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의 문화 코드 깊이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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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의 문화 코드 깊이 읽기
  • 서유경 논설위원/경희사이버대·정치철학
  • 승인 2020.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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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직설] 서유경 칼럼

요즘 ‘기세’는 단연 ‘기생충’이다. 물론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이라는 명예로운 관문을 통과한 이후 일필휘지의 기세로 단숨에 경이로운 수상 이력을 써내려갔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 각본상, 감독상, 국제장편영화상 등 영양가 만점의 4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첫 번째 한국영화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 화려함의 이면에는 과연 어떠한 것들이 놓여 있을까,

봉준호 감독은 한 오스카 무대에서 무려 네 번이나 수상소감을 말하는 엄청난 행운을 누렸는데, 그 중 하나에서 “개인적인 것이 창의적인 것”이라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언명을 인용했다. 사실 이 말은 거의 진리나 다름없다. 한 개인의 사적인 경험 그 어느 것도 그를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는 결코 1인칭 관점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개인의 경험을 녹여낸 어떤 이야기는 다른 이들에게, 비록 수준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항상 이질적인 것으로 수용되며 어느 누구도 쉽사리 흉내 낼 수 없는 고유성을 가지게 된다.

사실 영화 ‘기생충’은 민혁, 기우, 기정, 기택, 충숙, 박사장, 연교, 다혜, 다송, 문광, 근세라는 개인들의 이야기다. 한국인들의 이야기인 그것은 외국 관객들에게 매우 낯선 어떤 것, 즉 문화적 충격을 가하는 도발적이고 창의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여기서 ‘오스카는 백인의 전유물#Oscasowhite’이라는 온라인 ‘반(反)차별’ 캠페인이 기가 막히게 시의적절 했고 홍보 전략 측면에서도 매우 주효했다는 사실은 논외로 두기로 하자.) 그러나 비록 기생충이 한국 문화적 특수성 때문에 외국 관객 대다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갔다손 쳐도 특수성이 특수성으로 남으면 지방적인 것이 되고 왜소해진다.

다행히도 세계인들은 기생충의 문화적 특수성을 인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마르크스 경제결정론이라는 일종의 보편적 잣대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그것의 찬란한 수상 이력에 경의를 표했다. 요컨대 이 작품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빈부격차를 고발하는 ‘블랙코미디’이며, 햇볕이 충만한 박사장네 대저택, 기택네 반지하 살림집, 단 한줄기 빛살도 스며들지 않는 근세의 방공호용 지하실 주거 공간 설정은, 이를테면, 자본주의 사회 내 계급질서를 경제결정론적으로 시각화한 탁월한 극적 장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공간 구획 방식은 비단 한국뿐 아니라 모든 자본주의 사회에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하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그럴 듯한 주장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살다 온 박사장 부인 연교가 개발한 한우 채끝살을 얹은 ‘짜파구리’ 레시피와 과도한 ‘영어’ 사랑, 기택네 식구들이 공유하는 “지하철 타는 사람들의 특이한 냄새” 비슷한 체취와 매번 규칙 위반을 종용하고 합리화하는 ‘눈 먼’ 가족애, 세상에서 잊힌 존재로서 박사장네 ‘지하 방공호’를 4년씩이나 무단점거하고 속절없이 세상 속으로 ‘외짝’ 사랑의 징표인 모르스 부호를 타전하는 근세의 ‘기생’ 인생을 어찌 다 경제결정론의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모든 것들은 현재 한국인들의 문화 코드로만 독해가 가능하다. “부자인데 착하기도 한” 박사장네 사람들은 ‘착한 척 하지 않으면’ 기택네처럼 가난하면서 착하지 않은 ‘초법적’ 평등주의자들의 공격 목표가 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사실 박사장 아들을 혼절시킨 ‘귀신’의 정체는 바로 입주 가정부 문광의 남편이자 무단 기숙자인 근세였다.) 기택네는 박사장네 돈과 집과 술에 대한 평등을 추구한다.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난 게 아닌데 그 목적을 위해 약간의 속임수나 꼼수 또는 무리수를 둔들 무슨 대수겠는가. 그래서 “우리 식구가 여기 다 있는데 이게 우리 집이 아니고 뭐지?”라는 기택의 말은 결코 ‘자조’가 아니라 ‘의지’의 표현으로 들린다.

이렇듯 기생충은 근래 초법적 평등주의 물결의 세찬 도전에 직면한 한국사회 내 계급 ‘선(線)’을 둘러싼 인물들의 낯선 이야기로서 세계인들을 타문화에 대한 성찰로 인도했다. 한국영화사상 최초로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른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서유경 논설위원/경희사이버대·정치철학

경희사이버대학교 후마니타스학과 학과장 겸 문화창조대학원 미래시민리더십거버넌스 전공 주임교수로 현재 한국NGO학회 회장이다. 주 연구주제는 한나 아렌트 정치정치미학, 시민정치철학, 한국민주주의의 패러다임 전환 등이다. 저서로 The Political Aesthetics of Hannah Arendt와 『제3의 아렌트주의』 (근간), 역서로 『아렌트와 하이데거』, 『과거와 미래 사이』,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 『아렌트 읽기』, 『시민사회』, 『이사야 벌린의 지적 유산』, 『책임과 판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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