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된 민족 ‘유대인’의 불편한 진실을 파헤치다
상태바
발명된 민족 ‘유대인’의 불편한 진실을 파헤치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2.13 20: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만들어진 유대인 | 슐로모 산드 지음 | 김승완 옮김 | 배철현 감수 | 사월의책 | 670쪽

 

‘민족’이란 개념은 허술하다. 혈연관계를 기반으로 오랜 세월 동안 고정된 동질 집단을 유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전쟁과 이주를 겪으면서 타 집단과 섞이지 않고 민족의 순수성을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꿈이다. 그래서 모든 민족국가는 하나의 민족임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과거에 대한 신화와 조작된 역사를 창조한다. 이 신화가 길고 찬란할수록 국민을 통합된 집단으로 이끌기 쉽다.

이 책은 이런 신화 위에 건설된 나라 이스라엘의 역사적 진실에 깊이 다가선 책이다. “2천 년의 유랑 속에서도 끝내 살아남아 옛 고향 땅을 되찾은 어느 뛰어난 민족”이라는 서사는 이스라엘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신화다. 저자는 이 서사가 완전한 허구임을 밝힌다. 유랑은 없었고, 따라서 고향 땅에 남은 이들도 같은 뿌리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 자신 유대인이자 이스라엘인이기도 한 저자는 이런 작업을 통해 단일 종족으로서 ‘유대인’이라는 신화, 단일 민족국가로서 ‘이스라엘’이라는 신화를 해체하고자 한다. ‘유대인의 나라’라는 이념이 오늘날 이스라엘의 폭력적 패권주의를 정당화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이제는 오히려 반유대주의를 부채질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의의는 ‘민족’이 그 구성원에게 든든한 정체성을 제공하는 기능뿐 아니라, 동질성이라는 이름 아래 내부 불평등과 배제의 정치를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을 뚜렷이 보여준 데 있다. 

오늘날 ‘민족’이란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경험을 같이하는 공동체를 일컫는 말이지, 변치 않는 혈연적 공동체를 가리킨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유대인 역시 공통된 종교문화를 가진 종교공동체이지 혈연으로 이어진 종족공동체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종족적 동질성의 신화를 국가의 기본원리로 삼고 있는 나라가 있으니, 곧 ‘유대인의 나라’를 자임하는 이스라엘이다. 그러나 저자는 유대인을 한 마디로 “발명된 민족”이라 정의한다.

저자는 고대 성서시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직선으로 이어져왔다고 주장하는 ‘유대 역사’의 부실한 고리들을 낱낱이 해체한다. 그럼으로써 신화를 정치적 도구로 활용해온 유대 민족주의, 그 이념에 배인 배타성과 폭력성을 넘어서고자 한다. 

사람들은 흔히 유대인의 역사를 오래도록 고난받은 어떤 민족의 일관된 이야기로 여긴다. 그 이야기는 대강 이러하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떠돌이 유목민족이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신이 약속한 땅’에 유다왕국과 이스라엘왕국을 건설하고, 이후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 제국의 침공을 받아 포로기를 경험한다. 포로에서 풀려난 이들은 다시 예루살렘을 건설하지만, 로마의 지배 아래서 고향 땅을 빼앗기고 뿔뿔이 추방된다. 이후 2천 년 동안 디아스포라(유대인 이산)로 세상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은 수많은 핍박에서도 근대까지 그 정체성을 지키며 살다가, 마침내 신이 약속한 땅 이스라엘에 다시 모여 ‘유대인의 나라’를 건설한다.”

저자는 역사학자로서 이런 이스라엘 건국의 서사를 하나하나 해체하고자 한다. 유대교 신앙체계의 근간에는 ‘죄로 인한 추방’과 ‘성지로의 귀환’이라는 관념이 있다. 현세에서 피할 수 없는 삶의 고난을 위로해주는 이 관념은 장소적 의미가 아니라 다만 구원이 아직 오지 않았다는 상황적 의미를 갖는 관념이었다. 그러나 성서의 신화를 역사로 해석하면서 추방과 유배는 역사적 사실로 탈바꿈한다. 저자는 이렇게 창작된 역사의 허술한 고리들을 다음과 같이 조목조목 짚어냄으로써 ‘추방’과 ‘귀환’의 신화를 무너뜨린다.

