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의 ‘자유’ 개념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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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의 ‘자유’ 개념 비교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04.0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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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연단]

■ 열린연단 〈자유와 이성〉 제44강_ 김상환 서울대 교수의 「동서의 ‘자유’ 개념 비교」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아홉 번째 시리즈 ‘자유와 이성’ 강연이 매주 토요일 서울의 네이버 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자유는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자기실현의 원리라고 할 수 있으며, 그간 인류가 걸어온 길은 자유 실현을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섯 섹션 총 46강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고전 시대로부터 근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자유 담론을 검토함으로써, 자유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확장하고 미래 사회를 위한 새로운 비전을 열어보고자 기획됐다. 인류의 자유와 공존을 위해 요구되는 국제 질서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그 미래를 전망해보는 여섯 번째 섹션 ‘자유와 공존을 향한 국제질서’ 제44강 김상환 교수(서울대 철학과)의 강연 중 서론과 근대적 주체에 초점을 맞추어 동서의 자유 개념을 비교하는 4장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동서의 ‘자유’ 개념 비교


김상환 교수는 “동서 사상사는 똑같이 자유를 추구해온 역사라 해도 무방”하며 그에 따라 “동양과 서양이 서로 만나고 화해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자유 개념부터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만큼, 게다가 “동서고금의 사상이 끊임없이 충돌하고 회오리”를 일으키는 지역인 한반도에 사는 만큼 “동서 자유 개념의 비교는 불가능하되 불가피한 과제”라고 이야기한다. 이를 위하여 존재론 혹 정치경제학 대신 “윤리의 수준에서 접근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전제 아래 “동서의 윤리를 매개할 수 있는” 중간 범주로 “자기(自己) 개념”을 들면서 자기의 세 가지 축, “대타 관계의 축”, “대자 관계의 축”, 그리고 “이념과 관계하는 원격 관계의 축”을 통해 자유라는 개념에의 접근을 시도한다. 이와 같은 가설적 설정에 의지하며 첫 번째 단계에서는 “언어-인류학적 관점에서 공자와 소크라테스 이전의 자유 개념”을 다루어보고 두 번째 단계에서는 “공자와 소크라테스를 중심으로 동서의 고대 윤리학과 거기서 비롯되는 자유 개념”의 유사성과 차이를 찾아보는 데 이어 마지막 단계로는 “소크라테스의 후예인 계몽적 주체와 공자의 후예인 사대부는 어떻게 달라졌을까”라는 질문과 함께 “근대적 주체에 초점을 맞추어 동서의 자유 개념을 비교”해본다. 

 

지난 3월 18일, 김상환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자유와 이성>의 44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비교의 난해성

동서의 자유 개념은 너무 달라서 둘을 비교하는 일은 불가능한 과제인지 모른다. 동서의 문화적 차이는 대단히 크고, 자유는 그 문화적 차이가 압축적으로 드러나는 가장 첨예한 주제다. 게다가 자유는 개인, 사회, 문화권마다 주관적 조건이 천차만별이어서 시공을 초월한 객관적 의미를 정하기 어렵다.

동서 사상사는 똑같이 자유를 추구해온 역사라 해도 무방하다. 따라서 동양과 서양이 서로 만나고 화해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자유 개념부터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동서 자유 개념의 비교는 불가능하되 불가피한 과제다. 특히 한반도의 특수한 지정학적 조건 때문에 동서 비교는 우리 인문 사회과학의 피할 수 없는 과제다. 

가설과 방법 그리고 예비적 정의

동서의 자유 개념을 비교할 때는 일단 윤리의 수준에서 접근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그러나 동서의 인륜적 구조가 다르다. 그런 구조적 차이를 이겨내기 위해 동서의 윤리를 매개할 수 있는 중간 범주로 자기(自己) 개념을 들고 싶다. 자유는 자기 개념과 상호 보완적 관계에 있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자기란 무엇인가? 세 가지 축의 교차점으로 정의하고 싶다. 첫 번째 축은 타인과 관계하는 축, 대타 관계의 축이다. 두 번째는 자기와 관계하는 축, 대자 관계의 축이다. 세 번째는 먼 곳과 관계하는 축, 이념과 관계하는 원격 관계의 축이다. 

