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자율성은 측정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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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자율성은 측정될 수 있는가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04.29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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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DI BRIEF]

 

                                                              사진=오마이뉴스

‘대학의 자율성’은 대학이 학문의 자유 속에서 교육의 다양성과 유연성을 추구하기 위해 전제되어야 한다는 인식 속에서 그 필요성이 강조되어왔다. 최근 대학의 자율성 강화를 고등교육 정책의 기본 방향으로 설정함에 따라 그 중요성이 더욱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대학의 자율성이 강조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개념, 필요성, 실태 등을 다각적으로 조망한 논의는 제한적이다. 법의 영역에서 법해석적 관점이나 판례 분석을 중심으로 연구가 수행되고, 일부 자료에서 대학 자율성 강화에 대한 당위적 입장이 표명되었으나 대학 자율성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통한 분석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대학 자율성을 추구하는 고등교육 정책을 구체적으로 설계하기 위해서는 대학 자율성의 의미와 세부 영역, 대학 자율성의 판단 근거 등에 대한 논의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최근 EUA(유럽대학연합: European University Association)에서 대학 자율성을 측정하여 그 결과를 발표했다. 유럽 대학을 중심으로 한 대학 자율성 측정 방법과 그 결과는 한국의 대학 자율성에 대한 논의에 있어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에 한국교육개발원(KEDI)은 대학 자율성의 개념에 대한 기존의 논의를 살펴보고, EUA가 발표한 대학 자율성 측정 주요 결과를 분석한 보고서 <대학의 자율성은 측정될 수 있는가>(작성자: 우선영 연구위원)를 ‘KEDI BRIEF’ 제10호로 4월 28일 발간했다.

분석 결과, 보고서는 대학 자율성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한국에서의 대학 자율성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며, 그 논의는 조직, 재정, 인사, 학문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이루어질 필요가 있음을 제언했다. 나아가 대학의 자율 역량 강화를 위해서는 대학 자율성의 정도를 수시로 점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대학의 자율성 개념에 대한 논의

• 대학의 자율성은 일반적으로 대학의 자유, 실질적 자율성, 절차적 자율성으로 구분된다. ‘대학의 자유’란 주로 교수로 구성된 대학 내 행위자 들이 교육과 연구를 수행할 때 비학문적인 요인에 의해 처벌받거나 불이익을 받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 ‘실질적 자율성’이란 대학이 스스로 목표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이며, 마지막으로 ‘절차적 자율성’이란 대학이 설정한 실질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 및 프로그램의 운영 방식을 결정할 권리를 의미한다.
 
• 대학의 자율성에 대한 정의와 특징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사회, 문화적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 대학 자율성의 측정: 유럽 사례

▶ EUA의 대학 자율성 측정

• EUA(European University Association: 유럽 대학 연합) 대학 자율성 점수는 각 세부 영역별 가중치와 제약 수준에 따른 점수를 통합하여 산출된다. 세부 영역별 가중치는 조직, 재정, 인사, 학문 각각의 영역 안에서 세부 영역의 자율성이 지니는 상대적 중요성을 의미한다. 이 가중치는 EUA 사무총장 및 이사회(Secretaries General and Council) 30명을 대상으로 각 지표의 중요성을 ‘중요하지 않음’, ‘조금 중요함’, ‘상당히 중요함’, ‘매우 중요함’의 4점 척도로 2차례 조사하여 산출됐다. 총 32개 세부 지표의 점수와 가중치를 종합하여 4개 영역별 점수가 산출되는데, 80% 이상은 ‘상’, 61~80%는 ‘중상’, 41~60%는 ‘중하’, 40% 이하는 ‘하’ 수준으로 보고하고 있다.

▶ 유럽 대학의 자율성 측정 주요 결과

• EUA의 대학 자율성 측정에 참여한 35개국의 조직, 재정, 인사, 학문 자율성 측정 결과는 다음과 같다. 한 영역의 자율성 수준이 다른 영역의 자율성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몇 개국에서는 그러한 경향이 나타났다.

• EUA는 각 영역별 자율성 점수 외에 각국의 세부 지표에 대한 응답 현황을 보여주고 있다. 주요 세부 지표의 응답 현황은 다음과 같다.

• 조사에 참여한 35개국 중 24개국에서 대학의 총장 선출은 대학 내부의 결정에 의하는 것으로 나타난 반면, 11개국에서는 외부 기구의 승인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외부 기구는 고등교육을 담당하는 교육부나 대통령이 해당되는데, 일부 국가에서는 외부 기구의 승인이 형식적인 경우가 있다고 응답했다.

