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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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지옥
  • 이기홍 논설위원/강원대·사회학
  • 승인 2020.12.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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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칼럼]_ 대학직설

총장이 ‘일일 점검 회의’를 주재하며 독려하지만, 교수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대학 졸업생 취업 이야기이다. 내가 근무하는 대학에서는 ‘좋은 일자리 50일 운동’으로 학과별 취업자 수를 주 단위로 보고받아 공개하는가 하면, ‘1교수 1학생 일자리 연결’ 같은 활동을 제안하며 교수들에게도 동참을 요구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진행된 ‘고용 없는 성장’에 코로나19에 따른 경기 악화가 겹쳐서, 대학 졸업생들은 그야말로 ‘취업 지옥’으로 내몰리고 있다. 취업이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상황에 졸업생의 사회 진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는 뜻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괜찮은 일자리를 주선할 수 있는 교수는 많지 않을 것이다.

내 경우, 여러 해 전에 작은 사회조사 회사를 자영하는 제자가 좋은 후배를 보내 달라고 연락해 와서 원하는 학생을 수소문했지만 찾지 못했던 일이 있고는 학생들에게 일자리를 소개하겠다는 생각을 접게 되었다. 학생들로서는 작은 회사라서 미덥지 못했을 것이다. 나로서도 그런 회사의 임금이나 근로조건이나 미래에 관해 불을 보듯 뻔히 알기에 군소리를 할 수 없었다. 더러 부탁을 받거나 부탁을 해서 졸업생을 작은 회사에 취업시키기도 했지만, 그것도 십수 년 전, 대기업과 소기업의 격차가 극심해지기 전의 일이다.

그러니 취업 실적을 보고하라는 압박의 총알받이는 고스란히 애꿎은 학과 조교의 몫이다. 가뜩이나 움츠러들어 ‘방콕’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전화를 걸어 ‘취업은 어찌 되었느냐’고 묻는 곤혹스런 일을 되풀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전화를 받는 학생들의 심정은 또 어떨 것인가. 그나마 전화를 받는 학생들은 나은 편이고, 학과에서 걸려온 전화는, 그 용건을 짐작하는지, 받지 않는 학생도 적지 않다.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이라고 응답이 많다는 것이 조교의 전언인데, 정부와 지자체가 공무원 숫자를 늘린다고 공박하는 정치인이나 언론도 이런 사정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급등하는 아파트값을 새 아파트 공급으로 잡자고 목청을 높이면서도 괜찮은(!) 일자리 공급을 확대하여 청년 실업을 완화하자는 말은 하지 않는다. 새 아파트 공급의 이득이, 그리고 일자리 공급의 이득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을 자랑하지만, 바로 그 ‘압축 성장’ 과정을 통해 서울 강남 아파트의 매매 가격도 아니고 전세 가격이 26억인 사회,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집중하고,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50%를, 상위 1%가 15%를 차지하는 (여기에 자산 분포를 더하면 불평등의 정도는 훨씬 더 격심해진다) 사회가 되었다. 이제 부자와 빈자, 대기업과 소기업, 서울과 지방의 격차는 상식적으로 납득 불가능하게 그래서 상식적인 방법으로는 넘어설 수 없게 커졌다. 대학 졸업생을 기다리는 취업 지옥은 저간의 불균형하고 불평등한 돌진 성장의 암울한 이면일 뿐이다.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이 정부가 그 약속을 조금이라도 실현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사정이 더 악화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극심한 취업난과 사회 불평등의 상황을 기존의 ‘상식적인 방법’으로 타개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음에도 이 정부는 기존의 방식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고 있다.

생명을 위협하는 코로나19 재난의 비상상황은 시장 자유를 외치던 사람들조차 ‘기본소득’을 말하게 만들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것은 곧 생존 수단을 구하지 못하는, 말하자면. ‘저강도 생명의 위협’으로 또 다른 비상상황이다. 지역의 작은 회사에 취업해도 먹고 사는 데 어려움이 없고, 일하면서 위험하지 않고, 언제 실직할지 불안하지 않은 사회를 만드는 비상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기홍 논설위원/강원대·사회학

강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강원대 교수회 회장, 한국사회학회 편집위원장을 역임했다. 주 연구 주제는 사회과학철학, 사회과학방법론, 그리고 사회이론이다. 저서로 『사회과학의 철학적 기초: 비판적 실재론의 접근』, 역서로 『맑스의 방법론』, 『경제, 시민사회 그리고 국가』,『과학으로서의 사회이론』, 『새로운 사회과학철학』, 『지구환경과 사회이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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