1) 먼저 대타 관계의 축에서 볼 때 자유는 언제나 타인을 전제한다. 자유는 고립된 자기의 권리나 속성이 아니다. 타인 없이 홀로 살거나 타인과 분리된 상태에서는 윤리적 의미의 자유는 문제로서 성립하지 않는다. 자유는 언제나 함께 살아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제기되는 물음이다. 이런 대타 관계의 축에서 자유는 지배의 부재, 간섭이나 폭력에서 해방된 상태로 정의된다. 그러나 이는 소극적 정의에 불과하다. 적극적으로 정의할 때 자유는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 데 있다.

2) 자기 관계의 축에서 볼 때 자유는 이중화된 자기를 전제한다. 어떤 이중화인가? 자유 속에서 자기는 능동적이면서 수동적이다. 많은 경우 자유는 자발성과 혼동된다. 그러나 자발적이기만 한 것은 아직 자유가 아니다. 자발적이되 어떤 강제력이나 규칙과 일체를 이룰 때 자유가 된다. 거기서 자기는 스스로 주체이면서 객체다. 자유로운 자기는 돌아가는 팽이처럼 모든 논리적 이분법을 지운다. 가령 안과 밖, 무질서와 질서, 운동과 정지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 자유다.

3) 자유는 사실상(de facto)의 문제이기에 앞서 권리상(de jure)의 문제다. 자유는 사실로서 기술될 때마저 추구할 가치나 이상 혹은 권리로서 전제된다. 자유에 대한 논의들이 지리멸렬해지는 것은 많은 경우 이 두 차원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자유 개념이 거느린 이념적 차원이나 권리상의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원격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이때 원격 관계는 신, 하늘, 천명, 이념 같은 초월적 영역, 그것의 근대적 변형인 초월론적 영역에 대한 관계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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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근대적 자유의 조건: 계몽적 주체와 사대부

국민 국가의 등장

오늘날 널리 공유된 자유 개념은 근대기 유럽의 국민 국가와 함께 탄생했다. 그렇다면 국민 국가의 탄생 조건은 어디에 있는가? 세 가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으로 집약할 수 있다. 하나는 17세기의 과학혁명이다. 다른 하나는 18세기 시민혁명(영국 혁명, 미국 독립선언, 프랑스 혁명)이다. 마지막으로 계몽주의가 중요하다. 

기계론이 자연의 이미지를 바꾸고, 계약론이 국가의 이미지를 바꾸어놓았다면, 계몽주의는 역사의 이미지를 바꾸어놓았다. 계몽주의는 이성주의다. 그리고 이성주의는 공동체보다 우월한 입장에서 새로운 인륜의 모델을 제시하는 자유로운 개인들이 서로 경쟁하는 시대의 이념이다. 계몽주의적 의미의 자유는 다원주의에 기초한 비판과 논쟁을 기초로 한다. 

계몽적 주체와 계약론

근대적 자유 개념은 이런 국민 국가의 이념 아래 싹트기 시작했다. 자유 의식을 본질로 하는 근대적 개인을 ‘계몽적 주체’라 부르자. 계몽적 자아는 무엇보다 계약의 주체다. 그는 계약을 통해 사회적 질서를 수립한다. 따라서 사회보다 먼저 존재하고, 사회적 규칙 이전에 자신의 고유한 권리(자연권, 천부인권)를 지닌다. 근대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는 이런 믿음에서 자라났다.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에서 자유는 간섭의 부재라는 소극적 자유로 제시된다. 

국가는 이제 개인의 잠재력을 활성화하기 위해 무조건 전제해야 하는 어떤 자연적 존재가 아니다. 국가는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기구다. 그러므로 국민에 대한 간섭이 작아질수록 좋다. 그런데 이런 자유주의의 개인과 국민 국가의 다수를 이루는 개인(민주주의의 개인)은 구별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개인은 자유주의가 가리키는 고립된 개인도, 사적 영역에서 자유를 누리는 개인도 아니다. 그와는 전혀 반대로 평등한 관계 속에 동질적인 인민(demos), 일반 의지 속에 개인적 편차가 사라지는 개인이다. 이런 차이로 인하여 개인주의를 매개로 서로 연결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에는 내적 긴장과 갈등이 상존한다.

