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사태, 민주화와 이행기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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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사태, 민주화와 이행기 정의
  • 최경준 제주대·정치외교학
  • 승인 2021.07.04 1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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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논평]

2021년 2월 미얀마 군사 쿠데타 발생 이후 일련의 인권 유린 상황은 국가폭력을 야기하는 원인과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과제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국제사회에 다시 한번 제기하고 있다. 미얀마에서 1962년과 1988년에 이어 3번째 발생한 쿠데타는 현재까지 약 800여 명의 희생자를 야기하고 있다. 희생자 중에는 쿠데타에 대한 저항 시위와는 무관한 다수의 어린이들도 포함되어 있어 군부에 의한 폭력의 참혹함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군사력을 동원해 자국민을 학살하는 국가폭력 사태는 “국가에 의한 보호”와 “국가로부터의 보호”를 함께 실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미얀마에서 발생한 반복된 국가폭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폭력을 행사하는 군의 능력과 의도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미얀마 군부는 소수민족 무장세력을 상대로 한 내전을 통해 군사적, 정치적 능력을 증대시켜 왔다. 국가 경제력 수준을 상회하는 대규모 병력을 보유한 미얀마 군부는 소수민족 탄압을 통해 폭력 행사의 능력과 기술을 축적해 왔을 뿐만 아니라 국가적 통합을 위한 자신의 존재 이유를 부각시키며 정치권력을 확장해 왔다. 나아가 주요 천연자원을 비롯한 미얀마 주요 산업을 장악하며 경제적 이권을 챙겨 왔다. 자국민을 상대로 한 폭력이 초래하는 정당성 훼손에도 불구하고 군부가 쿠데타와 시민에 대한 물리적 탄압을 강행한 것은 2020년 아웅산 수찌가 이끄는 민족민주연맹(NLD)의 선거 대승이 초래한 군부의 정치적 위기감과 자신이 보유한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이익을 지키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국가폭력을 초래함에 있어 군부의 능력과 의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민주화 과정에서 군부의 과거 행동에 대한 반성과 처벌이 부재했다는 점이다. 2008년에 만들어진 미얀마의 현행 헌법은 의회 의석의 4분의 1을 군부에게 선거와 무관하게 자동 할당하고, 국방, 내무, 국경 등 핵심적인 부서에 대한 군의 통제력을 보장하고, 국가비상사태 시 군정을 허용하는 등 민주주의를 제약하는 중대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군부와 민주세력 사이의 타협을 통해 출현한 이러한 정치제도는 선거 민주주의를 통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민주정부가 쿠데타로 손쉽게 붕괴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군부와의 타협은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헌법과 제도의 불완전성과 취약성만을 야기한 것이 아니다. 소수민족에 대한 학살과 탄압, 민주화 운동 진압 과정에서 초래된 희생 등 군이 과거 자행한 잘못된 행동에 대해 군은 어떠한 사과를 한 적도 처벌을 받은 적도 없다. 시민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는 군의 반복된 행동 뒤에는 과거에도 처벌받은 적 없고 앞으로도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는 위험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지금 미얀마가 당면한 과제는 군부가 자행하는 폭력을 중단시키고 민주 정부를 복원시키는 일이다. 그러나 군부의 잔혹하고 서슴없는 폭력이 처벌받지 않은 경험에서 표출되고 있다는 점에서 미얀마는 과거에 발생했고 지금도 나타나고 있는 대규모 인권유린에 대한 책임과 진상규명, 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과 배상 등 ‘이행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를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를 지금부터 고민하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이행기 정의의 대상이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군부에 의해 희생된 시민들뿐만 아니라 군부 학살과 탄압의 오랜 대상이었던 소수민족 주민들까지 포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군부의 반복된 폭력사태를 막고 장기적으로 미얀마 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해서는 다양한 소수민족까지 포함하는 새로운 포용적 정체성을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소수민족을 탄압하면서 과다성장한 군부의 폭력이 결국 다수파 버마족을 포함한 미얀마 시민들에게 자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소수민족에 대한 군부 폭력의 책임을 처벌하지 않는다면 미얀마 민주주의는 언제든 다시 군부의 폭력 앞에 위험해질 수 있다. 다수파 버마족과 소수민족까지 아우르는 이행기 정의의 실현은 군부가 자행하는 불법적인 폭력의 남용 앞에 누구나 비극적인 희생을 겪을 수 있으며 민주주의 정의 실현을 위해서는 민족적 차이를 초월한 공동의 참여와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시킴으로써 미얀마가 포용적인 정체성에 기반한 시민사회를 건설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기 국가의 잘못된 행동을 어떻게 심판하고 처벌할 것인가는 민주주의 이행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성숙과 공고화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과거의 잘못에 대한 처벌이 없다면 이는 같은 잘못이 미래에도 반복될 수 있음을 의미하고 이로 인해 민주주의 미래 역시 위협받을 수 있다. 지금의 미얀마 사태는 민주화 과정에서 이행기 정의가 갖는 의미와 중요성을 다시 한번 부각시키고 있다.


최경준 제주대·정치외교학

제주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 Seattle)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법집행과 법치, 국가폭력과 인권, 강대국 갈등과 중견국 외교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법집행의 정치: 신생민주주의 국가의 법집행과 공권력의 변화』, 최근 논문으로는 “미얀마 사태와 미중관계: 지정학적 중간국 외교”, “미-중 갈등과 동남아시아: 베트남, 미얀마, 필리핀의 대응전략과 중간국 외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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