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은 절도보다 더 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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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은 절도보다 더 해롭다
  •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 승인 2021.06.27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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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 칼럼]_ 논설고문 칼럼

<가짜 박사를 없애야 선진국이 된다>는 글을 <<조선일보>> 2021년 5월 17일 자에 냈다. 할 말을 다 하지 못해 속편을 쓴다. 대강 말하는 데 그쳐 심화된 논의가 필요하다. 원론에 치우쳐 구체적인 내용이 모자라므로 보충해야 한다. 미처 다루지 못한 문제도 있다. 

논문이 가짜라는 것은 남의 논문을 표절했다는 말이다. 표절은 절도와 같으므로, 윤리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절도뿐만 아니라 표절도 당한 사람이 민사소송으로 손해 배상을 청구할 사안도 아니다. 둘 다, 당한 사람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형사처벌을 해야 하는 임무를 국가가 지고 있다.

절도와 표절은 같기만 한 것이 아니다. 절도보다 표절이 더 해롭다. 절도의 피해는 당한 사람에게 국한되지만, 표절은 당한 사람뿐만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게 예상하기 어려운 피해를 끼친다. 표절로 학자 자격을 얻은 가짜가 진짜로 행세하면서 학문을 망치고 가치관을 교란하는 것이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악이다. 

논문이란 지위 획득을 위한 필요악이라고 여긴다. 표절을 잘 하면 높이 올라간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에서 이기도록 부추긴다. 창조력을 마비시켜, 후진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정의롭고 공정하고 정당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모든 노력에 흙탕물을 끼얹는다. 이런 짓을 잘하는 자들이 학계를 호령하고, 대학을 지배하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정치를 하기까지 한다.      

논문 표절은 부당한 이익을 노리고 유해식품을 판매하거나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보다 죄질이 더 나쁘다. 유해식품이나 환경오염을 막으려고 적발하고 처벌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라고 여겨 해당 부서에서 열심히 노력한다. 논문 표절은 방치하고 있고, 해당 부서가 어딘지도 모른다. 대통령 출마자들의 현란한 공약에 이에 관한 말이 전연 없다. 국민이 깨어나서 저항권을 행사해야 한다.  

잘못을 지적하면서 개탄만 할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현 가능한 대책을 제시하기로 한다. 이미 말한 것까지 포함해 종합 대책을 내놓고 싶지만, 더 많은 시간과 지면이 필요하다. 시급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셋 먼저 말하고, 보충 논의를 한 가지 한다. 

정부에 논문 표절을 조사하고 처벌하는 기구를 두어야 한다. 전문성을 생각하면 교육부에 두어야 할 것 같지만, 교육부는 전문성이 의심스럽다. 일을 맡고는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진행을 방해할 염려가 있다. 수사 능력을 갖추어야 하므로, 이 일을 경찰이 맡아야 한다. 사이버 범죄 수사대와 상통하는 일을 하면 된다고 여기면 된다. 전문성이 모자라면 자문을 받아 보완하면 된다.

제일 먼저 할 일은 석·박사 논문 대필업자를 수사하는 것이다. 논문 대필업자들이 적지 않게 있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고, 석사 논문은 얼마, 박사 논문은 얼마라는 말까지 떠돌아다니고 있어, 적발하기 어렵지 않다. 하나도 남기지 말고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 대필업자가 써준 논문을 이용한 사람도 찾아내 함께 처벌해야 한다. 대필업자에게는 표절의 죄를 묻고, 논문을 받아 이용한 사람은 사기죄로 다스려야 한다. 필요하면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

다음에는 선생이 제자의 논문을 표절하는 것을 적발하고 수사하는 데 힘써야 한다. 스승의 날에 제자가 선생에게 꽃 한 송이 바치지도 못하게 하는 고도의 윤리 의식을 자랑하는 이 나라에서, 선생이 제자의 논문을 가로채 자기 것이라고 하는 부끄럽기 이를 데 없는 관행이 음지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갑질을 잘해 교육도 학문도 망치는 범죄자들이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 나라를 망친다.  
남의 논문을 표절해 자기의 학위 논문으로 하는 가짜 박사가 선진국에는 없는가? 이 문제는 미처 다루지 못해 논의를 보완한다. 어떤 선진국에도 가짜 박사가 있을 수 있다. 지도교수나 심사위원들이 모르는 내용으로 논문을 쓰면 가짜인지 알 수 없다. 외국에서 한국학에 관해 쓴 박사 논문에는 국내의 기존 업적을 표절한 가짜가 적지 않다. 가짜 논문을 쓰는 풍조를 수출하는 부끄러운 짓을 한다.

외국 박사는 귀국 후에 논문을 제출해 등록하는 제도가 있었는데, 계속 시행하는 것이 마땅하다. 박사 논문이 한국학에 관한 것이면, 국내의 논문을 표절했는지 검사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표절이 밝혀지면, 그 학위를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조처를 외국에 유학 가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 표절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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