계몽적 주체와 자율성

계몽적 자아는 자율의 주체다(칸트). 자기 입법을 통해 윤리적 질서를 수립하는 개인이고, 자신이 수립하거나 동의한 법칙에만 복종하는 주체다. 이런 자율성은 칸트 윤리학에서 자유를 정의하는 개념으로 등장한 후 점점 더 인간의 본성 자체를 정의하는 개념으로 자리 잡아갔다. 인간이 무언가를 알고 무엇을 위해 실천하거나 희망한다면, 그것은 모두 인간이 자유롭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이때 자유는 자율성, 다시 말해서 자기 입법을 말한다.

이때 자유는 두 가지 특징을 지닌다. 하나는 운명에 저항하거나 자연법칙을 넘어서는 힘이다. 현실원칙을 넘어서는 이상의 추구, 쾌락원칙의 중력에서 벗어나는 능력, 심지어 죽음충동을 불러들이는 태도 같은 것이 자유의 첫 번째 특징이다. 자유의 두 번째 특징은 ‘자기 개선의 능력’이다. 끊임없이 자기를 개선해가는 자기 도야의 인간, 그는 인간다움의 조건을 생각하고 그렇게 생각된 조건에 따라 자신의 역량을 실현하는 인간이다. 우리가 동서 자유 개념을 비교하기 위해 중간에 놓는 자기 개념은 이런 인간 개념에 기초한다. 

 

계몽적 주체의 역사 인식

계몽적 주체는 계약을 통해 사회적 질서를 수립하고, 자율을 통해 윤리적 질서를 수립한다. 그러나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계몽적 주체는 또한 현실 비판을 통해 역사적 질서를 열어간다. 역사에 개입하는 신의 섭리나 신학적 역사 도식에서 벗어나 스스로 역사를 계획하고 설계한다. 따라서 계몽적 주체의 시선은 과거 못지않게 미래로 향하고, 진보의 확신 속에 역사적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왜 개입하는가? 끊임없이 변하는 현실에서 새로운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다. 계몽적 주체는 과거와 미래의 경계를 다시 그리고, 기존 공공선의 타당성을 점검하며, 새로운 추세에 맞추어 현실을 개혁하는 비판적 주체다.

계몽적 주체는 공동체의 이상적 모델을 두고 서로 경쟁하면서 갈등을 빚는 특수한 개인이다. 이 특수한 개인을 통해 인간이라는 유적 범주와 개체로서의 인간은 매번 다르게 매개된다. 이들은 자기끼리의 갈등이 고대 그리스에서처럼 공동체 분열의 원인이라기보다 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생기의 원리이자 역사 진보의 원동력임을 확신한다.

볼테르의 중국 찬양

이런 모습의 계몽적 주체는 중국 전통에서는 찾기 어렵다. 따라서 계몽적 주체에게 중국은 역사가 없는 나라로 비친다. 헤겔적인 계몽주의의 관점에서 역사가 없다는 것은 자유가 없다는 말이자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따라서 동서의 자유 개념을 비교한다든가 유교적 민주주의를 꿈꾼다는 일은 부질없는 짓이 될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유교 서천(西遷)론이 나와 시선을 끌었다. 계몽주의 자체가 유럽의 자생적 사상이 아니라 외부에서 이식된 사상이란 주장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계몽주의는 중국 유교 사상이 서쪽으로 옮겨와 다시 자리 잡은 사상에 불과하다. 이는 주로 볼테르의 중국 찬양(sinophilia)에 근거한다. 볼테르는 중국을 이상 국가의 모델로 그렸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땅에 가장 많은 인구를 소유한데다 가장 부강하고 앞선 문명을 구가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볼테르는 중국이 유럽보다 월등한 문명을 구축한 비결로 대충 세 가지 이유를 든다. 하나는 공자와 유가 사상이다. 공자가 미신과 광신을 멀리하고 이성에 바탕을 둔 자연종교의 창시자라는 것이다. 볼테르는 공자에 이어 중국 황제도 찬양했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과 경쟁하는 철인왕(哲人王)으로 그렸다. 자신이 열망하는 계몽 군주의 살아 있는 모델로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볼테르가 더욱 감탄하는 점은 과거 시험을 통한 관리 임용이다. 핏줄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나랏일을 맡기는 제도는 볼테르뿐만 아니라 많은 계몽주의자가 중국을 찬양하는 결정적인 근거가 되었다.

