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어떤 곳인가? … 중국과 한국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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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어떤 곳인가? … 중국과 한국 (1)
  •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22.02.06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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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 칼럼]

중국은 어떤 곳인가? 먼저 지리를 살펴보자. 중국의 지리를 여러 말로 설명하면, 기억의 부담이 너무 커진다. 말이 길어지는 것만큼 이해가 혼미해진다. 산수(山水)의 관계를 살피는 신판 풍수를 갖추면, 많은 것을 선명하게 아우르는 총괄론을 얻을 수 있다. 유럽 전래의 근대학문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새로운 작업을 동아시아의 전통을 살려 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나일, 아마존 다음 순서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장강(長江, 揚子江), 그리고 일곱 번째로 긴 황하(黃河)가 흐르는 곳이다. 그 주변에는 넓디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고, 산은 변변한 것이 없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고 노래한 것은 무얼 모르고 한 말이다. 태산의 높이는 한국의 오대산(五臺山)에도 미치지 못한다. 

중국의 중원은 산고수장(山高水長)의 조화를 갖추지 못하고, 산은 낮고 물이 길기만 해서 산불고수장(山不高水長) 쪽에 치우쳐 있다. 중원을 벗어난 저 서쪽은 이와 아주 다르다. 천산(天山) 산맥에 백두산 두 배 반이나 되는 고산이 이어져 있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티베트 고원까지 차지해, 산고(山高)가 세계에서 으뜸이다. 산고수장의 균형을 어기고 산불고수장(山不高水長)인 것만 해도 극단인데, 그 반대의 극단 산고수부장(山高水不長)까지 갖추었다. 

양극단을 다 갖추어 자랑스럽다고 하면 어리석다. 극단은 재앙이다. 극단의 위력이 서로 견제하거나 보완하지 않은 채 그대로 노출되어 위험하다. 산불고수장(山不高水長)인 쪽에서는 홍수가 나면 엄청나다. 산고수부장(山高水不長) 쪽은 모든 조건이 살아가기 어렵게 되어 있다. 양쪽 다 사람을 불안하게, 왜소하게 한다.

풍수의 관점에서 보면, 중국의 무리와 불행은 산수의 극단적인 부조화가 상극을 일방적으로 키우는 데서 유래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사람이 마음을 바르게 먹어 피해를 줄여야 한다. 노자(老子) 같은 스승이 좋은 가르침을 베풀었으나, 효력이 모자란다. 통치자는 천산(天山)보다도 높은 권력을 휘두르려고 하고, 일반 백성은 믿을 것이 돈밖에 없다면서 장강(長江) 같은 탐욕에 정신을 내맡긴다. 

중국의 양극단이 재앙을 일으켜 이웃을 흔들고, 세계를 불안하게 한다. 이에 적절하게 대등하려면, 수난을 분발의 계기로 삼고 높은 수준의 정신적 각성을 해야 한다. 한국이 재앙이 각성이게 하는 임무를 맡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불운이고, 좋은 결과를 얻어 잘 지내며 중국에 도움을 주는 것은 행운이다.  

한국의 행운은 그보다 먼저 산수의 조화에서 비롯했다. 산을 끼고 도는 물이 곳곳에서 흘러 산고수장(山高水長)을 적절하게 갖추고 있다. 산과 물이 심한 차등을 보이지 않고 대등하게 어울리며 조화를 빚어내, 사람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서로 받아들여 상극이 상생이게 하는 생극을 이룩하도록 한다. 중국의 불운을 보고, 이런 행운의 의의를 더 키운다. 
중국에서는 난리가 그칠 날이 없었다. 내분과 외침이 거대한 전쟁을 일으켜 불탄 대지에 시신이 가득한 참변이 자주 벌어졌다. 한국은 산고수장인 곳곳에 같은 민족, 다정한 이웃이 산다고 여긴다. 여섯 사람만 중간에 들면 모두 다 서로 잘 아는 사이라고 한다.

신라에서 고려로,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 교체가 평화적으로 이룩된 것이 다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일이다. 외침이 있어도 중국처럼 무너지지는 않았다. 관군의 힘이 모자라면 의병이 일어나 물리쳤다. 근래에도 일본의 침략에 의병은 굽히지 않고 맞서 독립군의 투쟁을 계속했다. 중국이 독립군의 근거지를 제공해준 것을 고맙게 여긴다. 

문명을 일으키려면 화력이 많이 필요해, 중국에서는 산림을 마구 벌채했다. 그 때문에 시작된 사막화가 지금 더 확대되고 있다. 한국은 재앙에 동참하지 않고 문명을 받아들여 이용하니, 고맙게 생각하고 보답을 해야 한다. 문명을 더욱 발전시켜 전해주는 것이 최상의 보답이다. 상생이나 대등의 철학이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중국에서 끔찍한 전란이 일어나면 피란민이 한국으로 왔다. 피란민 가운데 식견이 높고 기술이 뛰어난 사람들이 있어 문명 전달에서 큰 기여를 했다. 그 덕분에 한국이 한문문명권에 가입할 수 있었다는 말도, 한국의 가입으로 한문문명권이 성립되었다는 말도 둘 다 타당하다. 
기자(箕子)가 최초의 문명 전달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 선인들은 기자를 높이 평가하고 문명 전달을 고맙게 여겼는데, 오늘날에는 기자가 애초에 한국인이었다고도 하고 전달했다는 것이 사실은 한국의 고유문화였다고도 한다. 이런 시비를 사실 고증으로 결판 지으려는 것은 조금 어리석다. 동아시아문명의 보편적 의의를 망각하고, 배타적 민족주의에 사로잡히는 것은 많이 어리석다. 

전란이 자주 일어난 중국의 불운이, 문명 전달의 혜택을 얻는 한국에게는 행운이 되었다. 행운을 얻은 고마움에 보답하려면, 중국에 전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정치적 반론을 펴려고 하지 말고, 학문 연구로 설득하고, 예술 창작으로 감명을 주어야 한다. 이제 한국에서 중국으로 가는 기자(箕子)가 필요하다.  

중국에 대해 반감이나 가지는 것은 잘못이다. 중국을 염려하고 도와주어야 한다. 이것이 동아시아가 잘 살고, 세계를 편안하게 하고, 우리가 우리를 스스로 돕는 길이다.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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