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왜 맑스주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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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왜 맑스주의인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4.30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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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스주의 이해하기 | 리처드 울프 지음 | 손호종 옮김 | 이학사 | 110쪽

 

오늘날 자본주의는 전지구적인 시스템이 되었지만 우리는 이미 눈앞에서 자본주의의 결함과 실패를 목도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99%가 아닌 1%에게 더 많은 재화를 전달한다는 지은이의 주장은 자본주의의 극단적인 불평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표현이다. 2008년 금융위기가 세계를 덮친 이후로 자본주의가 생각보다 불안하고 불안정한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수많은 사람이 급속한 경제 침체를 뒤집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변화를 필사적으로 찾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가 세계적으로 부활한 지금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사상과 실천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전통인 맑스와 맑스주의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왜 맑스와 같은 사회 비판가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까? 사회 비판가는 어떠한 사회에 대해서도 그 사회를 숭배하는 자와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해한다. 무언가를 이해하기 위해 현명한 사람들은 그것을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들이 믿는 것뿐 아니라 그것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 믿는 것도 고려한다.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직접적으로 고려하는 것을 넘어서, 자본주의를 숭배하거나 찬양하는 이들의 평가와 반대되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이들의 평가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한 모든 고려 속에서 사려 깊은 결론이 도출된다.

오늘날 맑스주의는 악마화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자본주의가 낡고 불안정한 경제 시스템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고, 이러한 비판적 태도는 자본주의 비판가들이 제안하고 연구해온 시스템의 대안에 대한 새로운 관심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지난 200년 동안 자본주의에 관한 가장 주요한 비판의 흐름은 칼 맑스와 맑스의 저작에 깊은 영향을 받은 다양한 경향으로 이어져왔다. 

이 책은 맑스가 자본주의 비판가로 돌아선 이유를 서술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18세기 후반 맑스는 프랑스혁명을 통한 자유·평등·박애, 그리고 미국혁명을 통한 민주주의가 근대사회에서 실현되기를 바랐다. 그는 자본주의가 그러한 요구를 실현해주리라 믿었고, 또한 그렇게 달성한 시스템이 이전의 경제 시스템인 노예제, 봉건제보다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프랑스혁명과 미국혁명은 자본주의 수립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러한 혁명의 요구, 즉 자유·평등·박애와 민주주의를 실현하지는 못했다. 아니, 그러한 약속을 내팽개쳤다.

왜 그랬을까? 이 책은 이러한 요구를 실현하는 데 놓인 장애물이 바로 자본주의의 구조 그 자체라는 사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각 경제 시스템에서 재화와 용역의 생산 및 분배에 관여하는 인간 집단은 크게 둘로 나누어진다. 노예경제에서는 주인과 노예, 봉건경제에서는 영주와 농노, 자본주의에서는 고용주와 피고용인이다. 여기서 노예, 농노, 피고용인은 필요노동 이상으로 노동함으로써 잉여생산물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 잉여생산물은 그들의 몫이 아니다. 그것은 주인, 영주, 고용주가 가져간다. 보다시피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 사이의 다른 점은 단지 이러한 분할의 형태뿐이다. 자본주의의 ‘자유로운’ 노동자는 흡사 노예와 농노와 같은 ‘자유 없는’ 노동자처럼 착취당한다.

경제 시스템에 대한 이러한 분석은 맑스의 경제학의 핵심, 즉 잉여론을 설명한다. 주인은 맨 꼭대기에 앉아 있고, 권력을 가지고 있다. 노예의 잉여에 의해 살아가는 주인은 그것을 사용해 이런 사회를 계속 유지시키고자 한다. 자본가들은 주인으로서 또 다른 수취자에게 잉여를 분배하기도 하는데, 그러한 잉여의 분배를 추동하는 것은 자본가들 사이의 경쟁이다.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경쟁자가 더 낮은 비용으로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계나 기타 투입물을 취득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따라서 그들은 생산 시설을 저임금 지역으로 이전하거나, 저임금으로도 일할 의사가 있는 노동자를 모집하기 위해 잉여 분배금을 배정하기도 한다. 잉여의 일부는 정부의 세금, 주주 배당금, 대출기관 이자 등으로 나가기도 한다.

경제 시스템은 정치 시스템과도 결부된다. 부자들은 그들의 부를 이용해 정치 시스템을 부패시키고 그 결과 그것은 그들의 부를 지켜준다. 오늘날 우리는 억만장자들이 선거에서 그들에게 유리한 표를 획득하기 위해 부를 이용하는 광경을 목도하고 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자본주의가 불균등하게 발전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맑스 자신은 자본주의 이후의 미래에 대한 어떠한 청사진이나 로드맵도 내놓지 않았다고 밝힌다. 그것은 맑스가 행한 분석의 중심이나 초점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스템의 작동 방식에 주목함으로써 맑스는 우리에게 몇 가지 가능성을 제공했다. 이 책은 우리의 다음 사회가 잉여의 조직화 방식이 민주주의적인 시스템이어야 한다고 말하며, 맑스주의 전통을 토대로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성을 보여준다. 즉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 생산할지 그리고 생산적 노동자의 잉여로 무엇을 할지에 대해 고용주(자본가), 최상층의 소수가 아닌 다수의 생산적 노동자와 비생산적 노동자가 다 함께 평등하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터가 근본적으로 민주적이 되는 시스템, 그것이 우리가 자유·평등·박애와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사회를 수립하기 위해 추구해야 할 경제 시스템임을 이 책은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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