 

헤겔의 중국 혐오

볼테르와 동시대인인 몽테스키외에겐 중국은 전제정의 살아 있는 전형이다. 몽테스키외의 영향이 컸던 헤겔에게는 이런 중국 비하가 더욱 극단화된다. 중국에서는 오직 황제 1인만이 자유롭고 나머지 사람은 모두 강압적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타성적이고 게으른 노예들이 되어버린다. 헤겔에게 노예 상태는 자립적 내면성이 없음을 말한다. 중국에는 자유가 없는 대신 평등은 넘친다. 과거제를 통한 관리 등용이 그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그것은 내면성이 없는 사람들의 평등이어서 민주정은 불가능하고 오직 전제 군주정만이 적합하다. 중국에는 개인의 자유가 자리할 자립적 내면성이 없는 만큼 법의 정신(객관 정신)도, 민족 정신도 없다. 하물며 세계 정신은 더더욱 없다. 어떤 정신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가족 정신뿐이다.

기독교적 내면성과 유가적 외면성

헤겔은 근대적 자유 개념의 유래가 18세기의 정치-경제학적 변동 못지않게 개신교 전통에 있음을 강조한다. 이때 자유를 정의하는 핵심 요소는 어떠한 외부 권력과도 맞설 수 있는 자기충족적인 내면성, 다시 말해서 신과 소통하며 고유한 자기를 드러내는 단독적 내면성이다. 그런 단독적 내면성은 자기 존중의 원천이자 신성한 인권의 바탕이며, 정신의 본질을 이루는 자유의 실상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내면성에 대한 감각이 오로지 기독교를 믿는 유럽인만의 전유물이라는 주장에 있다. 이런 배타적인 자긍심이 오리엔탈리즘의 발단이자 다른 문화권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원초적 걸림돌이다. 

헤겔이 입을 닫게 만드는 방법은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유가 윤리의 특성을 보여주는 데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특성은 이론보다 실천을 중시하는 유가 역행론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유가 역행론은 두 가지 도주선을 지닌다. 하나는 공자-안회의 극기복례(克己復禮)로 이어지는 선이고, 다른 하나는 공자-자공의 능근취비(能近取譬)로 이어지는 선이다.

역행론이 극기복례로 이어지는 도주선은 율곡을 통해 잘 드러난다. 율곡은 수양론의 중심에 역행을 두었으며, 역행의 방법을 극기복례에서 찾았다. 수양의 길은 경을 통해 마음을 주재하는 것이 아니라 예의 실천을 통해 사욕을 없애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는 이(理)보다는 기(氣)를, 본성보다는 지각을 중시하는 율곡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

주관적 자유와 객관적 자유

물론 그 극기복례의 기술이 창조할 ‘외부적 정신’이나 ‘객관적 자유’는 헤겔 철학의 자유 개념과도 공명하는 점을 지닌다. 헤겔에서 자유는 분명 스스로 자유롭다고 오인하는 주체들의 인정 투쟁을 전제한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는 그런 인정 투쟁 속에서 특수한 주체들이 사라지는 가운데 국가를 이루는 법과 제도를 통해 실현된다. 엄연한 현실로서 객관화되지 않는다면, 주관적 자유도 무의미한 것이다. 그것이 헤겔이 말하는 인륜적 자유다. 인륜적 자유는 국가라는 이성적 현실로서 외면화된 ‘구체적 자유’다.

그러나 헤겔의 구체적 자유는 내면적 깊이와 주관적 확신으로 가득한 특수한 개인들이 서로의 보편성을 다투는 가운데 실현된다. 반면에 공자에게서 객관적 자유는 장인적인 예식 수행과 극적인 자기 연출이 주관적 정신을 일깨우고 공동체 정신을 발산할 때 실현된다. 