• 대학 이사회의 외부 인사 포함에 대한 응답은 대학이 이사회의 외부 인사를 지정할 수 있는 경우(7개국), 외부 인사를 지정할 수는 없으나 제안할 수 있는 경우(3개국), 일부 인사를 지정할 수 있는 경우(9개국), 이사회의 외부 인사에 대한 권한이 없는 경우(6개국), 기타(5개국), 대학의 이사회에 외부 인사를 포함하지 않는 경우(5개)로 구분됐다.

• 유럽 고등교육에서 대학은 국가로부터 주로 블록그랜트(block grant)의 형태로 예산을 지원받고 있다. 대학이 국가로부터 공공재원을 배분받는 방식을 살펴보면, 조사에 참여한 국가 중 절반에 해당하는 18개국에서 예산 사용에 대한 제약이 없는 것으로 응답했다. 9개국에서는 교육, 연구, 인프라, 봉급, 운영비, 투자 등의 영역으로 구분하여 예산을 지원받고, 해당 영역 안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했다. 4개국에서는 세부 항목별로 예산을 할당받는 것으로 응답했다. 

• 대학이 학생에게 수업료를 부과할 수 있는 자율성에 대해서는 35개국 중 20개국에서만 수업료를 부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3개국에서는 대학이 수업료 수준을 결정할 수 있었고, 3개국에서는 대학이 외부 기구와 협의를 통해 그 수준을 결정하고, 5개국에서는 일정 한도 내에서 대학이 결정하며, 마지막으로 9개국에서는 그 수준이 외부에서 정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 교·직원 임용의 자율성을 살펴보면, 35개국 중 13개국에서 대학이 교수 임용에 대한 자율성을 지닌 것으로 응답했다. 22개국에서는 교수 임용과 관련하여 임용 결정에 대한 승인, 채용 인원에 대한 외부 규제, 외부 기구의 임용 과정 진행 등의 제약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원 임용에 대해서는 보다 많은 국가(23개국)에서 대학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것으로 응답했다.

• 35개국 중 29개국에서 대학은 교수의 급여를 결정할 수 없으며, 28개국에서 직원의 급여를 결정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국에서 대학의 교·직원은 대부분 공무원 신분이기 때문에 대학 교·직원의 급여에 대한 대학의 자율성이 제한되는 것을 알 수 있다.

• 대학의 학부 학생 선발에 대한 기준과 관련하여, 35개국 중 8개국에서 대학 외부 기구에 의해 통제되는 것으로 응답했고, 14개국에서는 대학과 외부 기구의 협의에 의해, 13개국에서 대학이 이를 결정하는 것으로 응답했다. 대학원 석사 학생 선발에 대해서는 보다 많은 국가에서 대학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26개국에서 대학이 석사 학생 선발 기준을 설정할 수 있는 반면에, 7개국에서는 대학과 외부 기구의 협의를 통해 그 기준을 설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신규 프로그램 도입, 운영과 관련하여, 35개국 중 8개국에서 별도의 승인 과정 없이 새로운 학위 프로그램을 개설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개국에서는 예산 지원을 받기 위해 사전 승인이 필요한 것으로, 12개국에서는 신규 학위 프로그램은 사전 승인이 필요한 사항임을 보고했다.

• 대학의 질 관리 기관 선택권에 대해서는 35개국 중 10개국이 질 관리 기관을 선택할 수 있지만 25개국에서는 선택할 수 없는 것으로 응답했다. 단, 국가에서 진행하는 질 관리 외에 추가적인 관리는 대학이 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요약 및 시사점

• 대학 자율성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한국에서의 대학 자율성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유럽국은 대학 운영의 효과성과 효율성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대학 자율성이 필요하다는 합의를 토대로, 이를 다각적으로 측정하고 있다. 

• 대학의 자율성은 조직, 재정, 인사, 학문 등 다양한 영역에 걸친 통합적 개념이다. 한 영역의 자율성이 강화된다고 해서 대학에 요구되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목적 달성은 어렵기 때문에 대학 자율성의 다양한 영역에 대한 고려에 기반하여 고등교육 정책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 대학 자율성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그 정도를 측정하려는 노력은 고등교육 정책 수립에 기초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대학의 자율 역량이 강조되는 가운데 대학이 스스로의 자율성 정도를 확인하고 이를 강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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