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대학의 ‘정의로운 전환’
상태바
사립대학의 ‘정의로운 전환’
  •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 승인 2022.01.30 14: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영남 칼럼]

‘교육관련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공시된 자료에 의하면 2021학년도 기준 전문대를 포함한 한국의 대학은 325개에 이른다. 사립대학이 278개(85.5%)나 되고 국공립은 47개(14.5%)에 불과하다. 이를 4년제 대학으로 좁혀보아도, 193개의 대학 중 국·공립대학이 40개(20.7%)인 반면에 사립은 153개(79.3%)에 이른다. 특히 수도권 밖에 소재하는 사립대학은 89개로 전체 사립 중 58.2%이며, 전체 지방대학 중 73.6%나 차지한다. 

한편 대학입학정원은 전문대를 포함하여 모두 47만 2천 명으로 국공립 7만 6천 명(16.0%), 사립 39만 7천 명(84.0%)이다. 대학의 설립 주체에 따른 비율과 비슷하다. 지역별로는 서울 8만 7천 명(18.5%)을 비롯하여 수도권 입학정원이 18만 5천 명(39.2%)을 차지한다. 비수도권이 28만 7천 명(60.8%)인 셈이다. 이를 규모에 따라 나누어보면, 광역시의 경우 11만 6천 명(24.5%)인 반면 비광역시의 경우 17만 2천 명(36.3%)이다. 유형별로 보면 4년제 대학 입학정원은 31만 7천 명으로 국공립 7만 2천 명(22.8%), 사립 24만 5천 명(77.2%)이다. 전문대학 입학정원은 총 15만 5천 명이지만, 사립은 15만 2천 명(97.9%)으로 가히 압도적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고등교육은 유럽과는 전혀 다르며, 오히려 미국이나 일본과 유사한 전형적인 사립대학 중심의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고등교육의 생태계가 지닌 본질의 배경이다. 그리고 한국의 대학은 ‘서울 소재 대학-비수도권 국립대학-비수도권 사립대학’의 순으로 서열화되어 있으며, 한국은 꽤 빠른 속도로 학령인구가 감소하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즉, 점차 비수도권의 사립대학에서는 입시 자체가 사라져 학생을 모집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등록금 수입이 2020년 기준 54%를 차지하는 사립대학으로서는 고등교육의 질을 제대로 확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정해도 무리는 아니다.

<대학교육연구소>의 ‘지방 사립대학 재정진단보고서’(2021.10)가 예상한 사립대학의 등록금수입추계를 보더라도 2020년 기준 2024년 수도권 사립은 8.2%밖에 감소하지 않지만 비수도권은 17.5%나 감소하며, 2040년 수도권 사립은 23.4% 감소하지만 비수도권은 45.1%나 감소한다. 비수도권의 사립대학들이야말로 한국 고등교육의 상징인 대학서열이라는 위계와 학령인구 감소라는 파고를 온몸으로 견뎌야 하는 시기에 봉착했다. 이제 그 생태계가 붕괴할 직전이라는 말이다.

그동안 국가는 기만적이고 반교육적 방식으로 입학정원 줄이기를 오랫동안 대학에 강요했다. 인구감소의 시대로 접어들었음에도 1995년 이후 입학정원을 확대해온 국가는 자신들의 그 기획에 대하여 아무런 책임을 진 적 없고 반성한 적도 없다. 그리고 그 고통은 오롯이 비수도권 사립대학들의 몫이었다. 고등교육재정을 미끼로 내건 국가의 폭력적인 구조조정 기획은 대체로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25년 전의 입학정원 규모로 복귀한 데 지나지 않는다. 빠른 속도로 감소하는 학령인구를 고려해볼 때, 국가의 성공적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현재 내지 향후 매년 10만 명 이상의 미충원 인원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학령인구의 현실을 고려한 ‘적정규모’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입학정원의 조정이 불가피하다면, 과연 그 기만적이고 반교육적이며 폭력적인 방식에 다시 의존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유감스럽게도 국가는 국가장학금이나 이런저런 재정지원의 규모와 조건을 내걸며 결국, 무늬만 자율인 숫자 줄이기를 강행하고 있다.

이 같은 담론에는 사립대학 자체의 책임이 먼저라는 견해도 있지만, 한국에서 대학 입학정원을 확대해 온 기획의 주체는 국가였으므로 그 감축의 주된 책임은 마땅히 국가에 있음이 명백하다. 교원확보율 등 고등교육을 수행할 여건을 바탕으로 전체 또는 권역별 학령인구 감소의 추이도 고려하면서 모든 대학의 입학정원을 균등하게 감축하고 그로 인한 등록금 수입의 부족분을 국가가 메우는 게 합리적이다.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오늘날 한국에서 벌어지는 고등교육체제의 붕괴를 이해하는 데 결코 본질이 아니다. 그 합리적 조치가 이루어진다 해도 대학서열의 명제는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정의롭지 않은 한국 고등교육의 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숱한 담론과 실천에도 어느 하나 목적을 달성하기엔 충분치 않았다. 

