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불태우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2천 년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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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불태우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2천 년 드라마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2.13 2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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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불태우다: 고대 알렉산드리아부터 디지털 아카이브까지, 지식 보존과 파괴의 역사  |  리처드 오벤든 지음 | 이재황 옮김 | 책과함께 | 440쪽

 

인류가 문자를 발명한 이래 기록물은 인류의 지식과 역사의 보고였다. 그러한 지식의 집적이 곧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중요하다는 관념은 이미 고대부터 생겨났다. 그런데 한편으로, 도서관은 ‘한 사회 지식의 집적체’라는 그 상징성 때문에 수없이 공격당했다. 

이 책은 이상적 도서관의 효시로 널리 알려진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전설과 쇠퇴에서부터, 중세 종교혁명 시기 신교도들에게 공격받고 파괴된 숱한 수도원 도서관, 근현대 전쟁에서 조준 타격의 대상이 되었던 여러 나라의 도서관들, 그리고 자신의 작품과 기록을 없애버리려던 작가들과 그 뜻을 따르거나 거부한 지인들의 이야기까지, 책과 도서관에 관한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담았다.

나아가 오늘날 디지털 환경에서 지식과 기록 보존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어떻게 가능할지, 책과 도서관의 역할은 무엇인지 등 우리가 고민해야 할 다양한 이슈를 제기한다. 

책은 서기전 600년경 존재한 것으로 추정되는 앗슈르바니팔의 도서관(1장)과 우리에게 이상적 도서관의 효시로 널리 인식되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2장)에서 시작한다. 특히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전설은 도서관과 기록관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낼 수 있는 장소라는 관념을 만들어냈다. 그 명성은 고대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고, 역사를 통해 전해져 내려갔다. 그럼으로써 세계의 지식을 수집하고 조직화하는 그 사명을 모방하도록 많은 사회를 자극했다.

근대 이후의 사례들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묶을 수 있다. 첫째, 한 사회/국가가 다른 사회/국가를 공격하면서 그들 지식·문화의 집적체로서 도서관을 파괴한 사건들. 1814년 영국은 미국을 침공하면서 미국 의회도서관을 불태웠고(5장), 정확히 백 년 뒤인 1914년 독일은 벨기에의 루뱅대학 도서관을 공격했다(7장). 비슷해 보이는 두 사건 사이에 가장 큰 차이는 그 공격에 대한 세계 여론이었다.

백 년 동안 뉴스 전파 수단이 크게 발전했고 또한 인류의 지적 유산에 대한 세계인의 관념이 크게 성장하여, 독일은 비난의 뭇매를 맞았다. 하지만 그 교훈은 학습되지 못했다. 1940년 5월 16일, 독일이 재건된 루뱅대학 도서관을 다시금 파괴한 것이다. 하지만 두 사례에서 공통점도 있는데, 파괴에 굴하지 않고 더욱 훌륭하고 체계적인 도서관을 재건했다는 것이다.

둘째, 저작자가 직접, 혹은 지인을 통해 자신의 저작물을 없애고자 한 사건들이다. 시인 바이런이 사망하자 그의 아내와 친구는 오랜 논의 끝에 결국 회고록 원고를 불길 속에 던져넣었다. 고인의 명예를 지키려는 명분이었다. 시인 필립 라킨의 일기도 사후에 그의 부탁을 충실히 수행한 지인의 손에 의해 사라졌고, 작가 실비아 플래스의 일기 일부는 그의 전남편에 의해 제거되었다(9장).

반면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위대한 서사시 《아이네이스》를 소각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도나투스는 그러지 않았고, 카프카 역시 결핵으로 죽기 직전에 자기 작품을 모두 파기해달라고 한 유언을 그의 친구가 거부한 덕분에 그의 위대한 작품들이 살아남았다(6장). 작가 지인들의 이런 상반된 행위의 옳고 그름은 매우 논쟁적이다.

셋째, 다른 사회의 도서관 등에 보관되어 있던 기록물을 빼돌리는 행위다. 우리는 이미 유럽 여러 나라의 박물관에서 소장한 숱한 유물과 작품들이 제국주의 시기에 식민지에서 약탈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는 기록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식민지 행정 등을 기록한 문서 등은 식민 열강의 기록물로 간주되었다. 이에 따라 ‘모국’으로 가져가기도 하고, 식민통치가 끝나는 시점에 식민지배의 만행을 숨기기 위해 파기하기도 했다(11장). 반면 억압적인 정부에 맞서 보존을 위해 자료를 다른 나라로 ‘피신’시킨 경우도 있다. 2000년대 이라크의 바아스당 문서 등을 미국으로 옮긴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12장).

이처럼 이 책은 한 유형에 하나의 잣대만으로 함부로 평가내리지 않고, 상반되거나 다양한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무엇이 옳고 그른지, 혹은 더 공공성을 가지는지 등을 독자 스스로 깊게 고찰해보도록 하는 힘이 있다.

지은이가 책과 도서관이 공격받고 파괴된 역사를 톺아보게 된 동기는 사실 오늘날 책과 도서관이 어느 때보다도 존립의 위기를 겪고 있어서다. 무엇보다 점점 더 고도로 디지털화되는 현상이 그 핵심이다. 2019년에 평균적으로 1분 동안 전 세계에서 1,810만 건의 메시지가 전송되고 8만 7,500명이 트윗을 했다. 13장에서는 이러한 작금의 상황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논쟁거리를 제시한다. 수많은 기록과 자료가 디지털 및 온라인상에서 생성, 유통된다. 이런 상황은 지식의 보존에 어떤 의미를 지닐까? 사회의 기억 보존은 누가 책임지게 될까? 도서관은 여전히 담당할 역할이 있을까?

더욱이 우려되는 것은, 우리가 기록을 올리는 SNS 등의 플랫폼이 모두 거대 사기업의 소유이자 사업수단이라는 점이다. 이들이 돈벌이가 되지 않는 공공적 목적을 위해 자발적으로 데이터 보존 작업에 함께하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우리가 지금 이용하고 있는 데이터를 갈무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이용의 전모(그리고 그것이 가진 효과)를 결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서서히 쇠퇴한 까닭이 고대인들의 안주(安住) 때문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디지털·온라인 데이터의 보존 및 관리에 대한 공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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