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주의와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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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와 불편한 진실
  • 박홍영 충북대학교·정치학
  • 승인 2022.02.27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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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국인은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한국 역사는 무엇을 알리고 있는가?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그리고 핵 보유선언은 한국 역사에서 어떤 의미인가?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산업화 세대, 민주화 세대, 꼰대, 이대남(이대녀), 미투 혹은 성희롱, 세대 갈등, 페미니즘 등은 어떤 의미로 나타난 현상인가? 자유, 인권, 정의, 용기라는 덕목은 퇴물인가? 생산, 공존, 공영의 철학은 유효한가? 비겁, 비굴, 아첨, 기회주의, 사대주의 등의 처세방식은 유효한가? 오늘의 시점에서 한국 역사에 묻는 기본적인 내용들이다. 역사는 흐른다. 500년, 1000년 역사를 보면 반복한다. 교훈을 찾아야 한다지만 무식하거나 무시한다. 혹은 교훈을 둘러싼 역사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이런 문제를 소재로 불편한 진실을 생각해보자.

한국의 오랜 역사 가운데 정말로 교훈을 삼아 늘 경종(警鐘)을 울려야 할 사건이 있다면, 필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꼽는다. 그 이유는 두 사건에는 국내 정치와 국제정치, 안전보장과 민생문제, 계급사회와 책임정치 등의 묵직한 주제가 담겨있고, 그 주제는 오늘날에도 경종을 울리기 때문이다. 국제정치를 보면, 중국과 일본이 한국(한반도)에 가하는 압력이나 횡포, 억압과 회유 등이 닮았다. 그들은 강하고 한국은 약하거나 대응 수단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 다른 점은 미국이라는 변수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북한의 핵문제는 미국 변수를 다른 차원의 문제로 비화시키고 있다. 즉, 북한의 핵은 미국과 조율을 잘 하면 중국이나 일본의 압력이나 횡포를 저지할 수단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외교의 구상력과 가능성이 시험대에 올려졌다.

조선의 국내 정치와 안전보장은 왕족이나 양반의 그것이었지 평민의 그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평민은 늘 유린당하거나 억압과 착취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두 사건을 계기로 평민은 물론 왕족도 양반도 유린당하고 모진 고초를 겪었다. 환향녀(還鄕女)와 홍은동, 이총(耳塚) 등의 언어가 역사를 말한다. 그런데 그런 역사에 대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조선 봉건사회와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책임정치를 본 적이 없다. 아직도 책임정치가 없음은 과거나 오늘날이나 너무 닮았다. 그럼에도 법적으로 한국은 민주공화국이 되었다. 정녕 한국은 민주공화국인가? 독재정치 시기를 산업화 시기로 둔갑시키면서 산업화 세대를 정당화한다. 민주화운동의 주체 역량이 국민이고 촛불이었음에도, 그 과실을 독식한 몇몇의 민주인사로 인해 민주화 본질은 사라졌다. 형식적 민주주의 세력은 실질적 민주주의를 외면하고, 민주화 세대와 산업화 세대를 등치시키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본질을 희석시켰다.

독일은 독일의 나치즘을 규탄하고 성찰한다. 한국은 한국의 독재를 규탄하고 성찰하는가? 신자유주의와 무한경쟁 속에 자본만능주의가 팽배한다. 디지털 기술과 정보화 사회는 인간관계마저 디지털화하고 있다. 20여 년 전의 접촉사건을 부활시키면서 혹은 감성적 문자만의 폭로로 멀쩡한 사람을 하루아침에 범죄자 혹은 파렴치범으로 만든다. 어떤 사회든 중요한 것은 법 우선이기보다는 자정(自淨)능력이다. 한국 사회의 꼰대나 이대남(이대녀)에게 자정능력은 어느 정도인가? 미투 혹은 성희롱의 피해자나 가해자의 자정능력은 어느 정도인가? 가혹한 세월에 민주통일과 해방을 부르짖은 1970~80년대의 20대를 오늘의 20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국인은 역사를 너무 쉽게 잊지 않는가? 역사의 악을 기억하라. “안 돼, 이놈, 못써” 하는 어른의 가르침이 없다. 아쉽다. 지성 없는 감성은 천박하고, 감성 없는 지성은 메마르다.

한국인의 자유, 인권, 정의, 용기라는 덕목을 지수화한다면 어느 정도일까? 한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북한은 인민공화국이다. 영국이나 일본은 입헌군주국이다. 왜 군주국보다 공화국의 정의감이나 민주의식 수준은 높지 않은가? 오랜 역사에서 제국주의였던 영국인이나 일본인보다 한국인은 왜 덜 비겁하거나 덜 기회주의적이지 않은가? 한국인의 사대주의는 어떤가? 일본이 득세하면 일본에, 미국이 들어오면 미국에 아첨하는 무리가 왜 떵떵거리는가? 역사의 장난인가? 민족의 운명인가? 언뜻 훑어본 한국 민주주의의 불편한 진실이다.

북한의 핵무장은 동북아지역의 평화와 안전 문제이기에 중국과 일본과 한국이 불편하다. 일본은 이에 대한 대응능력이 있는가? 있다. 다만 미국의 보호 아래에 있다. 미국은 일본의 핵을 허용하기에 불안하며, 이는 북한이나 중국의 핵보다 더 불안 요인이다. 그러니 미국은 일본을 더 가까이 둔다. 한-미-일의 동맹 거리는 여기서 생긴다. 한국은 미국이 버릴 수 있는 카드이지만 일본은 아니다. 북한은 한국을 핵 협상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으며, 북미일 등의 레벨에서 한국을 소외시키려 한다. 이 길은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에 반하는 길이다. 남과 북은 미일과 중국의 이런 이간책을 뻔히 알면서도 통일과 안정에 반하는 길을 가려 하는가? 한국 안전보장 문제의 불편한 진실이다.

한국의 안전보장은 한국 민주주의의 진실성과 주체성에 달려있다. 안전보장은 탄탄한 민주주의 터전에서 가능하다. 민주공화국은 국민의 것이다. 왕족이나 양반, 언론재벌이나 경제재벌의 국가는 이미 공화국(re-public)이 아니다. 판검사나 교수, 의사와 국회의원 등의 특권층 공화국도 민주공화국이 아니다. 인류 역사는 늘 계급사회다. 단, 계급 간의 조화와 자정능력이 요구된다. 이를 원만하게 정통으로 만들어내지 못하면 후진국이다. 한국인 가운데 특히 가진 자, 배운 자가 정의롭지 않으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반복된다. 이순신 장군과 안중근 의사를 바로 세우지 못하면 중국과 일본이 얕잡아본다. 비겁하고 아첨하는 인간이 출세하는 사회가 되면 치욕과 굴욕의 역사가 반복된다.

 

박홍영 충북대학교·정치학

충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도쿄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국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연구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일본 ODA와 국제정치』, 『일본형 시스템: 위기와 변화』(공저), 『해양국가 일본의 구상』(공역)이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 「일본 경제외교의 특징 : 베트남전쟁기(1965~1975) 대미관계 사례검토」, 「일본 賠償外交 정책의 특징과 전략 : 베트남공화국에의 戰後賠償(1953~1965) 사례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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