2004년 정진상 교수가 경쟁교육의 본질이며 학벌사회의 기제인 대학서열체제를 타파하기 위한 방안으로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를 제안하였고 이후 관련 연구들이 나오다가 최근 그 흐름을 이은 김종영 교수의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매우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방안이 제출된 바 있다. 그는 공립 연구중심대학 10개로 구성된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체제를 모델 삼아 현재 서울대 1극 체제를 해체하여 전국의 9개 거점국립대학의 각 예산을 연 1조 원 규모로 키워 세계적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으로 육성하자고 주장한다. 물론 그가 공영형 사립대학 육성이나 무상교육의 필요성도 언급하고는 있으나, 그의 ‘최소주의 전략’의 방점은 일단 서울대 규모의 연구중심대학을 더 만들자는 데 있다. 비록 이런 접근이 매우 짧은 시일 안에 정치적 성공으로 이어진다면 그들이 목적으로 삼은 입시지옥이나 대학서열 체제에 어느 정도 균열을 낼 수는 있다는 면에서 긍정적 평가를 할 수 있음은 명백하다. 하지만 누군가의 지적처럼 이 같은 지혜로운 ‘전술’이 한국 고등교육체제에 필요한 보다 본질적인 ‘전략’을 덮어버릴 수 있기에 매우 우려스럽기도 하다.

고등교육은 지식의 창달을 통해 사회와 국가에 필요한 사회·문화·경제·정치의 토대를 제공하며 이를 쉼 없이 확대함으로써 민주주의와 인권을 보장하고 시민과 인류의 삶을 다 함께 윤택하게 하는 데 기여한다. 물론 그 고등교육의 기획은 모두에게 맡겨져 있지만 이를 수행하는 주된 주체는 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 그 가운데 가장 이상적인 정책은 국가가 대학을 직접 운영함으로써 고등교육에 필요한 연구와 교육의 책무를 다하는 것이다. 국가가 짋어져야 할 이 같은 고등교육 책무성이 한국에서만큼은 그동안 외면되었기에 대부분의 고등교육을 사립대학이 짊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행기 동안 철저하게 외면되었던 고등교육의 책무성을 국가가 온전히 회복할 필요가 있다. 고등교육의 현실은 지금의 체제로는 그 복구가 불가능한 만큼 그 본질을 꿰는 전략을 수립하지 않는 한, ‘대학다운 대학’으로서 비수도권 사립대학은 그 운명을 다했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이제 새로운 전환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마지막 순간에 이르렀다. 조건에 맞춰 돈을 줘서 입막음하는 임기응변의 술수가 아닌, 제법 큰 도시와 큰 국립대학을 이번만큼은 살려보겠다는 ‘최소주의’ 전술의 제물도 아닌, 과거를 잊은 미래의 설계가 아닌 ‘정의로운 전환’이 요구된다. 이 ‘정의’에는 과거의 흔적과 그 극복 의지가 담겨야 하므로 그동안 비수도권 사립대학이 견뎠던 교육적 고통을 충분히 감안해 전환의 밑그림이 그려져야 한다. ‘저탄소녹색성장 기본법’을 폐지하고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을 제정하여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의로운 전환을 모색하듯, 사립대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의로운 전환이 요청된다. 한국의 사립대학에 필요한 ‘정의로운 전환’이란 긴 안목에서는 사립대학들을 국립 또는 공립대학으로 전환함을 말한다. 그리고 가깝게는 사립대학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무상교육, 교육하거나 노동하는 이들의 모두가 참여하는 학교법인 이사회의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재구조화, 그리고 교육의 위계와 노동의 위계를 철폐하는 데 국가가 그 책무를 다하는 전환을 말한다. 물론 이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이 의사결정과정에 동등하고 실질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 정의로운 전환에 필요한 인적·물적 부담을 공정하게 나누어야 할 뿐 아니라 이 위기의 극복을 사회적·경제적 평등을 도모하고 호혜적 문명의 지속성을 보장해야 할 민주주의의 문제로 인식하여야 한다. 

‘공영형 사립대학 육성사업’이 주요 공약이자 국정과제임에도 철저하게 국가 관료들에 의해서 파괴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교육체제와 그 의제뿐만 아니라 여기에 필요한 재정의 운영도 국민이 통제하는 민주주의의 원리에 부합되어야 함을 재차 깨닫는다. 이해관계자들의 동등하고 실질적인 참여를 통해 비수도권 사립대학의 전환에 필요한 예산을 편성한다면 이는 새로운 고등교육 체제의 구축을 위해 보다 장기적인 생명력을 갖는 ‘정의로운’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인제대학교 공공인재학부 교수로 <전국교수노조> 부울경지부장 및 <경남교육연대>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민주법학> 편집위원장이며, 전공은 계약법으로 교육법, 인권법, 주택법, 법여성학 등에도 관심이 많다. 저서로 『여성과 몸』(공저, 2019), 『대학정책, 어떻게 바꿀 것인가』(공저, 2017), 『민법사례연습』(2016)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