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식민지 조선 교육…제한적·차별적·억압적으로 이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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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식민지 조선 교육…제한적·차별적·억압적으로 이뤄져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04.29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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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 동북아역사재단 학술대회 '일제강점기 교육정책의 연구 방향'
- 일제강점기 교육정책을 통해 본 일제 식민통치의 실태와 본질

 

                                              개회사하는 장원삼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

'식민지근대화론'은 한국의 근대화는 일본 제국주의가 가져다준 시혜적 선물이라고 보는 역사적 관점이다. 이른바 ‘식민지시혜론’의 중요한 근거로 교육이 거론되기도 한다. 즉, 조선에 학교를 많이 지어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이 전방위적으로 이뤄진 가운데 교육 역시 매우 제한적·차별적이고 억압적으로 이뤄졌다는 전문가 지적이 나왔다.

식민지 조선에서의 조선인 교육은 무척 제한적이었으며, 오히려 일본이 조선인을 탄압하고 차별하는 기제로 교육을 활용했음을 다양한 증거로 밝히는 학술대회가 개최됐다. 4월 27일(목) 동북아역사재단 대회의실에서 열린 '일제강점기 교육정책의 연구 방향' 학술대회다.

이번 학술대회는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침탈과 억압적인 식민지배에 관한 역사적 사실들을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별로 나누어 그 실태를 밝히는 재단의 '일제침탈사 편찬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다. 교육분야 연구총서 집필자들이 일제강점기 초등・중등・고 등 교육정책의 실태와 문제점, 그리고 과제와 영향에 대해 발표했다. 

박찬승 편찬위원장은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은 식민지 시대 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해방 이후 한국 경제 성장의 주역이 되었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 매우 피상적인 주장"이라며 "이번 연구가 식민주의적 주장을 실증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적극 반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 초등교육 분야를 담당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김광규 연구위원은 일제 강점 초기는 폭압적 차별교육이 제도화된 시기, 1920년대는 동화와 차별의 혼종기, 1930년대는 실업교육이 강화되고 교육의 질이 저하된 시기, 일제 말 전시기는 교육이 붕괴된 시기로 특징 지워 설명했다. 

김광규 연구위원은 "강점 후 조선총독부는 조선에서 교육의 목적은 일본어를 잘하고 성실 근면하게 노동에 종사하는 '충량한 신민 육성'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으며 일제 말까지 그 근본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초등교육에서는 학교 설립과 경영에 들어가는 경비를 수요자들에게 떠넘김으로써 교육의 공공성이 상실되었으며, 학교 부족으로 입학단계에서부터 치열한 경쟁을 해야만 했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수요자 부담 교육은 조선사회의 경제난, 남성 중심적 가부장 질서와 결합하여 절대다수의 여성을 초등교육에서 소외시켰음을 지적했다.

요컨대 "일제강점기의 초등교육은 굴절·왜곡되면서 공공성 실종, 여성 배제, 교원의 교육력 약화라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중등교육' 발표하는 안홍선 서울대 교수      <br>
                                        '일제강점기 중등교육' 발표하는 안홍선 서울대 교수      

□ 중등교육 분야를 담당한 서울대학교 안홍선 교수는 "일본의 중등교육체제가 조선에 그대로 이식됐지만 지극히 제한된 교육기회로 식민지 조선의 중등교육은 일본에서와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고 밝혔다. 

조선인에게 매우 차별적인 입시정책으로 고등보통학교(중학교)는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입시위주의 경쟁교육으로 되고 말았고, 취업할 직장이 없고, 진학할 고등교육기관이 부족한 상황에서 여자고등보통학교(고등여학교)는 극히 소수의 여성을 대상으로 한 ‘현모양처’ 양성을 위한 교육으로 전락했다. 

한편, 실업학교는 졸업 후 ‘실업에 종사’하는 ‘독립 자영인’ 양성을 목적으로 하였지만 실제로는 금융기관이나 관공청, 일반 회사에 취직하는 ‘봉급생활자’를 키우는 교육이 되고 말았다고 분석했다. 

안 교수는 특히 남자 대상의 일반교육, 여자 대상의 일반교육, 실업교육 등 세 부분으로 나뉜 형태의 제도가 "해방 이후 교육 조건의 근본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유지됐다"며 향후 정책적 과제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27일 동북아역사재단은 서울 서대문구 재단 대회의실에서 '일제강점기 교육정책의 연구 방향'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사진=동북아역사재단 제공<br>
27일 동북아역사재단은 서울 서대문구 재단 대회의실에서 '일제강점기 교육정책의 연구 방향'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사진=동북아역사재단 제공

□ 고등교육 분야를 담당한 서울대학교 김태웅 교수는 경성제국대학을 중심으로 한 교육정책을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김 교수는 일제의 고등교육 정책은 최대한 이를 제한하려는 것이었으며, 1910년 이후의 관립전문학교 개설은 주로 재조선 일본인 학생들의 진학을 위한 것이었고, 1920년대의 경성제국대학은 조선에 대한 통치정책의 연구와 일본인 학생들의 진학을 위해 개설된 것이었다고 보았다. 

김 교수는 사립전문학교는 총독부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해 경영난과 학내 분규에 시달려야 했다고 설명했다. 또 경성제대-관립전문학교-사립전문학교라는 고등교육의 서열구조가 구축되었으며, 이는 학력차별과 민족차별구조를 심화시켰다고 보았다. 김교수는 특히 경성제대는 여러 부문에서 일제의 침략 및 수탈정책을 학문적으로 뒷받침했고, 또 그러한 정책을 수행할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는 기구였다고 평가했다.


□ 토론에는 정연태 교수(가톨릭대학교)의 사회로 최병택 교수(공주교육대학교), 강명숙 교수(배재대학교), 장세윤 박사(성균관대학교), 정준영 교수(서울대학교)가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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