(1) 출애굽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사건으로,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들이 정복했다는 가나안은 당시에 여전히 이집트 땅이었다. (2) 바빌론 유수는 엘리트 지배층의 극히 일부에 한한 것이었으며, 그나마 다수는 유수 이후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3) 기원후 로마에 항거해 일어난 유대전쟁과 바르 코크바 반란에서도 추방은 결코 없었다. (4) 심지어 7세기 이후 이슬람 지배하에서도 토착 히브리 농민이 땅을 버린 일은 없었다.

그렇다면 전 세계에 무수히 퍼져있는 유대인의 존재는 무엇인가? 저자는 고대 이집트와 페르시아 등지에서 태동한 일신교를 앞장서서 채택한 히브리인들의 선진적 신앙체계가 지중해 세계의 원시 다신교문화에 빠르게 파고들었다는 것을 일차적 이유로 든다. 그리고 중근동에 있었던 유대교 왕국들의 개종 활동을 결정적 이유로 든다.

하스몬 왕조의 강제 개종정책으로 인해 그리스 이름을 가진 유대교인들이 대거 출현했고, 아랍인의 스페인 정복 때 북아프리카 베르베르인들과 함께 스페인에 들어간 유대교가 ‘세파르디’ 유대인들의 기원이 되었으며, 동방의 광활한 코카서스 평원에 있던 유대왕국 하자르가 동유럽 ‘아시케나지’ 또는 이디시어 사용 유대인들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이스라엘 국가 수립 이전에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던 아랍인들이다. 그들은 7세기 무렵 아랍인의 팔레스타인 점령 후 이슬람으로 개종한 유대 농민들의 자손일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그토록 배척하는 팔레스타인인의 뿌리가 사실은 유대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은 시오니스트들조차 인정하는 사실이었다는 것이다.

유대인으로 불리는 오랜 종교공동체가 종족공동체로 교묘하게 탈바꿈한 데는 시오니스트 민족주의자들의 정치적 이해가 숨어 있었다. 저자는 민족주의 열기가 들끓던 19세기 유럽에서 ‘민족’ 개념이 발명되고 ‘시오니즘’이라는 유대 민족주의가 형성된 과정을 촘촘히 그려낸다.

저자는 이렇게 ‘유대 민족’이란 것이 19세기 독일과 동유럽에 거주하던 유대 지식인들이 만들어낸 창작품임을 보여주는 데서 시작해서, 이스라엘 국가수립과 함께 그것이 정치적, 학문적으로 어떻게 강화되었는지 설명한다. 시오니스트들이 유대 역사를 창작하기 위한 보물창고로 발견한 것이 바로 구약성서였다. 이민족을 물리친 구약 영웅들의 신화가 중동전의 승리를 고무하는 데 이용되었고, 고고학이 고대 왕국의 신화를 사실로 재현하는 데 동원되었다.(제2장) 나아가 19세기 인종주의를 뒷받침하던 생물학은 20세기 유전학으로 옷을 바꿔 입고 ‘유대 유전자’의 연속성을 입증해주는 과학(유사과학)으로 재등장하기까지 한다.(제5장)

저자는 이 모든 역사 창작이 현재 이스라엘의 정치를 지탱하는 수단으로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전 세계 유대인에게는 아무런 제한 없이 시민권을 부여하면서 자국 내 비유대인에게는 심각한 차별을 가하는 나라, 세속적 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하면서도 ‘이스라엘 민중’의 존재를 부정하고 유대인들만의 신정 국가임을 포기하지 못하는 나라가 이스라엘이다. 민족이란 같은 문화와 경험에 대한 공통의 ‘감각’이지 ‘실체’가 아니다. 이 책은 민족이라는 의식이 실체가 되고 국가 이념이 될 때 자국과 이웃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극히 위험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유대인의 발명’과 ‘이스라엘’은 그 대표적인 사례일 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