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위기 극복의 전제와 그 실천 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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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위기 극복의 전제와 그 실천 주체
  •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 승인 2021.07.04 18:5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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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남 칼럼]_ 대학직설

교수들에게 위기의 대상은 뭘까? 특히 지방사립대학의 경우 그 으뜸은 역시 ‘대학’ 그 자체다. 2021학년도 입시에서 엄청난 정원미달의 규모를 실감한 대학들과 관계기관들은 마치 이제야 위기가 드러났다는 듯이 수많은 세미나와 토론회를 잇달아 개최하며 그 위기의 원인과 해결 방안을 다루는 중이다. 학령인구의 감소를 염두에 둔 정원의 감축, 지방대 위기를 극복한 방안, 무상교육, 대학 서열화를 극복할 방안 등 집단지성이 제시할 수 있는 사유들이 비록 한데 뒤섞여 혼란스러우나 오늘날 위기의 현상들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데 그 의의가 있다. 물론 위기의 본질이 적나라하게 까발려지지 않았기에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와 실천은 답보 상태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시급하게 떠오른 의제는 입학정원의 적정 규모를 구현할 방안을 마련하는 데 있었다. 서울에서 먼 지방의 사립대학일수록 그 위기의 체감은 심각하다. 그 배경은 이른바 학령인구의 감소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구가 이미 수도권으로 과도하게 집중된 점, 그리고 나라 전체의 학령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든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래서 서울에서는 좀처럼 체감되지 않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때, 위기는 곧 과거의 규모를 유지한 채 인구축소의 시대를 견뎌야 하는 ‘숫자의 모순’을 극복하는 데 있다. 근데 이 숫자에는 애초의 입학정원을 늘린 잘못과 인구감소에 따른 모순이 겹쳐있다. 

먼저, ‘세계화’의 이름 아래 25년 전부터 늘어난 입학정원은 정부의 방임적 기획이었음이 명확하다. 하지만 이 잘못에 대해 정부는 아무런 반성과 책임 없이 폭력적·기만적 정원 줄이기를 대학에 오랫동안 강요하였고 1주기 및 2주기 대학평가를 거치면서 끝내 그 목적을 달성하였다. 우리가 확인한 것은 기획의 주체와 책임의 주체가 전혀 달랐다는 데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13년째 동결된 등록금과 더불어 강압적인 구조조정의 결과, 지방사립대학의 교비회계가 그 직격탄을 맞았다. 여하튼 25년 전의 입학정원 규모로 돌아가긴 했지만, 지금으로서는 인구감소의 속도가 적정 규모라는 ‘숫자의 모순’을 이끌고 있음이 또한 명확하다. 과거와 달리 정원 줄이기 방안을 순전히 대학의 자율에 맡겼던 현 정부의 태도에 변화가 예상되는데, 국가장학금과 재정지원의 규모와 조건을 세게 내걸고 무늬만 자율인 숫자 줄이기를 강행하기가 바로 그것이다. 마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학령인구보다 많은 입학정원을 서열에 따라 십수 년째 잘라내던 방식이 비슷하게 재연될 것이다. 정부의 이러한 폭력적 행태와 억지는 고스란히 학습되어 대학 스스로 그 민주주의를 왜곡하고 급기야 헌법의 가치인 ‘대학 자치’를 거의 망가뜨리게끔 한다. 

하지만 이런 ‘숫자의 모순’은 그저 현상에 불과하다. 즉, 위기의 본질은 다른 데 있는 것이다. 숫자야 조정하면 되는 문제가 아닌가? 물론 그 감축의 방법과 규준에 관하여 논쟁을 할 수밖에 없음은 충분히 예상하나, 인구감소의 규모와 추이에 비례하여 모든 대학의 입학정원을 균등 감축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본다. 물론 그와 동시에 대한민국 헌법이 말하는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충분히 고려하여야 함은 당연히 그 전제다. 다만 이 ‘숫자의 위기’와 그 극복 담론은 현상에 불과할 뿐 결코 본질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달리 말하면 그 본질은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실현하고, 특히 이를 제도적으로 확보하는 데 있다.

그 고등교육의 공공성은 교육재정과 거버넌스 모두에 요구된다. 교육재정과 관련해서는 다른 이들처럼 필자 역시 이미 이 지면을 통해 21대 국회가 ‘고등교육재정교부법’의 제정에 주저 없이 나설 것을 요구한 바 있다. 1년이 지나도 더딘 모습을 보면 이 요구는 내년 대통령선거의 핵심 공약에 포함되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정확하게는 대통령선거에 나서는 각 후보와 정당에 요구하는 정치적 주장이 될 터이다. 물론 고등교육의 무상화에 관한 수준을 둘러싼 담론이 치열하게 형성될 것이라 예상하나, 최근 교육부 장관이 언급한 실질적 의미의 반값 등록금 수준 또는 국가장학금 예산의 확대 등의 수준은 정답이 아니다. 이 추가 재정의 근거를 설명하느라 경제협력개발기구 소속 국가의 평균 GDP 비율을 따지거나 1인당 평균 공교육 비용을 따지던 시절은 지나갔다고 본다. 그 평균의 도그마를 우리 스스로 먼저 버릴 때가 왔다고 본다. 

