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앞서가는 지도자 기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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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가는 지도자 기대해야
  • 민경찬 논설고문/연세대 명예교수
  • 승인 2022.02.01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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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찬 칼럼]_ 논설고문 칼럼

대선을 30여 일 앞두고 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선출하는 날이다. 우리나라는 참 좋은 나라다. 5년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대통령을 선택할 수 있는 나라다.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며 지구촌의 큰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 된다. 임기는 5년이지만 국민의 안위와 국가의 운명에 오랫동안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선택이어야 한다.  

그런데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현재 진행 중인 대선 과정은 많은 사람에게 실망을 주고 있다. 또한 드러나는 것은 주로 ’돈 쓰기‘와 ’편 가르기‘ 이야기다. 물론 표를 얻어야 대통령이 될 수 있으므로 표를 얻기 위해 여러 방식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일 것이다. 이는 후보자의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일지는 몰라도, 국민의 입장은 다르다.

요즈음 ‘돈 주겠다’, ‘돈 쓰겠다’는 이야기 밖에 안 들리는 것 같다. 돈을 써야 할 과제라면 써야겠지만, 국가의 미래, 생산성 등과 어떻게 연계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안 들린다. 국민이 주인이라면서, ‘득표’ 대상으로만 생각하며, 일부 후보들은 표를 위해서는 유권자 맞춤형으로 뭐든지 다하겠다는 것 같다. 국민의 사고 패턴을 읽으며 표를 끌어낼 수 있는 ‘유인책’을 만드는 데만 골몰한다. 이는 일종의 유혹이며 득표 작전에 걸려들도록 유권자의 마음을 시험하는 일이다. 

현재 나랏빚은 눈덩이처럼 급격히 불어간다고 한다. 지난해 말 기준 국가채무는 1,080조 원 정도이며, 국민 1인당 2,082만 원으로 지난 5년간 63% 증가하였다. 이는 다음 세대에 큰 빚을 넘기는 것이다. 일부 후보들은 그래도 빚을 더 내서라도 돈을 써야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분명치 않아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또한 대선 후보자를 비롯한 정치 지도자들은 국민 통합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는 듯하다. 공개적으로 표 계산하는 모습들을 보이며 계속 편 가르기를 부추긴다. 철학과 가치는 보이지 않고, 중대하고 심각한 국가 과제라도 표를 손해 볼 일은 피한다. 대선마다 당선자는 당선 직후 국민 통합을 위해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분들도 포용하며, 인재들을 골고루 등용하겠다는 탕평책 이야기를 했는데, 그동안 얼마나 지켜졌던가? 

요즈음 정치인들은 국민들을 어떻게 보는 것일까? 대한민국의 미래, 다음 세대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는 것일까? 역사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은, 가까운 예로 IMF 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에서 보여준 것처럼,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나라를 위한 사랑과 헌신’이라는 고귀한 정신을 아낌없이 드러내었다. 그런데 대선 과정이 우리 국민에게 내재되어 있는 이러한 소중한 정신에 혼란을 주며 훼손시키는 일이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4차 산업혁명, 코로나19, 기후변화는 물론 미∙중 갈등을 비롯한 세계 질서 변화, 북한의 핵미사일 등 급변하는 지구촌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다. 국민 모두가 단합하여 대처해 나가도 헤쳐나가기 쉽지 않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도자들은 이 거대한 변화의 흐름이 우리에게 보내오는 메시지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이대로 가면, 어디로 가는 것일까?’, ‘대전환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인식으로, 어떤 의지를 다지고 있는가?’,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과제들을 풀어가고 있는 것인가? 적합한 것인가?’, ‘100년 후 어떤 평가를 받고자 하는가?’ 

2019년 5월 독일 메르켈 총리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수여받는 자리에서 당시 하버드 졸업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담아주었다. “총리로서 나는 종종 나 자신에게 물어야 했다. 옳은 일을 하고 있는지, 그것이 옳기 때문에 하고 있는지, 아니면 단지 가능하기 때문에 하고 있는지. 여러분은 계속 반복적으로 이를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 지도자들도 자신에게 스스로 물어가며 국민 앞에 서야 한다.   

오늘 우리나라의 국내외 상황을 종종 100여 년 전 구한말(舊韓末) 모습과 대비시킨다. 1910년 나라를 뺏긴 ‘경술국치’라는 치욕적인 일이 벌어지게 만든 역사적 배경을 돌아봐야 한다. 19세기 후반 전 세계가 산업혁명에 따른 대전환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위정척사’를 내세워 쇄국정책을 선택하여, 개방의 기회를 놓쳤다. 이는 국가 역량에 있어서 국제적으로 엄청난 격차를 가져왔다. 특히 당시 지도자, 지식인의 문명사적 이해 수준의 차이 때문에 벌어진 일이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200년에 가깝도록 후세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오늘의 우리 지도자, 지식인의 문명사적 이해 수준은 어떠한가? 지도자는 국민, 사회보다 시대를 앞서가야 한다. 국민의 시선과 생각을 집중시키는 대선과 같은 시기에 지도자는 국민에게 미래 사회를 이해시키며 새로운 비전을 보이고, 국민이 이를 공유, 공감하며 바르게 판단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국민은 물론 대한민국을 한 차원 높은 공동체로 이끄는 일이며, 그래야 미래가 있다.

5년 주기의 대선정국에서는 구체적인 공약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국가 정책은 장기적 안목과 지속적인 노력에 의해서만 발전될 수 있다. 그동안 대부분의 공약은 현장을 왜곡시키며 혼란과 고통으로 몰아가는 독이 되었다. 대선에서는 대전환의 시대 대한민국의 미래를 향한 큰 철학과 비전, 큰 틀에서의 정책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특히 지도자는 국가 미래를 위해 꼭 해야 하는 국가 과제는 표가 안 되더라도 당당하게 던지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국가 정책은 증거 기반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합리적 판단을 하여 결정해야 한다. 2021년 1월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우리 정부가 하는 모든 일을 과학, 사실, 진실에 근거하도록 할 것이다. 과학은 언제나 내 행정부의 전면에 서 있을 것이다.”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래 변화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며 지혜롭게 대응해야 국민과 국가를 지켜갈 수 있다. 

지식인들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향한 소명감과 대의를 따르는 선비정신을 가지고 큰 리더십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관전자의 위치에서 벗어나, 아니라고 판단되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내며 대안을 찾아내야 한다. ‘나라 사랑과 헌신’이라는 우리 선조들이 쌓아온 고귀한 정신을 다시 찾아 대한민국의 미래를 더욱 튼실하게 세워나가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정직하고 겸손하고 지혜로운 글로벌 지도자를 찾아내고 키워야 한다. 

살아가면서 우리 모두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명, 자존감, 사랑, 행복이며, 다음 세대들에게 더 좋은 세상을 넘겨주는 일이라 생각한다. 문명사적 흐름을 잘 이해하고 앞서 대처해나가는 지도자, 지식인이 매우 절실한 때다.


민경찬 논설고문/연세대 명예교수·과실연 명예대표

연세대 수학과 명예교수로 연세대 대학원장, 대한수학회 회장, 국제퍼지시스템협회(IFSA) 집행이사, 교육과학기술부 정책자문위원장,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 과학기술분과 의장, 포스코청암재단 이사, 국무총리 소속 인사혁신추진위원회 민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기초과학연구원(IBS) 과학자문위원회(SAB) 위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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