리와 알고리즘을 통제하지 못하면 거의 모든 나라에서 내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한다. 

동종교배의 허위정보들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그들은 자신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가차 없이 차별하고 혐오하고 폭력을 행사한다. 그래도 되는 게 아니라, 그래야만 한다는 방패 논리가 이미 그 가짜뉴스 안에 내재해 있다. 마비와 중독을 통해 사회갈등을 부채질하고 그런 소모적인 논쟁을 통해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려는 지금의 환경에 대해 훨씬 진지한 토론과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파시즘의 그림자가 다시 어른거리는 이 위험하고도 불안한 세계정세 속에서 이 책은 현대 정치가 남용하는 신화의 위험성에 대해 역사적 분석을 통해 경고한다.

파시스트와 포퓰리스트는 언제나 주장한다. 여론조사를 믿지 말라고, 선거를 믿지 말라고, 가짜 민주주의를 믿지 말라고. 그들이 말하는 진짜 민주주의는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가장 잘 아는 오직 한 사람, 즉 지도자를 통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체제다. 다시 말해, 독재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그들은 주장한다. “파시즘이야말로 진짜 민주주의다. 진실이란, 힘의 결과다!”

파시스트들에게 신화는 그 자체로 현실이거나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었다. 지도자, 국가, 권력, 폭력에 대한 파시스트의 개념은 신화적 이미지와 역사를 초월하는 환상으로 가득 차 있다. 파시스트들에게는 그들만의 진실, 그들만의 합리성이 있었다. 거기에 맞지 않는 건 모두 거짓이고 반지성주의였다. 그들은 거짓말을 하면서도 스스로 거짓말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만의 진실이 있으며, 나머지는 모두 거짓이고 오히려 반지성주의와 가짜뉴스라며 분위기를 조장한다.

파시스트의 핵심은 가변적일 수밖에 없는 과학적 사실을 유약하고 바보 같은 것이라고 무시하는 데 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확고하고도 불변의, 강력하고도 힘 있는 진리가 있다고 말한다. 독재자 한 사람을 중심으로 구성된 허구의, 신화적 역사가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파시즘은 과학보다는 주술과 긴밀히 연결된다. 그들에게 역사는 얼마든지 재구성할 수 있는 것이고, 이를 통해 새로운 사실과 진리를 생산할 수 있으며, 따라서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는 자가 진리를 소유한 자가 된다. 요약하면 힘이 곧 진리라는 게 파시스트들의 생각이다.

파시즘은 역사 속 문제일 뿐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숙제이다. 차별과 혐오, 억압과 폭력의 시대를 넘어 공동체의 건강한 삶을 바라는 이들에게 이는 매일매일의 일상 속 문제이며 오늘날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펼쳐지고 있는 다양한 사회운동과도 직결된다. 즉 파시즘은 비단 제도정치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목격되는 작은 파시스트들의 거리낌 없는 호도와 위선은 다시 진실을 가리는 파시즘에 대한 긴장을 놓지 않아야 할 때임을 알려준다. 저자는 그래서 파시스트 거짓말의 역사를 통해 더욱 냉정하고 차분하게 상황을 직시해야 함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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