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교육기관의 수준을 높이는 진정한 길은?
상태바
고등교육기관의 수준을 높이는 진정한 길은?
  • 박태균 서울대학교·한국사
  • 승인 2022.02.06 17: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카데미쿠스]

일전에 독일의 한 대학으로부터 복수학위를 체결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독일 내에서는 전통이 있는 대학이었지만, 한국 내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대학이었다. 복수학위를 체결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하자 학내에서 해당 대학이 어떤 대학이고 세계 대학 순위를 조사해서 제출하라는 요구가 왔다. 독일의 경우 캐나다나 호주처럼 대학교 간 격차가 크지 않고 분야별로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순위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일단 승인을 받기 위하여 해당 학교의 파트너 교수에게 귀 대학의 세계 순위를 질의하였다. 그 교수의 답변은 명쾌했다. ‘귀하의 대학에서는 노벨상 수상자가 몇 분이 나오셨나요? 저희는 00분이 노벨상을 수상하셨습니다.’ 해당 교수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부끄러웠고, 학교 측에는 해당 교수의 답변을 그대로 전달했다. 이후 해당 대학과의 복수학위 제도는 더 이상의 반대 없이 잘 진행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세계 대학 평가에서 순위를 올리는 것이 눈앞의 과제가 되었다. 주요 신문들은 매년 어떤 대학의 순위가 몇 위가 올라가고, 어떤 대학의 순위가 떨어졌는지, 어떤 대학은 순위 내로 들어가고, 어떤 대학은 순위에서 빠졌는지를 보도하고 있다. 물론 그 순위가 어떤 기준에서 정해지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듯하다. 해당 기사에 달리는 댓글을 보면 글을 쓰는 기자나 글을 읽는 네티즌들의 관심사를 느낄 수 있다. 

대학들도 언론사의 기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세계 순위를 높이기 위해 모든 노력을 쏟고 있다. 한국의 대학들이 가장 큰 약점인 국제교류 점수를 높이기 위하여 특정 국가로부터 유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한국어로도, 영어로도 강의를 못하는 해프닝이 발생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세계 대학 순위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 순위를 올리기 위하여 현재 한국의 고등교육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들을 뒤로 밀어놓고, 순위에 기준이 되는 부분에 집중하고 있는 현실이 문제다. 학교들은 순위의 기준이 되는 부분을 정해놓고 교수들에게 그 부분에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그 기준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학교 전체가 그 기준에 매달리는 동안 각 분야 학문들의 특수성은 사라지고, 모든 교수들에게 동일한 성과기준이 적용된다. 승진과 정년 심사에서 단행본이나 번역서가 제외되거나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의 고등교육기관들이 세계 유수의 대학과 비교하여 가장 점수 차가 많이 나는 부분은 국제화 부분이다. 외국인 교수와 학생, 외국어로 진행되는 강의의 비율에서 해외 대학보다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한국만의 고민이 아니다. 영어가 모국어인 나라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무리인 것이다. 

세계 대학 순위를 정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해당 학교의 평판과 연구 수준이다. 같은 분야의 연구자들과 졸업생들의 평판, 그리고 교수들의 연구가 다른 연구자들에게 이용되는 정도가 제일 중요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 할 일은 학교가 분과학문의 특징을 무시한 채 모든 교수들에게 동일한 잣대를 갖고 노력할 것을 요구해서 될 일이 아니다. 오히려 각 분과학문의 특성에 따라 그 분야에서 최고의 연구자가 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인문학을 연구하는 교수에게 SSCI 논문을 써야만 승진을 할 수 있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좋은 자료를 발굴하고, 번역서 출간을 통해 외국의 교수들과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더 큰 공헌이 될 수 있다. 공대교수들에게 impact factor가 높은 저널에 논문을 많이 쓰라고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새로운 기술과 창업을 통해 세계적인 기술을 발전시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4차 산업혁명에도 큰 역할을 하는 것이 학교의 평판과 평가에 더 큰 공헌이 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 10대 무역 강국이 되었다. 국가의 혁신지수는 일본을 앞서고 있으며, 10년이 지나면 1인당 GDP가 일본을 앞설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높은 평판의 고등교육기관은 하나도 없다. 과연 무엇이 진정으로 고등교육기관의 수준을 높이는 것일까? 추격국가 시대에 있었던 일률적인 기준으로 추진하던 발전계획은 이제 그만 멈추자. 교수와 학생 개개인들이 최고의 창의력을 갖출 수 있도록 자율성을 높여줄 수 있는 정책을 만들자. 학교가 구성원들을 일률적으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든든한 플랫폼이 되어주자. 


박태균 서울대학교·한국사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국제대학원 원장이다. 계간지 [역사비평] 주간과 서울대학교 [대학신문] 주간을 역임했다. 쓴 책으로는 『조봉암 연구』, 『한국전쟁』, 『우방과 제국: 한미관계의 두 신화』, 『원형과 변용: 한국경제개발계획의 기원』, 『베트남 전쟁』, 『박태균의 이슈 한국사』, 『사건으로 읽는 대한민국』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