 

사대부의 등장과 유가적 이상 국가

위계적 질서를 전제하는 한, 아무리 자기를 미루어 타인의 사정을 고려한다 해도, 근본적인 불평등과 그에 기초한 지배 관계는 피할 수 없다. 가부장적 권위주의는 유가적 민주주의로 가는 길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다. 유가 사상은 천명 사상을 이용하여 정치에서 민권은 거의 배제하는 듯이 보인다. 아직 유가적 민주주의를 말하기 어려운 근본적 이유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볼 여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유가 사상은 적어도 군권과 신권의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상으로 해왔고, 이런 이상은 송나라 이후 성리학으로 무장한 사대부가 정치경제학적 의미의 중산층으로 등장하면서 현실로 나타났다. 중국에는 일찍부터 이런 사대부 세력이 있어 군주정이 전제정으로 전락할 위험을 크게 줄였고, 나아가 송명 시기의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근대성을 성취한 국가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조선을 설계한 정도전의 글을 보면, 사대부가 꿈꾸던 이상 국가가 고대 로마의 공화정에 가까운 체제가 아니었나 하는 의문이 든다. 군주는 상징적인 자격에서 인(仁)을 베풀고, 실제의 정치와 행정은 철저히 현능한 재상과 정승들이 도맡아 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성리학의 나라라 불리는 조선에서는 경연, 간언, 상소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군권을 견제하며 예치(禮治)의 이념을 실현하려 했던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예치를 실현한다는 것은 자의적 지배를 피하고 공론의 정치를 펴나감과 같다.  따라서 조선 사대부는 입헌 군주정을 꿈꾸었다고 짐작할 만하다.

유가적 공화주의

유가적 예치는 자의적 인치(人治)와 대립한다는 점에서 공화주의가 중시하는 법치에 가깝다. 공사를 엄격히 구분하고, 사적인 이해관계가 공사(公事)에 개입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예치의 목적이자 또한 공화주의가 법치를 통해 실현하고자 한 점이다. 정치 참여자의 덕성 함양을 요구한다는 점에서도 유교주의는 공화주의와 유사한 것처럼 보인다. 

자기비판과 갱신의 능력을 통해 내적 발전이 가능한 국가 체제를 세웠던 사대부 계급은 ‘중국적 자유의 전통’을 말할 수 있는 근거다. 물론 이때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자유나 개인주의의 자유와는 분명히 거리가 멀다. 그러나 공화주의의 자유와는 어느 정도 가까이 놓을 수는 있을 것이다. 공화주의는 공동선의 실현을 위한 구성원의 적극적 참여, 사욕의 배제를 위한 법의 지배를 요구한다. 이런 공화주의는 공공선을 이해하고 실현할 만한 능력의 자기를 전제하고, 그런 자기에 대해 자유는 사적인 욕망(경향성)에서 자유로운 자기 지배에 해당한다. 

정도전이 꿈꾸었던 유가적 이상 국가에는 군주와 사대부는 예속 관계가 없어야 했다. 그러나 유교적 이상 국가에서 사대부는 자신의 정치적 자유를 지키기 위해 종종 죽음은 물론 멸문지화(滅門之禍)의 파탄을 겪어야 했다. 따라서 유가적 이상 국가에서 사대부의 정치적 자유, 그 공화주의적 자유는 죽음을 바탕에 깔고 서 있는 자유다. 

 

유가적 자유와 죽음충동

유가적 자유는 죽음을 먹고 자라는 자유다. 그런 의미에서 유가적 자유는 현실원칙이나 쾌락원칙 저편을 향한다는 점에서 숭고한 성격을 띤다. 거기에는 세속적 이해관계나 모든 생명 보존의 충동마저 사라진 초-생물학적 차원이 개시된다. 사람들은 거기서 생명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음을 알게 된다. 어떠한 등가적 교환의 문맥도, 어떠한 목적-수단의 관계도 벗어난 절대적 가치(존엄성)에 눈뜨게 된다. 자유가 쾌락원칙이나 현실원칙을 넘어선다는 것은, 이런 원칙에 속하는 가치를 비로소 가능하게 하고 살아 있게 만들어줌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극적 자유든 적극적 자유든 아니면 공화적 자유든, 그 모든 것은 생사를 건 인정 투쟁 위에서만 가능하고 활력을 유지할 수 있다.

