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란 무엇이며 어디에서 오는가’…사회존재론으로 재해석하는 하이데거 존재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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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란 무엇이며 어디에서 오는가’…사회존재론으로 재해석하는 하이데거 존재사유
  • 하피터 경희대·현상학
  • 승인 2022.04.1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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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게 듣는다]

■ 저자에게 듣는다_ 『하이데거의 사회존재론』 (하피터 지음, 그린비, 704쪽, 2022. 02)

 

1927년 『존재와 시간』이 출간되자마자 이 저서는 사람들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으로 인해 무명으로 있었던 하이데거는 한순간에 위대한 철학자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이 저서가 성공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하이데거가 전통 존재론적 사유와는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독창적인 존재사유를 개진했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존재사유를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기초존재론’이라 부른다. 하이데거의 독창적인 존재 사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통 존재론과 구분되는 기초존재론의 특징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기초존재론의 새로운 관점이 고립된 자아에 대립되는 ‘세계-내-존재’로서의 현존재 개념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존재의 개념에서 ‘세계-내-존재’만을 강조해서는 기초존재론의 독창성이 드러나지 않는데, 그 이유는 후설 또한 선험적 의식은 세계 속에 존재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엄격하게 말해서 기초존재론의 고유한 관점은 ‘의식의 세계-내-있음(ist)’과 구분되는 ‘현존재의 세계-내-실존(Existenz)’에서 찾아져야 한다. 

이러한 하이데거의 사유를 정복하고자 산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이미 산 정상으로 인도하는 많은 길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길은 ‘실존주의의 길’이며, 그 옆에 ‘해체주의의 길,’ ‘현상학의 길,’ ‘존재의 길,’ ‘해석학적 길’, ‘불교철학의 길’ 들이 차례로 잘 형성되어 사람들을 정상으로 인도한다. 이처럼 이미 하이데거 존재사유의 정상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많은 길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길들 옆에 ‘사회존재론’이라 불리는 또 하나의 새로운 길을 소개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처럼 많은 길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초존재론을 구성하는 여러 개념들, 예를 들어 기초존재론의 가장 핵심 개념인 현존재와 실존의 의미가 여전히 불분명하게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을 무차별적으로 자연적 존재자의 관점에 비추어 탐구하는 전통 존재론과 기초존재론의 차이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존재론’이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 한 가장 큰 이유는 이 길에서만 기초존재론에서 제시되는 여러 개념들을 일관성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 존재론은 이성에 입각해 존재자(onta)의 근거를 탐구하는 학문을 일컫는다. 그런데 그리스 철학자들이 관심을 갖고 탐구한 존재자는 일차적으로 자연세계에서 주어지기 때문에 전통 존재론의 존재자는 자연 세계에 있는 사물을 지칭한다. 따라서 자연세계가 우선적으로 주어지며, 이 세계에서 경험되는 존재자를 탐구하는 전통 존재론은 ‘자연존재론’으로 규정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자연존재론’을 특징짓는 전통 존재론에서는 사회적 세계에서 경험되는 사물 또한 자연적 사물로 간주한다. 왜냐하면 비록 자연 세계와 사회적 세계는 다르지만 이 세계들은 자연적 공간을 전제로 하는 한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경험되기 때문이다.   

하이데거 또한 존재자의 근거를 탐구하는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기초존재론에서 하이데거는 전통 존재론과 구별되는 새로운 존재론적 사유를 정초하고자 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역사·사회적 존재자의 근거를 밝히는 연구이기 때문이다. 전통 존재론과는 달리 그는 현존재의 주위세계에서 최초로 만나는 사물을 자연적 사물이 아닌 현존재에 의해 만들어진 도구, 즉 사회적 존재자로 파악한다. 도구는 현존재의 행위와 노동을 통해 기능과 문화적 가치가 부여된 사회적 사물이다. 또한 그는 ‘손앞에 있음’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도구’는 전통 존재론에서 논의되는 ‘눈앞에 있음’으로 규정되는 자연적 사물의 존재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하이데거의 기초존재론을 사회존재론으로 이해할 때 우리는 ‘손앞에 있음’과 ‘눈앞의 있음’의 차이점을 비로소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기초존재론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현존재의 ‘세계-내-존재’인데, 하이데거는 현존재가 거주하는 세계는 자연세계가 아니라고 말한다. 하이데거의 이러한 주장에 입각해 볼 때 비록 『존재와 시간』에서 ‘사회적 세계-내-존재’라는 표현이 전혀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현존재의 세계는 사회세계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현존재는 오로지 자연세계 또는 사회세계에서만 거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존재가 사회적 세계 속에 거주한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있음’과 구분되는 ‘실존’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사회존재론’이 부각된다면, ‘있음(ist)’은 자연세계 속에서의 존재 방식으로 그리고 ‘실존(Existenz)’은 사회세계 속에서의 존재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현존재는 태어나면서 이미 사회공동체에 던져진 존재자이다. 이렇게 볼 때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의 고유한 특징은 전통 철학자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이성에만 있지 않고 인간이 역사·사회적 존재자라는 사실에서도 찾아질 수 있다. 

