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 한국에서 열린 국제재판
상태바
사상 초유, 한국에서 열린 국제재판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2.20 21: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네 건의 역사드라마: 국제 재판 기록 1907~1908 | 정진석 지음 | 소명출판 | 580쪽

 

이 책은 1904년부터 1910년까지 발행된 항일 민족지인 대한매일신보를 둘러싼 영국, 일본, 한국이 관련된 4건의 국제재판에 대한 기록이다. 첫번째와 두번째 재판은 영사재판(1907)과 상하이 고등법원 재판(1908)으로 통감부의 배설 추방과 신문 폐간 요구에 대한 재판이다. 세번째 재판은 국채보상운동 양기탁 재판으로 통감부가 양기탁을 국채보상금 횡령혐의로 구속하여 영-일 두 나라의 외교 갈등이 고조되었던 재판사건이다. 마지막 재판은 배설의 N-C 데일리 뉴스 명예훼손 재판으로 상하이 발행 영어신문 ‘노스 차이나 데일리 뉴스’가 배설의 명예를 훼손하여 피소된 손해배상 소송이다. 배설이 국채보상의연금을 횡령하였다는 일본 통신의 기사를 그대로 실었던 기사가 문제된 재판이다.

대한매일신보는 국운이 걷잡을 수 없이 기울던 러일전쟁(1904)으로부터 나라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1910년까지 발행된 항일 민족지였다. 일본의 강압으로 체결된 을사늑약, 헤이그 밀사파견으로 인한 고종의 퇴위, 군대해산, 의병의 무장투쟁, 국채보상운동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격랑기에 이 신문은 민족진영의 목소리를 대변하여 일본의 한국 침략을 비판하고 항일의식을 고취하였다. 이 신문을 둘러싸고 영국, 일본, 한국이 관련된 4건의 국제재판이 있었다.

저자는 국제관계 사법사, 외교사, 의병 투쟁사, 국채보상운동, 언론사가 관련된 이 역사적인 네 건의 재판 기록을 영국과 일본 외교 기밀문서와 통감부 비밀 기록, 당시의 신문기사와 상하이에서 발행 신문까지 탐색 발굴하여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대한매일신보는 러일전쟁 직후 영국인 배설(裴說, Ernest Thomas Bethell)이 창간한 신문이다. 통감부는 이 신문의 선동으로 전국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소요를 일으킨다고 주장하면서 신문의 폐간과 배설의 추방을 영국에 강력하게 요구했다. 하지만 영국인은 한국에서 치외법권의 보호를 받았기 때문에 통감부는 영국인 소유인 신문을 직접 탄압할 수 없었다. 세계 최강국인 영국을 상대로 일본은 외교력과 갖가지 행정적 방법을 동원하여 통제를 시도하였지만 여의치 않았다.

복잡한 논의와 영-일 간의 외교 교섭의 결과, 통감부가 제출한 증거를 토대로 영국은 배설을 두 차례 재판에 회부했다. 상하이 주재 영국고등법원 검사와 판사가 서울에 와서 4일 동안 진행한 재판에는 피고 배설과 일본 고베에서 온 영국인 변호사, 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위임을 받아 고소인 자격으로 참석한 통감부 제2인자 미우라 야고로(三浦彌五郞), 의병장 민종식(閔宗植), 평민 등 실로 당시 한반도의 정세를 상징하는 인물들이 출두하여 일본의 한국 침략과 민족언론의 항일 기사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한국과 일본의 비상한 관심 속에 영국의 재판관들이 진행하였으므로 영·일·한 세 나라가 관련된 이 진귀한 재판은 영국과 일본이 한국의 독립과 일본의 침략정책에 어떤 방침을 지니고 있었는가를 보여준 거대한 역사 드라마였다. 재판 3건은 영어로 진행되었고, 국채보상운동 재판은 일본어였다. 한국에서 진행된 국제재판의 특이한 풍경이었다.

통감부가 양기탁을 국채보상금 횡령혐의로 구속하여 영-일 두 나라의 외교 갈등이 고조되었던 재판사건은 일본이 한국의 사법권을 탈취한 다음에 진행했던 최초의 재판으로, 일본인 재판관 2명과 한국인 판사가 공동으로 진행하였다. 양기탁 재판은 신보와 배설 탄압의 연장이었지만 특히 당시 전국적인 프레스 캠페인으로 불붙었던 국채보상운동을 와해시키려는 통감부의 의도가 숨어 있었기에 항일 민족운동의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국인, 영국인, 일본인, 프랑스인과 미국인이 증인으로 나서 증거를 제출하는 등 다국적 재판이 되었다.

상하이에서 열린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재판이 있었다. 상하이 발행 영어신문 ‘노스 차이나 데일리 뉴스’가 배설의 명예를 훼손하여 피소된 손해배상 소송이다. 배설이 국채보상의연금을 횡령하였다는 일본 통신의 기사를 그대로 실었던 기사가 문제된 재판이다. 상하이 주재 영국고등법원에서 진행된 재판이지만 주요 쟁점은 국채보상운동이었다.

네 건의 재판은 대한매일신보, 국채보상운동, 헤이그 밀사 파견에 따른 고종의 퇴위, 군대해산, 의병의 무장투쟁 등을 법정에서 생생하게 진술하고 있어서 당시의 긴박했던 한반도 정세가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민족지와 일본 언론의 전쟁이자 영-일 두 나라의 법정 대결로 이어진 복잡한 네 건의 재판에 곁들여 배설이 3주일간의 금고형(禁錮刑)을 복역하기 위해 상하이에 가서 복역한 ‘옥중기’도 전문이 실려 있다.

저자는 대한매일신보 국한문판(1904~1910)과 한글판(1907~1910)을 직접 조사하여 영인본으로 출판하였고, 영국의 국립문서보관소와 국사편찬위원회, 일본 외교사료관의 자료, 그리고 당시 대한매일신보의 기사들을 세밀하게 대조하여 책을 썼다. 네 건의 재판 기록은 판사, 검사, 피고와 변호인의 문답 내용을 전문 그대로 번역하면서 친절한 각주와 해설을 곁들여서 이해를 돕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