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대의 오용과 국가부채의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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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대의 오용과 국가부채의 증가
  • 강민욱 고려대학교·경제학
  • 승인 2022.02.13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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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독일의 수학자 힐베르트(1862~1943)는 무한대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힐베르트의 무한 호텔 역설이라는 예시를 들었다. 힐베르트 호텔은 무한대의 방을 가지고 있는데 현재 모든 방이 손님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새로운 손님이 왔을 때 이 호텔이 방을 제공할 수 있겠는가? 모든 방이 가득 차 있으므로 손님에게 방을 내줄 수 없다는 결론과 무한대의 방을 가지고 있으므로 방을 내어 줄 수 있다는 결론 둘 다 그럴듯해 보인다. 힐베르트는 새로운 손님에게 방을 제공할 수 있다는 두 번째 결론이 수학적인 정답이라 하였다. 무한대의 방이 있으므로 모든 방에는 그 옆 방이 존재한다. 1번 방의 손님을 2번 방으로 옮기며, 2번 방의 손님을 3번 방으로 옮기며, 이렇게 n번 방의 손님을 n+1번 방으로 옮기는 작업을 한다면 새로운 손님을 1번 방에 모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무한대의 방을 가진 호텔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논리를 우리가 사는 세계에 적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수학적 관념에서는 무한대가 존재하고, 위의 논리는 무한대와 무한대+1 이 같은 숫자라는 증명으로 응용될 수 있다. 

경제학 연구에서도 무한대의 개념은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무한대의 개념을 거시경제학 모델에 적용함으로써 많은 경제학적 문제들에 답이 제시되었다. 그중 하나가 국가부채에 대한 이해이다. 국가가 얼마나 부채를 가지는 것이 적절하냐는 문제는, 대개 무한대의 시간 동안에 국가와 정부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 논의된다. 무한대의 개념을 적용하면 국가가 새로운 부채를 추가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오늘 돈을 빌리면 내년에 갚으면 되고, 내년에 갚지 못하면 내후년에 갚으면 되고, 내후년에 갚지 못하면 그다음 해에 갚으면 되는 것이다. 마치 이것은 힐베르트 호텔에 새로운 손님이 왔을 때, 기존 무한대의 손님들을 한 칸씩 옆방으로 이동시켜야 한다는 이야기와 비슷해 보인다. 이러한 논리를 연장하다 보면 현재 빌린 돈은 미래의 무한대까지 부채로 남아있을 것이다. (이러한 부채의 무한 연장을 경제 용어로 ‘rolling over the debt’라고 한다.)

호텔 매니저가 호텔의 이익을 위해 새로운 손님을 받아들이듯, 정부는 추가 재정을 위해 새로운 부채를 늘릴 것이다. 새로운 손님이 기존의 손님을 이동시키는 효과를 가지는 것처럼, 새로운 부채는 미래의 부채를 증가시킬 것이다. 물론 국가가 무한대의 시간 동안 견고하게 존재한다면, 이러한 부채 확장은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힐베르트 호텔과 마찬가지로 무한대의 방을 가진 호텔이나 무한대의 시간을 가진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과도한 부채의 증가는 국가와 국민에 굉장한 위험이 될 수 있다. 실례로, 그리스,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의 정부는 국가의 경제 상황이 계속 건재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예측하지 못한 경제적 위기로 결국 그 정부들은 부채를 감당할 수 없었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국민의 고통으로 이어졌다. 

코로나 시국에 많은 국가에서는 빠른 속도로 재정지출을 늘리고 있다. 국민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정부의 당연한 의무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재정지출의 이면에는 포퓰리즘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정부의 재정 담당 부처에서는 지금의 긴급 재정(새로운 손님이 가져다주는 이익)의 가치를 고평가하고, 이것이 미래에 줄 부담(기존의 손님이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저평가할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평가는 현재의 정부(돈을 빌리는 주체)가 미래의 정부(돈을 갚는 주체)와 다른 존재라는 생각에 기인한 것이다. 만약 힐베르트 호텔처럼 모든 객실을 같은 매니저가 관리하면 새로운 손님을 받는 이익과 기존의 손님을 이동시키는 번거로움을 고려해서 합리적인 판단을 할 가능성이 있지만, 국가의 정부는 4~5년 만에 매니저가 바뀌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정부는 미래의 부채 부담의 어려움을 과소평가할 것이다. 

얼마만큼의 재정지출과 국가부채가 적절한 수준이냐에 대한 정확한 결론은 없다. 현재 일본은 국가채무 비율이 GDP 대비 대략 2.6배 정도가 되고, 미국은 GDP 정도의 규모의 국가채무 비율을 (약 1.2배)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 두 나라보다는 사정이 좋은 GDP 대비 0.5배 정도의 국가채무 비율을 가지고 있다. 코로나 시국이 연장되면서 이러한 국가채무 비율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일본은 과거 80~90년대 미래에 대한 경제 성장을 너무 낙관한 나머지, 국가의 재정지출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진행되었고, 그 결과 국가부채 비율이 매우 큰 나라가 되어 버렸다. 이러한 부채 부담은 2000년대 이후 일본의 경제 성장의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는 2017년에 GDP 대비 35% 정도에 불과한 국가 채무비율이 코로나 시국을 거치면서 현재 50%에 육박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국가부채의 증가가 진정 국민을 위한 재정지출의 결과라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국가채무의 증가에는 미래에 대한 순진한 낙관론과 현재의 가치를 과도하게 중시하는 포퓰리즘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지 숙고해봐야 할 것이다.  


강민욱 고려대학교·경제학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대와 UCLA에서 각각 공학 학사와 석사를 취득했고, 코넬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후 싱가포르 난양공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했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거시경제, 거시금융, 국가재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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