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전쟁은 전 지구적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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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전쟁은 전 지구적 사건이었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2.13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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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폴레옹 세계사: 나폴레옹 전쟁은 어떻게 세계지도를 다시 그렸는가 | 알렉산더 미카베리즈 지음 | 최파일 옮김 | 책과함께 | 1,440쪽

 

프랑스 혁명전쟁과 함께 시작된 나폴레옹 전쟁은 결코 유럽 안에서 고립된 채 펼쳐지지 않았으며, 전 지구적인 반향을 낳은 대사건이었다. 『나폴레옹 세계사』는 나폴레옹 개인이나 나폴레옹 전쟁 자체의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나폴레옹 전쟁을 세계사적 맥락으로 확대하는 책이다. 

1792년 프랑스 입법회의의 오스트리아에 대한 선전포고로 시작된 프랑스 혁명전쟁은 1803년 나폴레옹 전쟁으로 이름을 바꿔 1815년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이 궁극적으로 패배할 때까지 23년간 이어졌다. 통틀어서 ‘나폴레옹 전쟁’으로 불리는 이 장기 무력 분쟁은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세계사에서 가장 대규모이자 고강도 전쟁이었다.

나폴레옹 전쟁은 식민지와 무역로를 차지하기 위한 유럽 열강들의 세계적 투쟁이었고, 그 영향력은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으로 뻗어나갔다. 나폴레옹은 직간접적으로 남아메리카 독립의 원인을 제공했고, 중동 지역을 재편했으며, 영국의 제국적 야심을 강화하고, 미국 세력의 부상에 기여했다. 그 영향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저자 알렉산더 미카베리즈는 프랑스 혁명부터 시작해 나폴레옹 제국의 몰락과 그 이후까지의 시간을 훑고, 유럽 평원뿐만 아니라 미주, 서부 및 남부 아프리카, 오스만 제국, 이란, 인도, 아시아, 지중해, 대서양, 인도양 등 전 세계 대륙에서 나폴레옹 전쟁이 영향을 미친 과정을 치밀하게 서술해냈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에서는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시작부터 1799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장군의 집권까지의 혁명기를 개관한다. 두 번째 부분은 나폴레옹 전쟁의 여러 사건들이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펼쳐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간 순서대로, 또 지리적으로 보여준다. 혁명전쟁으로 프랑스가 획득한 것을 공고히 하려는 나폴레옹의 시도들과 그에 대한 유럽의 대응을 살펴보고, 종국적으로 유럽 대륙 전체를 집어삼키게 될 프랑스-영국의 긴장관계에 초점을 맞추며, 스칸디나비아와 발칸반도, 이집트, 이란, 중국, 일본, 남북아메리카 대륙 등 세계 각지의 분쟁지역들을 다룸으로써 나폴레옹 전쟁이 얼마나 멀리까지 도달했는지를 실증한다.

세 번째 부분에서는 나폴레옹 제국의 몰락과 전쟁 이후의 세계를 폭넓게 둘러본다. 이 시점에 이르러 나폴레옹 전쟁은 아시아에서는 거의 해소되었으므로 서사의 초점은 유럽과 북아메리카로 이동하여, 나폴레옹의 패배와 빈 회의의 소집으로 막을 내린다.

 

저자는 나폴레옹 전쟁을 혁명적 투쟁의 지속으로만 인식해서는 안 되며, 18세기 국제질서의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18세기 유럽의 열강들은 끊임없이 세력 균형을 추구하면서 저마다 제국적 야심을 펼치기 위해 식민지 확대 경쟁을 치열하게 벌였다. 그 과정에서 7년 전쟁이 벌어졌으며, 이 전쟁에 패한 프랑스는 식민지를 상실하고 재정적 어려움에 허덕여야 했다. 그 후유증으로 프랑스 혁명이 터졌고, 뒤이어 혁명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이 전개됐다.

나폴레옹은 전쟁을 통해 새로운 국제 질서를 창출하고, 유럽에서 프랑스의 헤게모니 권력을 수립하고자 했다. 나폴레옹 프랑스의 야심을 꺾고자 유럽 열강은 동맹을 맺고 일곱 차례에 걸쳐 대불동맹전쟁을 벌인다. 이 전쟁에서 장기적으로 지속된 프랑스와 영국의 대립은 사태의 추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두 열강은 유럽만이 아니라 남북아메리카 대륙과 아프리카, 오스만 제국, 이란,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제도, 지중해와 인도양에서 지배권을 놓고 다투었다.

20여 년이 넘게 이어진 두 열강의 대결은 사실상 제국 건설 과정에서 벌어진 투쟁이었다. 프랑스는 유럽 대륙에서 강한 군사력으로 패권을 장악하고, 영국을 경제적으로 압박하기 위해 대륙 봉쇄 체제를 실시했다. 영국도 지구적인 상업 제국을 건설하고 보호하기 위해 자국의 경제력과 해군력을 휘두르며 프랑스에 맞섰다.

지구적 맥락으로 나폴레옹 전쟁을 살피다 보면 그 전쟁이 유럽 내부보다 해외에 훨씬 더 장기적 영향을 미쳤음이 드러난다. 결국 나폴레옹은 패배했고 그의 제국은 유럽의 지도에서 지워졌지만, 같은 시기에 영국은 인도 지배를 공고히 하고, “희망봉부터 혼곶까지” 자국에 도전할 만한 세력을 일소하며 세계적 강국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또 북방에서 전개된 전쟁으로 노르웨이와 핀란드의 지위가 바뀌면서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재정렬이 이루어졌다. 미국은 1776년에 시작한 독립의 과정을 1815년 전쟁으로 마무리하면서 서반구에서 진정한 탈식민 강국으로 부상했다. 에스파냐 아메리카 제국은 본국이 나폴레옹 전쟁의 격랑에 휘말리면서 해체의 길을 밟았다.

또 나폴레옹이 탄생시킨 라인 연방이 독일 연방으로 확대, 변형되면서 독일 통일의 첫 단추가 끼워졌다. 오스만 제국은 유럽의 세력 다툼에 엮이는 사이 이집트와 발칸반도 등 속주에 대한 지배력이 한층 약해졌다. 이집트는 사실상 반독립국이 되었고, 19세기는 물론 20세기 들어서까지도 발칸 지역을 유혈로 얼룩지게 할 독립 운동의 기나긴 흐름도 이때 시작되었으며, 유럽 외교의 중심 의제에 ‘동방문제’가 대두되었다. 나폴레옹 전쟁의 파급효과는 이란과 중앙아시아에까지 미쳤고 이로써 19세기 내내 전개될 영국-러시아 세력 다툼인 ‘그레이트 게임’의 무대가 갖춰졌다.

나폴레옹 전쟁이 세계지도만 다시 그린 것은 아니다. 지정학적 유산들 외에도 중앙 권력의 강화, 징집제, 민족의식의 고취 등 나폴레옹 전쟁의 정치적·사회적 유산 역시 광범위하고 오래 지속되었다. 그중에 어떤 것들은 우리 곁에 말 그대로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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