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춤을 만난 지, 30년 만에 알게 된 진실…‘우리춤의 진화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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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춤을 만난 지, 30년 만에 알게 된 진실…‘우리춤의 진화는 계속된다.’
  • 김윤지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무용학
  • 승인 2022.07.31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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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의 말_ 『춤, 움직임과 기술의 공진화』 (김윤지 지음, 앨피, 252쪽, 2022.02)


                        

나는 헌책방 골목으로 유명한 부산의 보수동 근처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아빠와 함께 그 골목을 누비며 책 속에서 세상을 만났고, 세상 속에서 책을 접했다. 내 이름 석 자가 적힌 책을 남기고 싶다는 나의 소망은 아마 그때부터 지금까지 어린, 서린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 마음을 이번 책으로 전하게 되었고, 못다한 나의 남은 속마음을 이 지면을 통해서 펼쳐 보려한다.

춤은 중학교 1학년 때, 학교 무용선생님의 권유로 시작하게 되었다. 발레의 동작 중 ‘포인’이 잘 되는 나의 발모양을 발견하신 선생님은 나의 엄마에게 무용의 길을 권장하셨고, 실천력이 워낙 빠르신 나의 엄마는 나를 무용학원으로 곧장 보냈다. 문제는 발레 학원으로 가야했는데 나는 그만 한국무용학원으로 간 것이다. 단지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자의든 타의든 나와 한국춤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나의 삶을 바꾼 그 만남은 지금까지 나와 함께 하고 있다. 그리고 30여 년이 지난 지금, 이제야 비로소 나는 한국춤을 알게 되었다. 

우선 ‘춤’은 순수한 우리말이다. 우리글인 한글이 어느 정도 정착되고 보급되기 전부터 ‘춤’이라는 단어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을 것이다. 춤을 문자로 기록할 때는 한자 ‘무舞’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무’와 관련된 기록은 세월이 흐르면서 좀 더 상세해지고 독립적으로 전문화되는 진보의 과정을 보여준다. 특히 결절과 격변의 시대인 근대에 접어들어 전통적으로 내려온 ‘무’에 서구적이면서 하체 움직임을 형상화한 용어인 뛸 ‘용踊’자가 합쳐지면서 무용사회는 엄청난 충격과 도전을 맞이하게 된다. 

사실 충격과 도전 없이 큰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 시대 ‘무’와 ‘용’의 만남 또한 예외가 아니다. 전통적으로 내려온 한국춤과 새롭게 진입한 근대적 양식의 춤이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독특한 혼동적 근대성을 지니면서 한국 무용사회는 혁신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한국적인 모든 춤을 ‘한국의 춤’, ‘우리의 춤’, ‘우리춤’ 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즉 한국춤은 한국이라는 지역적 공간 안에서 오랜 기간 전승되어온 춤을 일컫는 굉장히 넓고, 깊은 범주와 의미를 담고 있는 용어인 것이다. 그리고 춤은 살기 위한 본능적인 움직임으로부터 시작하여 역사적 환경 속에서 끝없는 수용과 변용의 진화적 이동을 거듭하면서 질적 성장과 양적 팽창을 거듭해 왔다. 다만 춤이 지닌 특수성으로 인해 그 과정을 세세히 밝힐 수 없을 뿐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인간 진화의 상징이자 그 진화의 사실적 징표가 될 수 있는 ‘도구를 들고 추는 춤’의 이동 과정을 추적했다. 

몸의 움직임을 좀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고자 사용한 도구들, 그 도구들을 적용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예술화한 재주와 방법 및 능력을 모두 통틀어 ‘기술’로 바라보고, 몸의 움직임과 기술이 함께 걸어온 한국춤의 역정을 통해서 한국춤이 본성과 문화, 예술과 기술, 개인과 사회 간의 지속적인 조화 속에서 공진화한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안하고 싶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 한국의 춤은 하루아침에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단편적인 춤이 아니라 오랜 시간, 많은 예인, 여러 사회를 이동하면서 작품화 되었고 그 수가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많다는 점을 이 책에서 시사했다. 좀 더 필자로서의 목소리를 더 내어본다면 우리의 한국춤은 앞으로도 계속 진화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코로나까지 겪은 지금, 옛것에 대한 원형 보존 관념에 갇혀 옛 모습 그대로 극장에서 집단적으로 공연되는 한국춤의 표현 의식과 방식도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객들은 더 이상 시간과 돈을 지출하면서 한정된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연을 감상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안전한 상태에서, 좀 더 여유로운 시간에 미래 지향적이고 감각적으로 춤의 향유를 원할 수 있다. 이러한 전환의 시점에서 나는 한국춤의 사유를 통해서 변화의 타당성을 이 책을 통해 확보하고, 한국춤이 가야할 방향을 안내하고 싶었다. 한국춤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열린 사고로 동시대의 요구에 끝없이 응답하고자 할 때, 한국춤은 죽지 않고 우리 곁에서 오랫동안 공진화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춤의 특성으로 인해 이미지의 균질성과 통일성에 한계가 있다. 이미지 출처: e뮤지엄, 국립민속박물관]


김윤지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무용학

한양대학교 무용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논문으로 〈인류 무형문화 유산 등재를 위한 국가무형문화재 가치의 재인식과 쟁점 모색〉, 〈한국 무형문화재 관련 사전 편찬의 현황 및 방향〉, 〈코로나 시대와 한국춤의 미래〉 외 다수가 있다. 문헌 속에 흩어져 있던 춤의 멋과 가치를 글로 표현하고 있으며, 춤을 개인의 창작적 산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사회적 맥락 속에서 살펴보고 동시대와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2020년 한국문화융합학회 학술상 및 2021년 교육부 학술·연구지원사업 우수성과 50선 선정 교육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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