공자와 맹자는 사람다움이 자연적 생명보다 상위의 차원에 존재하며, 따라서 우월한 가치임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논어』의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 같은 말이 좋은 사례다. 이런 말은 자연적 가치와 구별되는 인문적 가치의 존엄성을 말하되, 두 가치를 가르는 경계가 죽음에 있음을 암시한다. 

맹자와 유가적 자율성

『맹자』에서는 소체(小體)와 대체(大體)를 구분하는 대목이 유명한데, 소체는 눈과 귀처럼 쾌락원칙을 따르는 몸, 혹은 지각을 통해 사물과 상호작용하는 몸이다. 반면 대체는 생각하는 기관으로, 그것이 추구하는 것은 쾌락원칙을 넘어선다. 맹자는 이 점을 “작은 것들이 능히 뺏을 수 없다(則其小者弗能奪也)”라고 했다. 현실원칙을 따르는 가치로는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 박탈하거나 대체할 수 없는가? ‘하늘이 자기에게 준 것’(此天之所與我者)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맹자의 대체가 경험적 자아와 구별되는 선험적 자아임을 알 수 있다. 맹자 이후 유가적 주체는 선험적 자기로 발전해간다. 경험적 자기는 현실원칙(쾌락원칙)을 따른다. 그러나 선험적 자기는 죽음충동과 관계하면서 생명의 논리를 뒤집는다. 대타 관계는 자기 관계에 따라 좌우된다. 자기 관계가 바르면 대상이 아무리 위협적이라 해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자기 관계가 바르지 않으면 대상이 아무리 하찮아도 조금도 나아갈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이런 자기 관계의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맹자에게서 하늘이다. 천명과의 원격 관계가 자기 관계의 옳고 그름을 결정하고, 자기 관계의 옳고 그름이 대타 관계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결정한다. 대상 관계 혹은 대타 관계보다는 자기 관계를, 자기 관계보다는 원격 관계를 상위에 놓는다.

그렇다면 그 맨 꼭대기에 있는 원격 관계를 통해 자기가 관계하는 것, 그 먼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신, 이념, 하늘 같은 것이고, 이런 먼 것은 죽음충동의 원천이다. 윤리적 판단이나 행동에 죽음충동이 흐르는 이유는 그것이 포함하는 원격 관계 때문이다. 그리고 그 원격 관계 속에서 바르게 선 자기 관계, 그 경이직내(敬以直內)의 자기 관계로 말미암아 자연의 인과관계는 정신의 인과관계로 대체된다. 현실원칙이 당위의 원칙에 자리를 내준다. 자연의 법칙을 대신하여 자유의 법칙이 위력을 드러낸다. 당위의 원칙은 생명과 죽음을 구별하지 않으며, 따라서 죽음의 공포를 의식하지 않는 행동을 통해 효력을 발휘한다. 죽음충동은 그런 경이직내(敬以直內)로 정식화할 수 있는 자기 정립의 대가이자 보상이다.

여기서 칸트의 자율성은 ‘도덕법칙에 대한 존경’을 ‘동기(Triebfeder)’로 한다는 점을 기억하자. 그런데 이 존경은 “우리가 완전히 선험적으로 인식하는 유일한 감정”이고, 원격 관계가 유도한 자기 자극 속에서 분비되는 대자적 감정이다. 존경이라는 그 대자적 감정 속에는 죽음충동이 들끓는다. 그리고 그 죽음충동을 통해 자기애, 허영, 오만 등 쾌락원칙에 따르는 모든 본능적 경향성이 파괴되고, 자기는 원격 관계에 놓인 도덕법칙과 하나가 되기 위해 수직화된다. 『주역』의 경이직내(敬以直內)는 그런 존경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자율성의 오래된 정식이라 할 수 있다.

 

유가적 공화주의와 획일주의 위험

그런 경이직내를 통해 자기를 일으켜 세우는 유가적 주체는 사적인 삶에서 멀어지고 마침내 특수한 이해관계를 떨쳐낸다. 이것이 수신(修身)의 문자적 의미(‘몸을 깨끗이 하다’)다. 이 점에서 유가적 주체는 공사를 엄격히 구분하는 공화적 주체에 가깝고, 그런 만큼 둘은 유사한 자유 개념을 추구한다. 법의 지배(예치)와 권력의 내적 균형(군권과 신권의 균형)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도 유교주의와 공화주의는 상통한다.

