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침공’ … 우리가 먼저 개혁에 나서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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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침공’ … 우리가 먼저 개혁에 나서야 할 때
  • 최영준 연세대학교·행정학
  • 승인 2022.02.27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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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학교 교양수업에서 학생들과 청년들의 불안감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다. 미래가 매우 불안한 사람은 1점, 매우 안정적으로 미래를 보는 학생은 10점으로 표시해 달라고 했다. 흥미롭게도 학생들의 점수는 1점부터 10점까지 다양했다. 건물주의 아들이라고 말한 친구가 10점이었고, 마지막 학기에 취업의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는 친구가 1점이라고 응답하였다. 약 100여 명의 학생들 중 발견된 주목되는 패턴은 이공계와 인문계의 차이였다. 대체로 이공계가 5점을 넘은 반면, 인문사회계 학생들은 그보다 낮은 점수로 손을 들었다. ‘문송’을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올해 문·이과 통합수능이 치러지면서 ‘문과 침공’이라는 표현을 언론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똑같이 만점을 받아도 이과계열 과목을 선택한 학생이 문과계열 학생보다 더 표준점수가 높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인문사회 정시 합격자 44%가 이과생이라는 서울대부터 대부분 학교에서 ‘문과 침공’이 이루어지는 첫해가 되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대학 ‘간판’이 중요한 나라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이상한 현상이 아닐까. 이제 인문사회계열 교수들은 이과에 가고 싶었으나 ‘간판’ 때문에 학과를 선택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듣자 하니 이제 고등학교에서는 이과를 가는 것이 이과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기 때문에 이과를 간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문과 침공’을 보면서 아마도 이런 선택을 한 학생을 비난하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흐름에 무던히 눈을 감고 있었던 우리 대학과 구성원들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대학과 그 구성원인 교수들은 기본적으로 정부에 의한 하향식(top-down) 개혁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학생들의 소리에 얼마나 귀를 기울였을까? 자신의 학과 학생 중 몇 명이나 실제 그 전공으로 미래를 보고 있는지, 그 현실이 가지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우리는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했을까? 대학에서 정원조정이 힘들다고 하지만, 얼마나 학생의 관점에서 교수들은 이 이슈에 접근했을까? 대학이 취업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학부생들에게 취업의 중요성은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그렇다고 인문사회계가 대학에서 2등 시민의 위치에 있어야 할까? 물론 그렇지 않다. 한국의 현재 위기의 상당 부분은 더 좋은 정치와 행정, 더 좋은 사회, 그리고 더 좋은 인문학이 자리 잡지 못한 원인이 크며, 이는 기술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좋은 인재들이 인문사회계에 들어와서 우리 사회 곳곳에서 기여하고 활약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말하면, 아쉽게도 우리 인문사회계가 그러한 역할을 지금까지 잘 해오지 못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대학 교육을 통해서 인정받은 인재들이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구조를 만들지 못하고, 결국 ‘시험’ 혹은 ‘고시’라는 획일화된 방식이 일반적이게 된 취업구조는 하나의 예이다. 그뿐 아니라 사회과학의 경우 ‘Ceteris Paribus(다른 모든 것들이 동일하다면)’라는 자연과학의 방법론적 원칙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사회와 역사의 복잡성을 놓친 것 역시 스스로 ‘약자’의 위치로 가게 된 원인이 생각된다. 20~30년 전에 비해서 훨씬 더 많은 논문이 출판되고 있지만, 이러한 연구들이 얼마나 한국 사회 문제해결에 기여해 왔을까? 저자가 연구하는 사회정책 역시 놀라운 국내외 연구성과물의 급증에도 불구하고, 저출산고령화, 비정규직과 불안정 노동 등 풀어내지 못한 숙제가 산적하다. 

물론, 일련의 사태를 대학과 구성원의 책임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아직도 사회, 문화, 윤리, 정치, 경제 등을 생각하고 글 쓰며 토론하는 방식으로 배우지 못하고, ‘암기’ 과목으로 접근하는 중고등 교육과정은 암울하다. 그러니 외울 것이 더 적은 인문사회 과목들 점수가 만점이어도 과학과목들에 비해 낮은 점수를 받는 것이 ‘공정’하다고 학생들은 생각한다고 한다. 만일 ‘사고하고 숙의하는’ 과목이었다면 절대 쉬운 과목이 아니었을 것이다.

변화로 가기 위한 길은 당연히 험난하다. 하지만, 능동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변화를 수동적으로 당하게 되며, 그것이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어떻게 개혁을 해야 할까? 대학과 학생 그리고 정부가 다 함께 깊은 숙의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 학생들이 보는 현실을 말하게 해야 하고, 교수들이 생각하는 대학상(大學像)을 학생들과 우리 사회에 설득해야 한다. 그 결과가 현실을 고려한 인문사회계의 정원조정이라면 피해서는 안 된다. 다만, 이공계 등의 학생들 역시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적 지식이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커리큘럼의 대대적 개편이 필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과학기술이 대전환을 추동하는 요인이지만, 이를 둘러싼 사회와 정부의 역할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기술자 이상이 될 수는 없다. 인문계와 이공계의 커리큘럼을 씨줄과 날줄로 새롭게 엮을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당연히 과학을 선택해 공부한 학생들이 ‘간판’ 때문에 인문사회계를 선택하는 것은 없어져야 할 ‘구태’이다.

인문사회계는 적은 수의 교수로 양질의 수업을 제공하기 위해서 대학 간 협력 공동강의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 학교 간 협력이 원활히 이루어질 경우 수업의 질과 다양성을 모두 잡을 수 있다. 특히 온라인 수업의 활성화는 이러한 가능성을 더욱 높일 수 있다. 이미 연세대학교를 비롯하여 대학들이 이를 시도하고 있다. 단순한 공동강의를 넘어 학생의 관점에서 더욱 긴밀한 협력으로 발전되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개혁이 인문사회 학문의 쇠퇴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저자의 연구 분야를 예로 들면 여전히 전문적 연구자들을 상당히 많이 필요로 하며, 여전히 특정 분야의 전문가를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인문학 역시 이와 비슷할 것이다. 최근 인문사회 분야 고등교육 혁신에 관한 토론회에서 ‘인문사회 학술정책연구원(가칭)’이 제안된 바 있다. 인문사회 분야 연구자들이 2,000~4,000명 규모의 국가학술연구교수를 운영하자는 취지이다. 전문적이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자들을 지속적으로 육성함과 동시에 이들이 대학 교육에 기여를 하게 된다면, 학부 정원의 축소가 학문의 위기와 쇠퇴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내 것을 다 지키면서 정부를 대상으로만 개혁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런 개혁은 가능하지 않다. 우리 스스로가 편안한 영역을 벗어나 선제적으로 우리의 살을 도려내며 개혁을 주도할 때 개혁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최영준 연세대학교·행정학

연세대학교 행정학과에 재직 중이며, 연세대학교 복지국가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East Asian Social Policy Research Network 의장이며, 한국정책학회와 한국사회복지학회 연구위원장을 수행하고 있기도 하다. 저출산고령화, 디지털화, 기후변화 등과 관련된 사회정책 변화와 복지국가 개혁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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