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옛 그림 35점에 숨은 생생한 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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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옛 그림 35점에 숨은 생생한 역사 이야기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7.17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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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화신품록: 일곱 가지 키워드로 푸는 중국 고화의 수수께끼 | 황샤오펑 지음 | 조성환 옮김 | 아트북스 | 560쪽

 

이 책에서 저자인 미술사학자인 황샤오펑은 시대, 주제, 양식에 따라 서술하는 기존 미술사의 틀에서 벗어나, 중국 미술사의 보물 같은 그림 35점을 황궁, 시가, 동식물, 산수, 역사, 눈, 신체라는 일곱 가지 키워드를 단서 삼아 당대인과 오늘날 우리 삶을 연결해 명쾌하게 해석한다. 또한 치밀한 문헌 연구를 통해 제작 당시의 관람 경험 및 시각문화가 고화 감상의 관건임을 역설한다. 그가 제시하는 방법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내 눈’으로 ‘그림 자체’를 직면하는 것이다.

책 제목 ‘고화신품록’은 동양 회화 이론을 정립한 사혁의 저서 『고화품록』에서 가져왔다. 그러나 사혁이 그림의 ‘풍격’을 중시했다면 황샤오펑은 그림 속 도상, 즉 ‘시각적 맥락’을 강조하며 중국 역사, 문화사, 도상학을 아우르는 각종 자료와 방법을 동원해 개별 작품을 자세히 읽는다. 이 책에서는 중국 고화를 주로 다루고 있지만 감상법은 중국화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화와 중국화는 두루마리 그림, 병풍, 둥글부채, 쥘부채 등 형식적 특징과 역사적인 배경을 공유하고 있기에 책에서 제시하는 방법이 한국화 감상에 힌트가 되어주기도 한다. 

황샤오펑은 화가의 삶과 제작 기법을 말하는 대신 각 작품의 시각적 맥락을 면밀하게 살펴 그림에 숨은 이야기를 추적하고 발굴한다. 무수한 세부 묘사와 등장인물의 모습은 물론, 옅은 색감, 흐릿한 인장, 불완전한 문장까지도 고화의 수수께끼를 밝히는 퍼즐 조각으로 삼으며, 당대 사람의 시각을 헤아려 그림의 본래 의미를 밝혀낸다. 

한 예로, 16세기 화가 주방이 그린 「베이징궁성도」는 베이징의 중심을 이루는 쯔진청(현 고궁박물원) 앞에 관복을 입은 인물을 크게 그린 그림이다. 많은 연구자가 건축물에 주목하여 이 그림을 쯔진청의 주요 설계자 괴상의 초상화라고 여겼다. 그러나 현존하는 다섯 점의 쯔진청 그림 중 한 그림의 제작 연대는 괴상의 활동 연대와 차이가 있고, 다섯 개 그림에 모두 다른 사람이 그려져 있어 이러한 추측은 사실과 다르다고 잠정 결론 내려졌다. 그렇다면 쯔진청과 인물이 결합된 이 독특한 형식의 초상화 속 인물은 누구이며, 화가는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소박한 난초를 뿌리와 땅 없이 그린 정사초의 「묵란도」를 풀이하는 과정도 흥미롭다. 역사적으로 정사초는 남송 멸망 후 원나라에 저항한 남송의 유민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묵란도」를 오랑캐에게 땅을 빼앗긴 정치적 유민의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여겼고, 이는 좀처럼 반박되지 않았다. 이에 황샤오펑은 사료를 연구하여 정사초가 “밤낮으로 고국을 그리워하고 북방으로 얼굴을 돌리지도 않고, 그림 속에서 원나라의 더러운 흙을 묻히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원나라에서 경제적 수완을 기막히게 발휘하며 천수를 누린 사람임을 지적한다. 지은이의 말대로 정사초가 의외의 인물이었고 「묵란도」에 정치적 의미가 없다면, 이 그림은 과연 어떤 의도로 그려진 것일까?

10세기 화가 주문구의 그림으로 알려진 「중병회기도」를 살펴보는 과정도 눈에 띈다. 「중병회기도」는 그림 속에 그림, 그 그림 속에 또 그림이 있는 독특한 구성의 회화를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중병회기도」는 그림 가장 바깥쪽에서 바둑 두는 사람을 중심으로 풀이되었다. 전 주문구의 「중병회기도」에 그려진 남당 황제 중주 이경을 통해 정치적 의미를 읽는 식이다. 그러나 황샤오펑은 그림의 핵심은 병풍 속 병풍에 그려진 백거이이며, 백거이를 중심으로 전체 그림을 읽으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면서 아주 흥미로운 논지를 전개해나간다.

이 밖에도 고화를 둘러싼 질문들이 계속된다. 백이와 숙제를 그린 「채미도」는 정치적 은유를 담은 그림일까? 백이와 숙제가 캐 먹는 채소는 과연 우리가 아는 그 고사리일까? 「백자도」에 100명의 어린아이가 한 마당에 모인 이유는 무엇일까? 구조적으로 오류가 있는 「백자도」 속 물레 그림은 화가의 실수일까? 「오마도」 속 말은 모두 실존했던 말일까? 「축국도」에서 공 차기 하는 남녀는 무슨 관계일까? 등등. 

제1장 「황궁」에서는 「상룡석도」 「답가도」 「백자도」 등 궁정화가와 민간 화가들이 그린 황궁 회화를 소개하며 권력의 중심지 황궁에서 생성된 문화를 살펴본다. 제2장 「시가」에서는 「적거도」 「노구운벌도」 「유민도」 등 일반 백성의 가정생활과 경제활동을 그린 그림으로 당대의 풍속을 보여주는 동시에 평범해 보이는 그림이 품은 원대한 이상을 밝혀준다. 제3장 「동식물」에서는 원숭이, 구관조, 과일, 난, 원앙 등 동양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재에 중국 고유의 주제를 담은 동식물 그림을 세밀하게 분석한다. 제4장 「산수」에서는 「조춘도」 「산수십이경」 「설강매어도」 등의 그림을 통해 종교적인 염원에서 세속적인 축원까지, 중국 산수화에 반영된 당대 문사들의 마음을 헤아린다. 제5장 「역사」는 「중병회기도」 「오마도」 「채미도」 「망현영가도」 「신비인거도」의 바탕이 된 옛이야기를 자세히 풀이하여 중국 고대 인물과 그에 얽힌 고사를 소개한다. 제6장 「눈」은 그림으로 병을 치료하는 의사가 주인공인 「관화도」와 시각장애인의 싸움을 그린 「유음군맹도」 등으로 고대 중국 사람이 ‘눈’에 대해 가졌던 관념을 살펴본다. 제7장 「신체」에서는 「욕영도」 「세조도」 「축국도」 「초림오수도」 「농한평화도」를 통해 그림 속 인물들의 몸짓이 암시하는 인물 간 관계와 그림의 쓰임을 흥미롭게 풀어내며 당대 풍속과 현대문화를 연결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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