물론 차이도 간과할 수 없다. 유교 사회에서는 폭군이 등장하여 전제 정치를 휘두르기 쉬운데, 그것을 방지하거나 중단할 제도적 장치가 미약했던 것 같다. 그러나 몽테스키외도 유럽의 공화정(귀족정과 민주정)과 군주정도 언제든지 전제정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보았고, 그런 위험을 막기 위해 권력 분립의 제도화를 근대 국가의 핵심으로 간주했다. 그러므로 차이는 다른 데에서, 특히 공공선과 관련된 문제에서 찾아야 한다.

서양의 공화정에서 공공선은 불변의 가치로 주어진 것일 수도 있고, 끊임없는 토론의 대상일 수도 있다. 고대의 공화주의와 근대의 공화주의 사이의 차이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진화하면서 공공선은 토론 불가능한 절대적 지위를 상실하고 부단한 재검토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근대 사회에서 정치적 자유와 관용은 공공선에 대한 부단한 이의 제기의 가능성과 맞물린 개념이다.

계몽주의는 사회 질서의 기본 원칙이나 방향(이념)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을 요구한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가 공공선의 그늘에 가리지 않기를 호소한다. 민주주의는 어떠한 체제나 이념도 평등의 가치 앞에서는 무효임을 주장한다. 그러나 유교 전통에서는 이런 점을 찾아보기 힘들다. 유교주의가 공화주의적 형태를 띠어가는 순간에도 사회의 기본 가치와 공공선, 사회 체제와 신분 질서에 대한 이의 제기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유교주의에서는 역성(易姓) 혁명은 옹호할 수 있어도 체제 혁명은 용인할 수 없다. 대동(大同)의 이념은 있어도 사회적 질서의 원점으로 향한 민주 혁명은 있을 수 없다. 권력 분립과 경쟁은 있어도 권력을 통해 실현할 근본 가치나 사회 체제를 놓고 비판하거나 토론할 수는 없다. 이런 점이 유교주의가 근대적 자유 개념이나 자기 개념과 조화를 이룰 수 없는 근본 한계다. 랑시에르의 정치철학에 기대어 말하자면, 유교주의에는 진정한 의미의 정치가 없다. 있는 것은 오직 치안(police)뿐이다.

혁명적인 사건에서 무한히 멀어지고 질서 유지를 위한 행정에 무한히 가까워지는 것이 유교적 정치다. 이런 사정은 청나라 말부터 서양의 자유 개념을 들여오고 근대적 공화정을 받아들일 때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서세동점의 위세 앞에 독립된 국가의 수립과 민족 보존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모든 정치적 행위의 마지막 목표로 자리 잡음에 따라 개인의 권리와 자유는 끊임없이 유보되었다.

이는 해방 후의 대한민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빈곤 탈출과 국가 안보라는 공공선에 짓눌려 계몽주의 이래 서양인이 가졌던 자유의 관념은 이 땅에서 제대로 뿌리내리기 힘들었다. 자유주의는 냉전 갈등의 최전선인 한반도에서 반공주의와 동의어가 되었고, 민족주의가 대두함에 따라 서구주의나 외세 의존주의 일반과 혼동되기에 이르렀다. 본래의 의미를 잃고 엉뚱한 의미를 띠면서 건강한 민주주의의 최대 걸림돌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이제까지 유가 전통의 근본 한계는 획일주의의 위험성과 그 배후에 도사린 가부장적 권위주의에 있다. 다양한 가치 추구의 공존을 전제하는 다원주의를 쉽게 수용하지 못한다는 점이 그 근본 한계다. 19세기 이후 서양의 계몽주의를 수용한 이후에도 국가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이라는 대의에 압도되어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인 다원주의를 수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다면 최근 중국에서 등장한 이른바 ‘유가적 능력주의’는 유가 전통의 고질적인 한계인 획일주의, 또 그것을 조장하는 가부장적 권위주의의 한계를 타개할 수 있는가? 그러나 어떠한 형태이든 모든 능력주의는 정치를 치안의 문제로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닌가?


☞ 강연 바로보기: [열린연단]_ 동서의 ‘자유’ 개념 비교 (김상환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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