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변(萬變)의 황하, 불변(不變)의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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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변(萬變)의 황하, 불변(不變)의 중국”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11.08 02: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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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변과 만변 거젠슝, 중국사를 말하다 | 거젠슝 지음 | 김영문 옮김 | 도서출판 역사산책 | 452쪽

 

고대 중국 역사는 사람의 몸처럼 정밀하고 방대한 협력 시스템과 비슷하다. 토지는 뼈, 사람은 피와 살, 조정과 정치는 신경과 중추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유장한 중국 역사는 이런 요소가 서로 영향을 끼치고 서로 맞물리는 과정에서 이어지고 발전하며 생생불식(生生不息)하는 가운데 오늘날의 중국을 형성해왔다. 모든 역사서는 기실 저자가 의도적으로 선택하고 기록한 결과물이다. 이러한 원리를 인지하고서 사료의 표면 아래 드러나지 않은 진상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현재의 가치관을 적용해 옛 역사를 연구하고 복원하고 재구성해야 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역사 공부다. 옮긴이의 말을 들어보자.

중국의 정사(正史) ‘이십오사(二十五史)’는 전체 분량이 모두 2,730만 자를 넘는다. 따라서 중국 역사의 특징을 명확하게 인식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거젠슝(葛劍雄)의 이 책은 기존의 역사 서술 방법과는 달리 땅과 인간과 정신의 어울림이야말로 역사의 주요 얼개라는 독특한 관점에 근거해 이와 연관된 키워드를 중심으로 새로운 역사 서술 방법을 선보이고 있다. 우선 저자는 땅을 다루면서 지금부터 3천 년 전에 출현한 ‘중국(中國)’이라는 어휘의 의미가 확대되어온 과정을 서술한 뒤 각 왕조의 강역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밝히고 이에 수반해 중국의 역대 행정 구역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변모해왔는지 드러냈다. 또한 중국 각 왕조 도성과 식량 수급 문제의 밀접한 연관성을 밝혔으며, 이어서 만리장성, 운하, 치도, 역참에 얽힌 난관, 사회적 장단점, 부패 상황, 유관 일화 등을 흥미롭게 서술했다.

아울러 저자는 중국 땅에서 역사를 일궈온 중국인의 모습에 관심을 기울이며 이민, 인구, 인물, 외교 등을 주제로 그들의 활동 양상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중국인의 이주 과정을 서술하면서 현재 쓰촨, 윈난, 구이저우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자신들의 선조가 후베이 마청 샤오간향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점, 또 지금의 화베이 일대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선조가 산시(山西) 훙동 다화이수 아래에서 왔다고 하는 점 등 중국 고대인의 이주와 관련된 서사를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이는 정사의 이면에 묻혀 있던 중국인의 이주사를 생생하게 복원한 내용이라고 할 만하다. 또 당나라 때는 과부의 개가를 자유롭게 허용하다가 송나라 이후로 과부의 수절을 강조한 것은 유가의 이념보다 인구의 포화 상태 때문이라고 주장한 부분도 매우 흥미롭다. 그리고 중국 정사에서 “수렵을 나갔다[狩]”로 기록한 역사의 이면에는 기실 천자가 외부 세력에 의해 치욕을 당한 역사의 실상이 숨어 있음을 밝힌 부분, 또 명나라 청백리 해서(海瑞)를 통해 관리 사회의 부패상을 드러낸 단락, 비정규 관리인 막료 왕이(王二)를 통해 중국 명·청 시대의 기형적인 관리 제도를 폭로한 대목도 매우 신선하다.

이어서 저자는 고대 중국의 정신적 중추라는 제목 아래 ‘천하’와 ‘제왕’이란 주제를 잡고 중국의 통일을 추구하고 유지해온 관념과 제도의 특징을 논술했다. 그중에서도 장평대전(長平大戰) 이후 수십만 명을 생매장해서 죽인 대학살의 주요 원인이 군량미 부족 때문이었다고 주장한 점, 초한 쟁패시기에 유방이 함양을 점령하고 포고 했다는 ‘약법삼장(約法三章)’이 기실 허구적인 선언에 불과했음을 논단한 점 등도 일반 독자의 역사 상식을 깨뜨리기에 충분한 견해라 할 만하다. 그리고 황제의 사생활을 다루는 마지막 장에서는 태자, 황후, 태상황, 종실, 능묘를 키워드로 화려한 황실 이면에 묻힌 인간 군상의 비극적 실상을 핍진하게 드러내고 있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중국 관방에서 정사로 인정하는 역사서의 가식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 대목이다. 저자는 역대 사관(史官)들이 공자의 ‘춘추필법(春秋筆法)’을 준거로 정사를 편찬할 때 객관적 역사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기보다 집권 세력의 가치관을 선양하기 위해 일차 사료를 의도적으로 선택하고 분식했음을 논술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이런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중국 역대 최고의 성군으로 평가받는 당 태종의 사례를 인용해 지금의 『구당서』와 『신당서』에 실린 ‘현무문의 변’의 진실이 당 태종의 정치적 욕망과 의도에 의해 왜곡되고 분식되었음을 설득력 있게 증명하고 있다. 그는 맺음말에서도 이렇게 주장한다.

어떤 역사서든 후인들이 이미 발생한 사건을 의식적이고 선택적으로 기록한 결과물이다. 이러한 원리를 알면 사료 가운데서 표면을 뚫고 내면의 진상을 파악할 수 있으며 역사에 대한 오늘날의 가치관으로 옛 역사를 해석하고 인식할 수 있다. 저자 거젠슝은 이러한 입장에 서 있으므로 중국 역사의 견고한 껍질을 뚫고 그 내면에 숨어 있는 진실을 밝혀내는 데 뛰어난 솜씨를 발휘하고 있다. 역사를 바라보는 저자의 이러한 관점은 그의 이 저서를 읽는 우리의 입장에서도 똑같이 견지해야 할 관점이다. 왜냐하면 저자가 다루는 중국 역사는 중국 사관(史官)의 관점에 의해 의도적으로 선택된 기록일 뿐만 아니라 저자 거젠슝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렇게 형성된 중국 역사관에 의해 영향 받은 중국 역사학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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