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노년의 삶에 대한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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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노년의 삶에 대한 철학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7.17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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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老)카토 노년론 | 키케로 지음 | 김남우 옮김 | 아카넷 | 136쪽

 

이 책은 키케로가 『라일리우스 우정론』과 마찬가지로 친구 아티쿠스에게 헌정한 철학적 수필이다. 『라일리우스 우정론』의 헌사를 볼 때 『노(老)카토 노년론』이 먼저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작중 화자인 카토는 청년 스피키오, 라일리우스와 대화를 나누는데,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노년의 단점을 네 가지로 정리하고, 이들 각각이 잘못된 편견이고 오류임을 말해준다. 대화에서 85세의 카토는 30대 청년들을 만나 현자다운 노년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편, 이 책은 파월(Powell)이 1988년에 편집한 케임브리지 판본을 중요한 번역 모본으로 삼았다. 2006년 새롭게 편집한 옥스퍼드 판본이 최신판이지만, 강독 중에 옥스퍼드 판본에서 탈자와 오식(誤植)이 수차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파월은 1988년 케임브리지 판본을 편집하면서 참고한 주요 사본 중에서 파리 사본을 비롯하여 프랑스 지역에서 발견된 여섯 개의 사본들은 대체로 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런던 사본을 비롯하여 독일어 지역에서 발견된 다섯 개의 사본들은 10세기에서 12세기에 제작된 사본들이다.

철학은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하지만, 철학자도 결국엔 그 시대를 산 사람이기 때문에 당시의 담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철학을 보는 데서 당시의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 그런데 키케로 등의 서양 고전에는 2000년이라는 시간적 장벽이 존재한다. 키케로의 시대와 지금의 시대는 사고와 생활 방식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고, 그러한 틀 안에서 존재했던 서양의 고전 철학은 지금 우리의 철학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용되는 철학이 있다. 철학이 결국엔 사람에 대한 것이라면, 결과적인 차이는 있더라도 궁극적인 차이는 좁혀진다. 쉽게 말해, 사람 사는 것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하지 않던가.

시대를 뛰어넘는 철학은 학문적, 정치적, 사회적 담론이 아니라 일상에 녹아든 지혜로 존재한다. 『노(老)카토 노년론』은 일상의 철학이다. 노년에 대한 키케로의 철학이 담긴 이 고전은 지금 시대에서 노년을 바라보는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키케로는 카토의 입을 빌려 노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부정적 이미지를 네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노년이 되면 사회적 활동에서 멀어진다. 둘째, 육신이 쇠약해진다. 셋째, 쾌락을 빼앗긴다. 넷째, 죽음을 가깝게 느낀다. 카토가 제시한 네 가지 불평은 지금 시대에 노년에 대해 느껴지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카토가 이에 대해 제시하는 지혜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통용될 수 있지 않을까?

카토는 노년에 대한 네 가지 불평을 정리하면서 이에 대응하는 노년의 장점과 이를 바탕으로 한 삶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첫 번째 불평인 사회적 소외에 대해서는 비록 신체적 여건 때문에 정치적, 군사적 참여와 활동은 어렵더라도 경험을 토대로 사회적, 정치적 조언을 할 수 있고 문학과 철학 분야에 종사할 수 있다. 두 번째 불평인 육신의 쇠약에 대해서는 이를 지적 능력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고, 오히려 노년에는 육체가 아니라 정신과 영혼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세 번째 불평인 쾌락의 감소에 대해서는 쾌락으로 인한 과오에서 멀어질 뿐만 아니라 노년은 정신과 영혼에 힘을 쏟아야 하는 시기로서 영혼의 쾌락에 집중하기 좋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네 번째 불평인 다가온 죽음에 대해서는 앞의 세 가지 불평에 대한 관점과 다르다. 기존의 것들이 각각에 대응하는 장점에 주목했다면, 네 번째 불평은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귀결된다. 죽음은 출생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뒤따라오는 것으로서 죽음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이는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과정이기에,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따라서 삶을 이어가기 위한 노년의 올바른 방식이다.

“죽음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나는 육지를 바라보며, 오랜 항해 끝에 마침내 항구에 들어가는구나 생각한다네. 하지만 노년의 마지막 날이 정해진 바가 없는 고로, 의무의 과업을 돌보고 수행하며, 그러면서도 죽음을 가볍게 여겨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 때까지 삶을 이어가는 것이 노년의 올바른 삶이네. 그렇게 노년이 청년보다 더 대담하고 용감해지는 것이지.” ― 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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