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확립·보호는 정부 아닌 신기술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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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확립·보호는 정부 아닌 신기술을 통해서
  • 민경국 논설고문/강원대 명예교수·경제철학
  • 승인 2022.01.30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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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국 칼럼]

오늘날 활동의 자유를 비롯하여 결사·언론의 자유가 유린당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적 영역·소유가 침해되는 게 일상이 돼버렸다. 국가권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다. 겹겹이 쌓인 규제로 경제적 자유는 질식 상태다. 통화 가치의 지속적인 추락을 조장하는 확장적인 통화정책으로 사적 소유는 강제로 수용당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을 괴롭히는 국가주의에 맞서서 잃어버린 자유를 되찾기 위해 자유주의자들은 분주하다. 교육이나 캠페인을 통해서 국가주의적 정치인이나 시민들을 계몽하여 자유 지향적인 다수를 창출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번번이 실패했다. 좌절과 실의는 참기 어려울 정도다. 노예의 길은 숙명이라고 봐야 할까? 아니다. 주목할 건 자유는 정치적 다수의 합의가 없이도 가능하다는 반가운 사실이다. 인공지능, 블록체인, 암호, 가상화폐 등 신기술의 이용 가능성 덕택이다. 제4차 산업 혁명의 핵심인 그 같은 신기술은 사적인 자율성을 확대하고 개인의 자유를 강화할 뿐만 아니라 정부의 침해로부터 사적 데이터와 사적 영역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21세기 전반(前半)을 지나면서 개인의 자유의 확립과 보호는 정부가 아닌 신기술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걸 배웠다. 

예를 들면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암호화폐는 또 하나의 경제혁명’이다. 중앙은행의 방만한 통화 공급에 의한 만성적인 구매력 상실이 그런 민간화폐가 태어난 배경이다. 암호화폐는 생산량이 엄격히 제한돼 있고 누구도 그걸 조작할 수도 없다. 통화 가치 하락으로 인한 ‘재산 몰수’가 없는 이유다.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법정 지폐는 암호화폐들과 경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가치가 떨어진 종이돈은 결국에는 경쟁에서 밀려나거나 아니면 적어도 중앙은행의 독점적 횡포가 줄어들 것이다. 

국가와 담합 관계의 기존 은행제도와는 달리 암호로 보호된 돈지갑(wallets)의 주인이 정부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그의 돈지갑을 정부가 들여다보거나 동결할 위험도 없다. 돈지갑의 익명성 때문에 정치적 권력자의 의지에 반한 자유주의 운동과 이런 운동에 대한 지지도 가능하다. 암호화폐의 등장은 그래서 사상·표현의 자유는 물론 기부할 자유도 강화한다. 

간과해서는 안 될 건 불록체인 혁명이다. 그 기술에 기초한 ‘스마트 컨트랙트’에서는 국가의 계약법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수많은 계약이 자동적으로 체결되고 실행된다. 프로그램밍된 계약 조건을 충족하면 계약이 자동적으로 실행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계약에 대한 다양한 규제를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계약당사자들이 기만 또는 사기를 통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가능성이 줄어들어 계약 준수를 위해 필요했던 국가의 손도 필요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계약의 집행에 각 나라가 쏟아붓는 연간 29조 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는 내용의 연구보고서가 우리의 눈길을 끈다. 블록체인 혁명으로부터 기계화된 신뢰가 형성된 덕택이다. 제2차 산업혁명으로부터 기계화된 에너지로서 증기기관이 생겨난 것과 비유할 만하다.  

국가의 검열·감시에 저항하는 발행·배포 플랫폼의 구축을 가능케 하여 다수의 지지를 받지 않고서도 자유를 실현할 수 있게 하거나, 또는 정치적 직위·직책 남용과 특수이익 정치의 가능성을 줄여서 개인의 투표권을 보호하는 가상민주주의(crypto-democracy)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기술의 예는 아주 많다. 이쯤에서만 보아도 정치적 다수가 없이도 자유를 되찾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지 않은가! 자유의 되찾음 과정은 자율적인 개인들이 새로운 기술에 기초한 생산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과정이다. 블록체인을 기초로 한 비트코인 또는 계약방법을 이용하다 보니, 기존의 화폐나 계약방식에서 볼 수 없는 중요한 편익을 보장하는 걸 발견한 것이다. 기술을 통한 자유는 계획적이 아닌 자생적인 이유다 

공급자와 수요자 간의 자발적 계약을 통해서 상품과 서비스가 이용된다. 기업가들은 수요자들에게 매력적인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찾아 그들에게 접근한다. 자유의 되찾음 과정은 애덤 스미스 전통의 자유주의가 중시했던 평화롭고 진화적인 과정이 아니던가! 그러나 아래로부터의 변화, 즉 진화를 통한 자유는 위로부터의 혁명과는 달리 대단히 완만하고 수십 년, 아니며 50년 또는 100년이 걸린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생겨난 지 20년도 안 된 암호화폐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은 그래서 졸속이다. 

그러나 신기술의 영향에 관한 비관도 만만치 않다. 예를 들면, 시진핑의 국가사회주의는 인터넷, 인공지능, 소셜미디어를 이용, 중국 시민들을 감시하고 감독한다. 그러나 기술은 원래 가치중립적이다. 잘 쓰면 이롭고 잘못 쓰면 해롭다. 불(火)을 처음으로 발견했을 때에도 불의 이용에 대한 강력한 반대 운동이 있었다. 하지만 반대했던 그룹은 도태되었고 불을 다루는 법을 배우면서 불의 이용방법(추위, 맹수로부터의 보호, 음식물 익혀 먹기)을 개발·이용했던 그룹은 번창했다. 신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국가가 개입하면 어떤 성공도 거둘 수 없다. 예를 들면 로봇의 등장으로 야기되는 대량실업을 돌봐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로봇이 실업을 초래한다는 주장은 아무리 뜯어봐도 러다이트의 엉터리 같은 전제가 깔려 있고 그래서 그런 주장도 틀렸지만, 그런 잘못된 주장을 쫓아서 로봇세나 기본소득의 도입은 개인과 사회의 번영에 공헌하는 생산적 활동에 대한 처벌과 뭐가 다른가! 따라서 기술비관주의에 우리는 조금도 연연할 필요는 없다. 

요컨대, 정치적 개혁 또는 주기적인 정치적 선거에 기댈 필요가 없이 신기술을 통해서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 불의 인류사적 교훈을 되새기면서 신기술의 편익을 마음껏 만끽해도 된다. 21세기 초반을 지나면서 우리는 국가권력을 회피·침식하고 심지어 그와 싸워 이기기 위해서 이용할 신기술을 갖기 시작했다. 그런 기술에서 개인의 자유를 확장할 새로운 전략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신기술의 원천은 기업가와 기업가 정신이다. 21세기는 기업가 정신으로부터 경제적 번영만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까지도 기대할 수 있게 된 시대다.  


민경국 논설고문/강원대 명예교수·경제철학

서울대학교 문리대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 경제학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강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같은 대학 경제학과 명예교수이다. 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과 제도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사)자유주의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하이에크, 자유의 길』, 『국가란 무엇인가: 자유주의 국가철학』, 『자유주의의 도덕관과 법사상』,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시장경제의 법과 질서』, 『하이에크 자유주의 사상 연구』, 『경제사상사 여행』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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