하이데거는 역사·사회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을 ‘동물적 인간(homo animalis)’ 또는 ‘이성적 인간(homo rationalis)’과 구분하여 ‘인간적 인간(homo humanus)’이라고 지칭한다. 이 용어를 직역하자면 라틴어 humanus는 흙을 가리키기 때문에 homo humanus는 ‘대지적 인간’으로 번역될 수 있다. 그런데 humanus의 어원인 humus는 한편에서 자연적 흙을 일컫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경작된 토지(Ackerland)’를 의미한다. 후자의 의미에서 볼 때 대지적 인간은 동물적 인간과 달리 욕구의 억제에서 유래되는 노동과 행위를 통해 만들어진 경작된 토지에 거주하는 인간을 뜻한다. 하이데거는 ‘나는 있다’가 대지를 경작하는 노동과 행위를 일컫는 ‘밭을 갈다’를 의미하며, 나와 너가 이 땅에 존재하는 방식이 거주함이라고 주장한다. 이 거주함이 바로 인간의 실존 방식이다. 인간을 이처럼 ‘경작된 토지에 거주하는 인간’으로 이해했을 때 우리는 기초존재론에서 인간을 지칭하는 ‘현-존재(Da-sein)’의 ‘현’에 대해서도 새롭게 파악할 수 있다. 전통 철학에서 강조했던 ‘의식’과 대비되는 현-존재의 ‘현’이 의미하는 바는 경작된 대지, 즉 사회적 세계의 지평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현존재에 기초한 하이데거의 존재사유가 궁극적으로 역사·사회 세계의 근거를 밝히는 사회존재론을 정초하는 것에 방향 잡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을 새로운 방식으로 규정하는 데 있어 하이데거가 자연적 존재자보다는 사회적 존재자의 의미를 해명하는 것에 중점을 둔 이유는 그가 20세기 초에 독일에서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자연과학적 방법론에 환원되지 않은 고유한 정신과학의 인식 조건을 확립하는 데 큰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정신과학적 인식은 사회적 세계에서 유래되는데, 이 사회적 세계에서 인간은 결코 홀로 있지 않고 타자와 더불어 존재한다. 이처럼 타자와 함께 존재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세계의 존재론적 토대를 탐구하는 학문이 바로 사회존재론이다.

마르크스의 철학을 사회존재론으로 해석하는 시도들도 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사회존재론과 하이데거의 사회존재론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엄격하게 말해 사회의 구조와 이를 구성하는 개인과 제도를 다루는 마르크스 철학은 사회존재론이 아니라 사회철학 이론에 더 부합한다. 이와 달리 용어 ‘기초존재론’에서 볼 수 있듯이 하이데거가 의도하는 바는 단순히 경험적 관점에 비추어 사회적 개인과 제도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근원적인 토대 또는 가능근거를 밝히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사회존재론’은 이론적 사유보다는 자유에 근거해 있는 실천적 행위에 입각해 자연 세계에 있는 존재자의 존재방식과는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사회적 세계에서 만나는 존재자와 현존재의 실존의 가능 조건을 탐구하는 학문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기초존재론에 관한 탐구에서 ‘사회존재론’이 부각되었을 때, 우리는 하이데거의 철학이 이론적인 존재사유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현실적 삶에 뿌리를 둔 사회철학적 사유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이데거는 20세기 초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대립적인 사회이론으로 등장했던 사회주의 사상과 자유주의 사상 모두를 거부한다. 왜냐하면 그는 그와 같은 혼란스러운 사회적 현실의 기원은 사회주의자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대립 또는 자유주의자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인간의 자유가 아직 성숙한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능동적 허무주의  사상’ -- ‘계산적 사유’에 의거해 모든 것을 근대 주체가 지배할 수 있다는 사상 -- 에 있다고 보며, 더 나아가 근대 기계 기술의 사회주의와 자유주의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능동적 허무주의를 가속화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하이데거 존재 사유가 사회존재론으로 이해되었을 때 우리는 그의 존재 사유가 단순히 과거로부터 전수된 존재 물음을 이론적으로 해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근대 자연과학에서부터 파생되어 현대의 우리 삶에까지 여전히 영향을 끼치고 있는 ‘능동적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것에 방향 잡혀 있음을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하이데거 사회존재론의 의의는 이론적 문제만을 해결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우리의 철학적 사유를 역사·사회적인 현실문제에 대한 사유로 방향 전환하는 데 있으며, 사회변혁론에 대한 논의에서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대립으로 벗어나 있는 제3의 길을 열어 밝히는 데 있다.  


하피터 경희대·현상학

경희대학교 체육대학원에서 현상학과 체육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미국 롱비치주립대학교 철학과 졸업 후, 독일 현상학을 공부하기 위해 후설 아카이브가 있는 벨기에 루벤가톨릭대학교 철학과에서 하이데거에 관한 연구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와 일본 동경대학교 객원연구원을 거쳐, 한국현상학회 편집이사 및 한국 하이데거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하이데거의 존재사유를 후설 현상학과의 연관성뿐만 아니라 근대 철학적 문맥 속에서 폭넓게 연구해 왔으며, 최근에는 근대 철학에서 사회존재론이 성립되는 과정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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