2019년 기준 모든 대학의 등록금 회계 규모는 12.5조 원 정도인데, 이미 국가장학금으로 현재 매년 3.5조 원가량 지출하고 있으므로 향후 매년 9조 원의 고등교육재정을 점진적으로 추가 확보하여 직접 대학의 교비(등록금) 회계를 충당한다면 한국은 고등교육의 보편적 공공성을 넘어 구체적 교육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토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며, 누구는 공부만 해도 되고 누구는 노동을 겸업해야 하는 등 고등교육 앞에서의 차별은 마침내 사라질 것이며 대학다운 대학의 존재 이유가 가능할 것이다. 또한 고등교육의 무상화에 더하여 입시제도의 혁신이 함께 도모된다면 한국 사회에서의 고등교육 공공성 완성도는 좀 더 높아질 것이다. 그 혁신을 위하여 대입 수능을 자격시험으로 하자는 견해를 비롯하여 공동입시 네트워크를 구현하자는 견해, 권역별로 대학을 연합체로 묶자는 견해도 있다. 이렇듯 의제는 또 다른 의제를 낳으며 이어질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고질적인 ‘대학 서열화’의 구조와 탐욕이 얽혀있기 때문에 쉬운 문제는 결코 아니다. 

그런데 고등교육의 공공성이야말로 대학 운영의 민주적 체제를 전제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가 없는 곳에 국민의 노동으로 형성된 세금을 투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부패나 비리가 없으면 그 학교법인이나 대학이 정상이라는 인식은 지금의 시대에 적절하지 않다. 모두를 위한 혁신을 도모하지 않는다면 이미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법인과 대학의 운영을 위한 거버넌스도 그 차원을 달리할 때가 되었음을 선언하고자 한다. 설립자의 대학도, 교수만의 대학도 아니다. 누구에게 독점된 대학이 아니란 말이다. 모두의 대학이 되어야 한다. 대학과 지역사회의 구성원들이 골고루 대표성을 갖고 참여할 수 있는 큰 규모의 개방적 학교법인 이사회로 변경되어야 한다. 법리와 실제적 영역에서의 많은 논쟁이 예상되지만 거쳐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모두의 대학’, ‘모두를 위한 대학’에서는 그 ‘모두가’ 대학의 운영에 참여하여야 한다. 대학의 형성기에는 특정인들의 기여가 돋보이고 그 공헌에 우리가 찬사를 보낼 수 있다. 영웅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고등교육의 물적 토대를 사회화하는 시대에는 누구에게도 독점적 헌신은 가능하지 않다. 최초의 재정기여자도, 교수도, 직원도, 학생도, 졸업생도, 지역주민도 자신만의 대학, 자신만을 위한 대학을 가질 수 없다. 따라서 누구도 홀로 대학을 운영하거나 지배할 수 없다. 물론 법률적으로도 형식적으로도 사립대학은 학교법인의 것이며, 그 학교법인은 누군가의 재정 기여로써 이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그 공간을 채우는 주체들의 헌신에 따라 그 대학은 누군가의 독점에서 해방되어 모두의 헌신에 따라 성장하는 대학으로 변한다. 구성원들의 자부심이나 애교심이 사라진 대학은 여전히 누군가의 것에 머물지만, 한 사람의 학생도 놓치지 않고 수준 높은 고등교육을 구현하며 학문의 깊이와 지식의 확대를 위한 교수들의 형설지공이 그들의 의지에 따라 실천되는 대학은 ‘모두의 대학’일 것이다. 여태 주어진 온갖 체계와 제도 속에서 혼자서도 좋고 여럿을 묶여서라도 모두의 대학을 꾸려나간다면 고등교육의 공공성은 거슬릴 수 없는 정치적 역사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실천의 앞자리는 도대체 누구의 몫인가? 학교법인의 독단과 관용도 아니고, 국가의 친절한 안내와 통제도 아니다. 그 흔한 재벌의 돈도 아니다. 결국 교수가 그 몫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 대학은 고등교육을 수행하고 학문을 계승하는 시대의 유일무이한 공적 기관이며, 교수는 이를 구현하는 무한의 권한과 역할을 갖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이끌 인재를 양성하며 그 배움의 공동체를 구축할 책무가 교수의 소명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 고등교육이 지성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실패하고 시대의 양심을 기르는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그 책임 역시 당연히 교수의 몫이다. 어쩌면 이것이 대학 위기의 본질인 동시에 그 극복을 실천할 유일한 계기일지 모른다.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인제대학교 공공인재학부 교수로 <대학평의원회> 의장을 맡고 있다. <민주법학> 편집위원이며, 전공은 계약법으로 교육법, 인권법, 주택법, 법여성학 등에도 관심이 많다. 저서로 『여성과 몸』(공저, 2019), 『대학정책, 어떻게 바꿀 것인가』(공저, 2017), 『민법사례연습』(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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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경 2021-07-12 11:55:08
고영남 교수님, 정말 공감되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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